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폭언과 폭력
첫 직장은 지옥 같았다. 그곳의 대표는 화가 많아 호통을 자주 치고 성격이 급해 자신이 생각한 일을 가장 먼저 해결하라고 다그치는 독불장군이었다. 가끔은 그곳을 그만두지 않고 버틴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나 회상하곤 한다. 퇴사하는 동료를 두고 '요즘 친구들이 좀 버텨줬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첫 직장을 그만두기에 앞서 여러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한 친구는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계속 회사를 그만둘 것이냐고 냉정하게 얘기했고(직장 생활을 해본 적 없는 친구였다.), 말리진 않았지만 한숨만 쉬던 부모님의 모습도 떠오른다.
결과적으로 그만두지 않고 남은 것은 같이 일하던 선배가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만두는 나의 끈기 따위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이 네가 앞으로 일할 곳들 중 최악의 직장일 거야. 이곳만 버티면 다른 곳은 훨씬 나은 환경일 테니 우리 1년만 같이 버티자. 라며 설득해줬던 것이다. 자신도 가끔은 참을 수 없이 그만두고 싶지만 서로를 위안 삼아 버티자고 했다.
첫 직장은 전시나 교육 프로그램 홍보에 필요한 수많은 디자인 업무를 독박으로 해결해야 하는 곳이었다. 이보다 버거웠던 것은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대표와 궁색하기 그지없는 업무 환경이었다. 대표는 막내인 내가 혼자 있을 때만 에어컨과 히터를 수시로 틀지 말라고 화를 냈다. 이 사실을 선배에게 언급한 적이 있는데 선배는 한 번도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되니 다른 직원들은 당연히 에어컨이나 히터를 빵빵하게 틀었고 대표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나는 대표가 방문하면 좌불안석이 되어 에어컨을 꺼야 하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인간이다. 대표의 분노 조절 장애는 내 앞에서만 유독 자주 발현되었다. 그는 내가 혼자 근무하는 주말에 나와 굳이 사무실에서 TV를 보았고 내가 하는 자잘한 실수에는 유독 큰 분노를 표출하는 지질한 인간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맡은 주요한 업무는 전시/교육 홍보물 디자인이었는데, 나는 순수미술 전공자였다. 사실 나는 학과별로 권장한 자격증으로 소정의 장학금을 받고 싶어 일러스트 자격증을 취득했을 뿐이었고. 자격증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기본 요건을 충족했다는 의미이지 실무와는 또 다른 영역이지 않은가. 자동차 운전면허를 소지한 모든 이들이 베스트 드라이버임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럴 거면 디자인과 졸업생을 뽑을 일이지..!’라고 얼마나 욕을 했던지. 하지만 당시 최저임금으로 환산한 월급은 136만 원이었고 내 급여는 130만 원이었으니 어림도 없는 조건이었다. 참 순수했던 시기였나 보다. 그 시절 나를 버티게 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이 회사를 1년 동안 다니고 나서야 정신과를 다녔다. 그다음 직장을 다니면서 병원에 다닐 용기를 낼 수 있었는데, 두 번째 직장 상사의 얼굴이 전 직장 대표가 윽박지르던 모습과 겹쳐 보였던 것이다. 나의 실수에 대해 지적만 해도 전 직장 대표가 화를 내던 모습이 떠올랐고 가슴이 떨리고 머리가 멍해져 일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가 없었다. 뜬금없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은 마음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몇 번을 울었던 것 같다.
수많은 기억이 휘발된 요즘에는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그때의 경험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꼭 그런 망나니와 일을 했던 경험이 내 멘탈을 키워주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예민하고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은 애송이다. 요즘에는 회사를 어떻게 하면 영원히 떠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예전보다 회사에 더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회사에서의 긍정적인 경험이 나를 더 키워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나는 첫 직장에서 혼자 근무하던 어느 날, 대표에게 주먹으로 어깨를 맞은 적이 한 차례 있었다. 내가 만든 디자인을 보고 잡지를 던져주며 왜 그렇게밖에 못하는지 소리를 지르다 화를 참지 못해 폭력을 사용한 것이었다. 이때 느낀 모멸감과 수치심은 몇 년 간 상사에게 맞았다는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튀어나왔다. 내가 너무 모자라서 회사에서 맞기나 하는 것 같아서, 저항의 말조차 꺼내지 못한 내가 바보 같이 보일까 봐 몇 년간 그 아픔을 혼자 삭였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다지 고통스러운 기억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후로도 회사를 옮겨 다니며 오랜 기간 정신과를 들락날락거렸다. 회사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기보다는, 내가 그 기억에 빠져있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회사에서의 퇴사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퇴사하는 이에 대해 '버티지 못하는 한심한 요즘 애들'로 낙인찍는 것에 대해 반박한다.
당신들이 누군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보지 못하고(혹은 못 본 척하고) 당연히 모르는 게 많은 신입에게 힘든 게 없냐고 물어보진 못할 망정 '그래도 이제까지 일했던 막내 중에는 제일 덜 혼나는 거야.'라는 망언이나 지껄이면서 부조리함을 포장하고 위안 삼으니 회사가 그 모양 그 꼴인 것이다.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회사의 부족함을 직면하는 순간부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인데, 우리 회사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떠벌리고 주입하는 충성심 높은 당신 같은 부류는 중요한 순간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 갑자기 너무나 순진한 사람인 양 회사의 개선점을 파악할 생각은 안 하고 퇴사자 개인의 문제로 그 상황을 치부해버릴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