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기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발판

“따르르릉 따르르릉”

수업 중 갑자기 교실 전화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흔치 않은 일이다. 이 시간에 수업인 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갑작스러운 전화벨 소리에 긴장되기 시작했다.


“선생님, 잠깐 교장실로 와주세요.”

교장선생님이었다. 교장선생님이 그것도 수업시간에 갑자기 호출하는 경우는 교직 생활중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수업 중에 갑자기 교장실이라니? 내가 뭘 잘못했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당시 2년 반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5학년 과학 전담교사를 맡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잠깐 실험하고 있어.’란 말을 남긴 체 교장실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똑똑똑.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ㄱ자로 가까이 앉아계셨다. 두 분의 표정은 한 눈에도 심각해 보였다. 교장실을 감싸던 무거운 공기가 내 온몸으로 전이돼 휘감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긴장됐다. 대체 무슨 일이지? 영문도 모른 체 나는 교감선생님 맞은편에 앉았다.

교장선생님이 힘겹게 입을 떼셨다.


“선생님, 8반 선생님이 아프셔서 갑자기 휴직계를 내셨어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대신 남은 학기 담임을 맡아 주셔야겠어요.”


당시는 10월 말로 남은 학기까지 2개월 정도가 남아있었다. 나는 당황하여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학기 말에 갑자기 고학년 담임이라니. 전담교사로 아이들을 만나는 것과 담임교사로 아이를 만나는 일은 천지차이다. 2학기 말은 수업 분위기가 많이 흐트러지는 시기이고 복직한 지 2개월밖에 안됐으며 과학시간에만 잠깐씩 아이들을 보아왔던 지라 아직 레포(친밀한 관계)도 생기지 않았을 때였다. 내가 고민하고 있으니 옆에서 듣던 교감선생님께서 한마디 거드셨다.


“이렇게 어쩔 수없이 담임이 갑자기 비는 상황이 생기면 같은 학년 전담 선생님께서 보통 맡아주세요. 2개월 동안만 8반 잘 맡아주세요. 마무리만 잘해주시면 돼요.”


내가 생각해도 지금 당장 담임교사로 투입될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전담 시간에 간간히 아이들을 보아 온 나밖에는 없어 보였다. 결국 난 ‘알겠습니다’란 말을 남긴 체 교장실을 나왔다.


동학년 부장 선생님께 어떻게 된 상항인지 여쭤보았다. 8반 선생님은 20대 후반으로 키도 크고 예뻤으며 우리 학교 신규교사로 들어온 지 3년 차가 된 그야말로 젊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이었다. 어제까지 마주치면 항상 밝게 웃던 선생님이 갑자기 아프시다니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의 진단명은 우울증이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에 엄마와 부둥켜 안고 운다는 말에 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웃는 모습만 보여왔고 힘든 내색을 잘 안 하던 선생님이었기에 선생님과 우울증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느껴졌다. 선생님은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자 학교 측에 얘기를 하고 잠시 휴식기를 갖기로 한 거다. 다행히 휴식기 동안 선생님은 같은 학교 선생님과 결혼도 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후에 학교에 다시 복직할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일은 2년 후에 또 일어났다. 난 초임 발령을 받은 학교를 떠나 새로운 학교에 둥지를 틀었다. 그때는 5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다. 여름 방학을 몇 주 앞둔 어느 날 동학년 선생님 한 분이 갑자기 휴직계를 내셨다. 그 선생님은 20대 중반의 나이로 손예진을 닮은 청순한 외모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학급 관리 또한 성실히 잘하셨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간식을 사들고 학교로 찾아온 선생님은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담한 어조로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가 마음의 병이 생긴 건 꽤 오래전부터 예요. 아빠는 굉장히 가부장적이셔서 본인의 뜻만 강요하시고 자주 혼내셨고 엄마는 ‘네가 잘못했으니깐 그렇지’라며 내 편을 들어주시지 않으셨어요. 제가 왕따를 당해도 ‘네가 그럴만한 행동을 했나 보지.’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말들이 굉장히 상처가 되었어요. 그래서 전 공부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공부해서 빨리 이 집을 벗어나자는 생각뿐이었어요. ”


그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들의 눈시울은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여리여리하고 예쁘장한 얼굴 뒤에 이렇게 마음의 상처가 깊을 거라곤 전혀 상상도 못 했다. 그동안 나는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어려움 없는 환경에서 사랑받으며 자랐고 공부 또한 잘해서 교사가 되었을 거야’라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는 것이고 또한 상대방에게 내 아픔을 열어 보이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힘든 일이 있으면 이걸 감추려 더욱 환하게 웃었고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썼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그러는 게 최선인 줄 알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고 나를 나약하고 가여운 사람으로 볼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선생님들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을 했던 거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힘들어도 무조건 꾹꾹 참고 견뎌내야 해’라는 말을 듣고 자랐던 나는 과연 나의 상처를 솔직히 드러내고 잠시 쉬어가는 결정을 했을까?


얼마 전에 한 미국 체조선수 이야기를 기사로 읽었다. 미국 ‘체조 여제’인 시몬 바일스는 도쿄 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평균대 종목에서 갑자기 기권했다. 모두가 그녀에게 메달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유는 트위스티즈(twisties)였다. 트위스티즈는 내가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으로 특히 평균대에서 이런 느낌이 들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엄청난 공포감이 든다고 한다. 그녀의 용기 있는 선택에 비난보다는 격려가 쏟아졌다. 그녀는 자신의 몸 상태를 위해 기권했고 메달보단 자신의 심리적 안정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그녀는 마음의 안정을 찾은 후 일주일 만에 웃는 얼굴로 평균대에 올라섰다. 그리고 동메달을 따냈다.


나를 위해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기. 솔직하게 털어놓고 인정하고 다시 날아오르기. 그녀들이 선택한 방법에 난 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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