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급진주의자들은 저마다 노스탤지어를 품고 있다
마크 릴라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를 통해서다. 그는 미국 리버럴 진영에 속한 학자로서는 드물게도 미국의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앞의 책이 일반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언어로 서술되어 있는데 반해, 이번에 읽은 <난파된 정신>은 결코 친절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반동주의'라는 다소 낯선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1부부터 평소 접하기 힘든 유대계 학자들의 사상을 소개하여 독자에게 난감함을 선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지는 미덕은, 상대편을 무시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릴라의 철학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부에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프란츠 로젠츠바이크, 에릭 뵈겔린, 레오 스트라우스라는 세명의 학자를 소개한다. 그동안 읽은 책들이 무색하게도, 세 명 모두 이름만 들어보았거나 이름조차 듣지 못한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과거의 신앙 또는 철학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통 유대 신앙을 중시하는 로젠츠바이크는 탈정치를 주장했고, 뵈겔린과 스트라우스는 각각 영지주의와 마키아벨리 이전의 건전한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칭송했다. 이 사상가들에 대한 우파들의 관점이 오해이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이들의 사상은 우파적 상상력에 노스탤지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일조했다.
2부에서는 좌우파의 사상가들이 가진 향수에 대한 비판적 검토다. 먼저 우파에서는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와 브래드 그레고리가 기독교적 노스탤지어를 어떻게 가공하고 미국의 신정보수주의자(theocon)들에게 기여했는지 지적한다. 그리고 좌파에서는 야콥 타우베스와 알랭 바디우가 사도 바울을 강단으로 데려와 활용하는 양상에 대해서 비판한다. 이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상가들을 비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크 릴라의 특징으로도 볼 수 있다. 그가 어디까지 신랄해질 수 있는지를 보려면 <분별없는 열정>을 참고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3부는 프랑스의 우파 언론인 에리크 제무르와, 소설가 미셸 우엘벡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무르의 경우 <프랑스의 자살>이라는 책을 통해 프랑스 공화국에 위협이 되는 요소들을 나열한다. 이 목록은 산아 제한부터 할랄 푸드 급식까지. 그리고 페미니스트부터 프로 축구팀 감독까지. 매우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그의 교활함이 드러나는데, 그는 그의 생각이 쉽게 분류되지 않게 만들고 진정으로 조국을 위한다는 느낌을 주면서도 사람들을 선동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우엘벡의 소설은 부당하게 비난받은 면이 있다. 우엘벡은 과거부터 자유주의의 실패에 대한 주제를 소설로 써왔다. 단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실패의 기점이 점점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소립자>에서 68세대의 위선과 몰락을 조소했다면, <복종>에서는 계몽주의가 처음 등장한 시점으로 눈을 돌린다. 이제 그에게 1968년 이후의 혼란은 단지 증상에 불과하다.
저자 스스로가 인정했듯이, 이 책은 일관성과 인과성을 결여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이 책은 마크 릴라가 그동안 기고했던 여러 편의 칼럼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공통의 주제를 찾아보자면 '반동'이고, 그에게 반동이란 곧 '노스탤지어'다. 반동주의자는 (좌우를 불문하고) 과거의 좋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심지어 두 눈이 미래를 향하고 있는 듯 보여도 사실은 과거에 매여있다. 릴라는 노스탤지어를 거부할 뿐 아니라, 시대를 분류하는 작업 자체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시대 분류는 몹시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황금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릴라의 관점이 어디까지 공감받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정적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게도 지적 기반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파고드는 노력에 대해서는 배울 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