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by 민경남

새벽 산행은 어둠 속에서 시작해서 해가 허리에 걸릴 때면 끝이 나곤 했다.


해는 뒷산을 오를때도, 청계산을 걸음질 할 때도 내 허리만큼 하늘에 걸려 있었고 해가 긴 여름에도, 해 짧은 겨울에도 그랬다. 까치소리가 유난할때면 검은 천막은 어느새 장막을 거뒀고, 햇살은 이슬을 받은 나무들 안에서 부챗살을 펼쳐 보였다. 오늘 새벽에도 까치소리는 유난했고, 나무들 속 햇살은 눈이 부신다.


새벽에는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에 시선이 머문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머무는 것이 아니라 눈이 가는대로의 풍경이 그렇다는 얘기일 것이다. 오늘 새벽에도 그런 풍경은 달리는 버스의 앞, 옆 유리, 운전기사의 백밀러에서도 쉼 없이 보였다 사라진다. 동트는 것이 두려운 박쥐모양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는 덤프트럭, 봉고차보다는 작지만 자가용이라 표현하기에는 다소 난감한 미니 봉고차를 타고 가판대를 바쁘게 달리고 멈추기를 반복하는 벼룩신문 배달원, 몇 부 밖에 남지남지 않은 신문을 오토바이 뒤에 싣고 가며 즐거운 웃음을 던지는 아저씨, 배추를 트럭으로 힘차게 던지고 받는 시장 사람들... 새벽에는 수백명의 장인들이 손으로 만들었다는 광채 나는 외국 자동차 뒷 좌석에서 신문을 흟어보는 사장님의 얼굴은 보이질 않는다.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형 인간이지만, 주름이 얼굴에 가득할 때 까지 부산하게 몸을 움직여야 기본적인 경제생활을 꾸려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릎에 배낭을 올리고 산행을 떠나는 내 자신이 사치스런 건 아닌지 모르겠다.


고 3... 삼중당 문고의 작은 책을 손에 쥐고 집에서 종점까지 버스를 타고 돌아오곤 했다. 정릉이 종점인 버스가 싫어지면 남대문, 서울역을 달리는 버스를 탔고, 그 풍경이 따분해질 땐 수유리 방면 버스에 올랐다. 사당역을 경유하는 버스는 명동을 거쳐 남대문 시장으로 달렸고 차창 안에서 본 서울사람들의 일상은 늘 분주했다. 자율학습이 어느 순간 자유스러웠던 시절, 저녁에도 똑같은 옷과 책가방을 메고 버스에 올랐다. 막연하게 공부를 해야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던 시절이었다. 뒷 좌석 구석에 앉아 기사님이 틀어 논 FM 라디오 음악에 취해 주제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때의 풍경도 오늘처럼 달리는 버스의 앞, 옆 유리, 운전기사의 백밀러에서 쉼 없이 보였다 사라진다.


버스속에서 인생을 생각했다. 10대는 제일 앞에 앉고, 세대별로 줄을 맟춰 좌석에 앉으면 버스 뒷쪽으로 자동문이 있어 죽음의 문으로 들어간다고 서글픈 생각도 해봤다. 버스 안에서 김형석 님의 " 별과 바람과 구름과 시"라는 수필집을 손에 쥐고 있을 때도 있었고,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 세계여행을 떠난 대학생의 여행기가 교과서 보다 소중하게 가방 속에 모셔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동창모임을 다녀온 날, 과천부터 비가 내렸다... 과천 정부 종합청사 근처 자전거 전용도로가 잠시 끊어지는 마지막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를 무렵, 새벽도 아닌데 운무가 가득했다. 김승옥님의 '무진기행'이 떠올랐고, 동창들의 모습이 하나 둘 앨범 속 아이들의 얼굴로 떠올랐다. 비를 피하기 위해 눌러쓴 등산복 모자에 '따닥따닥' 떨어지는 굵은 빗 소리가 친구들의 커다란 웃음소리로 들리는 순간이다. 호,영,철,선... 만남은 유쾌했고 동심을 생각나게 하는 아주 늦은 저녁이다. 오늘 새벽에도 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