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초역 채근담
직장 생활 내내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 자체로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복잡한 감정, 어지러운 말들,
때로는 필요 없는 갈등에 에너지를 소진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
모든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오직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
고요한 곳에서 사색에 잠기는 삶은
내게 ‘천국’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채근담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남들을 피함으로써 고요함을 얻고자 한다.”
아, 나는 지금까지
피함으로써 고요함을 지키고 있었구나.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은
마치 내 속마음을 간파한 듯
조용한 일침을 건넸습니다.
“아무도 없음에 집착하면
곧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고,
고요한 마음에 집착하면
그것이 곧 소란스러움의 원인이 된다.”
정말 그랬습니다.
고요함은 나를 치유해 주었지만,
지나친 고요함은 나를 가두었습니다.
내 생각에 사로잡히고,
나만의 아집이 생기면서
오히려 마음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고요함은 점점
소란의 씨앗이 되어갔습니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기분,
세상과 단절된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느낌.
하지만 다시 세상으로 나갈 용기는
쉽게 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채근담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피하고자 할수록 도리어 집착하게 되니
이래서는 나와 남을 하나로 보고
움직임과 고요함을 모두 잊는 경지에 이르기 어렵다.”
이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다시 세상과 연결되자.
나만의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소통해 보자.
그 첫걸음이 블로그와 브런치 글쓰기였습니다.
내 안의 생각을 바깥으로 꺼내어 놓고,
누군가의 공감을 통해
내 마음의 결을 다듬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에서 만난 이웃들은
나와 남을 하나로 보는 따뜻한 시선을
내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움직임 속에서 고요를 발견하고,
고요함 속에서도 살아 있는 움직임을 느끼며
나는 다시 세상과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고요함만을 좇는 삶도,
소란함을 피하는 삶도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고요와 움직임 사이,
그 어딘가에서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