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상담 이야기
“건우(가명)야, 잠깐 이리 와봐.”
아이들은 영어 전담실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중 건우를 불러 세웠다. 마침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아이들이 모두 영어실로 들어간 걸 확인한 후 뒷문을 닫았다. 다른 반 아이들도 바삐 교실로 들어가느라 분주했다. 어느새 복도에는 건우와 나만 남았고 고요한 적막까지 흘렀다. 건우는 내가 왜 불러 세웠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요?”
“껌 뱉을래? 이제 수업 들어가야 하잖아.”
“왜요?”
“왜긴 왜야. 수업 시작됐으니깐 뱉으라는 거지. 너 수업시간에 껌 씹을라고 했어?”
“수업시간에는 안 씹고 그냥 혀 안에다 숨기고 있으면 되잖아요.” 건우는 이 말을 하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지금 화장실 가서 뱉고 와.”
“싫어요.”
금방 끝날 것 같았던 그의 껌에 대한 고집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마치 눈싸움을 하듯 건우는 나를 노려보았고, 나도 건우를 노려봤다. 서로를 차갑게 바라보는 시선 사이로 냉랭한 공기만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말할게. 가서 뱉고 와.”
건우는 ‘내가 이번 한 번만 봐준다’라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화장실로 향했다. 진짜로 뱉고 왔는지 입 안 어디 구석에 숨기고 왔는지는 모를 노릇이다. 화장실로 간 것을 보았고 오물거리는 입모양을 보지 않는 한 뱉었다고 믿을 수밖에.
그 후로도 건우와 나와의 상담시간은 계속 늘어갔다. 육아 휴직 후 갑작스레 담임을 맡은 10월부터 12월 말까지 2개월 동안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자주 얼굴을 맞대야했다. 좋은 일로 웃으면서 만나면 좋으련만 우리의 표정은 시종일관 굳어 있었고 둘 사이의 대화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한 번은 책상 사이를 지나가는 아이의 발을 일부러 걸어 넘어뜨려서, 한 번은 교실에서 욕설을 내뱉어서, 또 한 번은 괴롭힌 아이를 또 괴롭혀서, 다음에는 청소를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려서 등. 그는 누가 봐도 학급 규칙을 지키지 않았고 자기보다 강한 친구에게는 약하고, 약한 친구에게는 강한 척을 하는, 힘의 논리에 있어 강약 조절에 탁월한 학생이었다.
어느 날 한 학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건우 때문에 자기 아들이 너무 괴로워서 학교 가기 싫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전화를 받으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모든 게 학생관리를 잘 못하는 내 탓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학생 어머님께 연신 ‘죄송합니다. 제가 더 주의를 주겠습니다’란 말을 남긴 체 다음날 건우와 상담을 했다. 그 아이의 속마음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대체 왜 사사건건 친구들에게 시비를 거는지. 왜 예쁜 말만 해도 모자랄 입에서 거친 욕설을 쏟아지는지 왜 친구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지. 하지만 건우는 자기 속마음을 쉽게 내비치는 아이가 아니었다. 우회적으로 건우의 속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학교 끝나면 뭐해?”
“pc방 가요.”
“엄마는 몇 시쯤 오셔?”
“6시쯤 오세요.”
“아빠는?”
“아빠는 거의 늦게 오세요.”
“그럼 주로 엄마하고 여동생하고 같이 저녁 먹니?”
“네.”
“엄마랑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 자주 이야기하니?”
“별로 안 해요.”
“아버지는 어떤 분이셔?”
“화나면 무서워요.”
“어떻게 화를 내시는데? 혹시 때리기도 하시니?”
“네.”
“뭘로 맞아봤어?”
“제가 말을 잘 안 들으면 골프채로 허벅지를 막 때리세요.”
“많이 아팠겠다. 그때 기분이 어땠어?”
“그냥 도망가고 싶어 져요.”
상담을 하는 동안 건우는 그동안 보아왔던 치기 어린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순한 양이 되어 앉아 있었다. 자기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아픔과 진실을 이제야 밝힌다는 후련함과 함께. 나도 왜 건우가 그동안 친구들에게 폭력성을 보여왔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당장 어머니와 상담을 진행했고 어떠한 폭력도 하시면 안 된다는 점과 건우의 속마음을 헤아려 주십사 간곡히 부탁드렸다.
건우 이후에도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폭력과 욕설에 노출된 아이들은 어김없이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를 친구들에게 풀었다. 건우 어머님처럼 아이의 마음 상태를 헤아리고 현재 상황을 개선할 의지를 보여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로부터 일 년 후에 만난 혜림(가명)이는 예쁘장한 얼굴과는 반대로 욕을 달고 사는 아이였다. 선생님이 안 계시거나 하교 후에 친구들끼리 모이면 별일 아닌 일에도 욕설을 했다. 결국 그동안 욕을 참고 들어왔던 친구들은 혜림이를 점점 멀리했다. 상담 결과 혜림이는 엄마가 안 계실 때 오빠로부터 지속적으로 욕을 듣고 자랐다고 했다. 오빠는 고등학생으로 혜림이와 4살 차이고 아이돌 지망생으로 현재 학원에서 댄스를 배우고 있었다. 오빠는 툭하면 혜림이에게 욕을 했고 심지어 오빠로부터 맞은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 말을 하는 혜림이의 눈에서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졌다. 오빠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왜 막 대했는지 혹시 더한 폭력은 하지 않았는지 걱정되며 내 눈시울도 붉어졌다. 혜림이를 오빠로부터 구해줄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다음날 혜림이 어머님과 상담을 시작했다. 직장에서 잠시 외출을 나왔다는 혜림이 어머님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혜림이는 오빠로부터 어떤 폭력에도 노출된 적은 없으며 현재 혜림이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다른 친구들이 우리 딸을 안 좋게 생각해 이간질하고 있다고 어머니는 굳게 믿고 있었다. "내 딸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을 남긴 체 어머님은 교실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후로 더 이상 어머니와의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다양한 모습으로 분출한다. 건우와 혜림이처럼 폭력적인 언행을 보이기도 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아예 말을 하지 않기도 한다. 어른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 무조건 혼내기 바쁘다. 아이를 가장 잘 이해할 것 같은 부모까지도 말이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체. 어쩌면 이런 행동은 표현에 서툰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나의 손을 잡아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낳는다. 어른이라면 아이의 상처를 더 곪게 하는 대신 상처가 낫도록 약을 발라주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