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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현 Nov 30. 2019

<정신의 고귀함> 리뷰

인간으로서 지켜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노트르담 성당이 불타자 세계인들은 경악했다. 이는 노트르담의 성당이 프랑스 혹은 카톨릭만의 유산이 아님을 알려준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는 독일군 장교가 쇼팽을 연주한 유대인 피아니스트를 살려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쇼팽이 단지 폴란드의 작곡가가 아니라, 유럽과 서양 문화의 유산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앞의 내용은 철학자이자  책의 역자인 이성민의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 참고했다.)

<정신의 고귀함> 표지에는 자유의 여신상의 횃불이 그려져 있고,  책의 서두에 나오는 대화 역시 여신상이 있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책은 인류의( 정확히는 서양의) 문명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으며, 자유의 여신상은  상징  하나이다. “인간은 야만 상태로 태어난다. 인간은 문화 덕분에 야수 상태에서 구제받는다.”(p. 151)

하지만 이러한 문명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야비한 지식인들은 911 테러를 문명의 파괴가 아닌 피해자들의 “어쩔  없는 저항으로 묘사했다. 사르트르는 소련 내에서 일어나는 반인륜적인 행위들을 묵인했다. 허무주의자들은 폭력과 대량 살인을 거부할만한 도덕적 능력이 없다.  같은 상황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나는 최근에 정치적 동료들을 만났고, 새로운 사상을 창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나는  일이 매우 중요하며 시대에 필요한 일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사실 나의 진정한 관심은 이념과 사상 너머에 있다.  슈미트의 정의에 따르면 정치는 “적과 동지의 구분이지만, 문명은 정치를 넘어 인류가 공유할  있는 보편적인 무언가를 상정한다. 이것이 내가 사회과학을 전공했지만, 인문학에  끌리는 이유이다.

리멘은 여러 대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정신의 고귀함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러한 이상은 귀족주의적이지만,  고귀함은 혈통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정신에 달린 것이다.(p. 152) 과연 오늘날에도 고귀함을 위한 대화가 이어질  있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정신의 고귀함을 가지고 만연한 적대들을 극복할  있을까? 어쩌면 자유의 여신상이 높이 치켜든 횃불이 구원을 위해 바라보아야  놋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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