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타비(我是他非) – 자기 중심성에 대한 반성

자아 계발 – 나를 일깨우는 첫걸음

by 무공 김낙범

아시타비 我是他非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


자아실현은 ‘겸손한 성찰’에서 시작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사자성어, 아시타비(我是他非). 이 말은 인간관계를 흐트러뜨리고, 자아 성장을 방해하는 자기중심적 사고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현대어로 풀면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우리 안에 은근히 자리 잡은 합리화된 이기심입니다.


비판은 쉽고, 성찰은 어렵다

주자학은 아시타비 같은 태도를 도덕적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로 봤습니다. 불교와 유교 모두 타인을 비난하면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태도를 ‘마음을 흐리는 어둠’으로 경계했습니다. 왜일까요? 비난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책임에서 도망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기준을 절대화하고, 타인의 입장을 무시하는 순간, 내 자아도 함께 멈춘다.”


성숙한 자아는 이해에서 시작된다

자아실현은 ‘내가 맞다’는 확신에서 이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에서 출발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타인을 단정하기보다, 그의 선택과 입장의 맥락을 이해하려 애씁니다. 그 태도가 바로, 자신의 내면을 깊게 만드는 성장의 문입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곧 나를 확장하는 길이다.”


나에게 던지는 세 가지 질문

1. 지금 나는, 판단하기 전에 충분히 이해하려 했는가?

2. 내가 비난하는 그 모습은 과거의 나와 닮아 있지 않은가?

3. 이 상황에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비판보다 성찰이 먼저다

아시타비는 자신을 똑똑하게 보이게 만들지만, 실은 가장 미성숙한 태도입니다. 자아실현은 남보다 앞서겠다는 경쟁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성찰한 나, 더 깊어진 오늘의 나를 만드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 출발점은 단 하나,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열린 마음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비판보다 성찰이고, 판단보다 이해입니다.


“자아실현을 이루고 싶다면,

먼저 ‘내가 옳다’는 생각부터 내려놓아라.”

남의 틀림을 따지기보다, 나의 성찰을 먼저 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야말로 자아를 키우는 최고의 공부다.




★ 금성여자 이야기


《아시타비 4행시》

아: 아시나요 내가 옳아요.

시: 시방 내 말만 믿어 주셔요.

타: 타인들 말 듣지 마셔요.

비: 비밀인데, 나도 옳고 당신도 옳아요. 우리는 똑같이 옳습니다.

《내로남불 4행시》

내: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로: 로맨스라 부르렵니다.

남: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던지, 내 사랑은 로맨스라 생각합니다.

불: 불 같은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교수신문에 2020년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선정했었습니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라는 뜻으로 ‘내노남불’이란 신조어를 한문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란 내노남불은 90년대 정치권에서 유래하였는데 최근까지 상용되고 있습니다. 내노남불이나 아시타비 모두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사람들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는 해명이나 반성도 하지 않는 사람이 같은 잘못을 타인이 저지르면 비난하는 경우입니다.


내로남불은 정치계의 잘못된 관행을 꼬집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던 행동을 자기 자신이 했을 때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합리화하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상담 OK그램에서는 자기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관점으로 자기 긍정과 타인 긍정 두 가지 영역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1) 금상첨화 인생관: 나도 괜찮고 너도 괜찮다. I'm OK. You're OK.

2) 유명무실 인생관: 나는 괜찮지 않고 너만 괜찮다. I'm not OK. You're OK.

3) 천만다행 인생관: 나는 괜찮고 너는 괜찮지 않다. I’m OK. You're not OK.

4) 설상가상ㆍ패가망신 인생관: I'm not OK. You're not OK.

할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 인생관으로 자기 자신뿐만이 아니라 타인들에게까지 관대하게 대할 수 있다면 최고로 멋진 인생 태도가 될 것입니다.


나도 옳고 너도 옳다. 우리는 모두 옳다.




★ 화성남자 이야기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아시타비(我是他非)’라는 사자성어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빠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자신의 잘못은 가볍게 여기면서, 타인의 실수에는 날카롭게 반응하는 모습. 우리는 이런 장면을 일상에서 자주 마주칩니다.


현대적 표현으로는 ‘내로남불’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익살스러운 말속에는, 같은 행동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이중잣대가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내 입장에서는 정당하다고 여기고 상대의 입장은 무시해 버립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경기도 파주, 임진각 근처의 ‘반구정’은 조선의 명재상 황희 정승이 은거하던 곳입니다. 어느 날, 반구정을 찾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황희 정승에게 판결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첫 번째 사람에게 “그대 말이 옳소”라고 했고, 반대편에 선 두 번째 사람에게도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부인이 “두 사람 말이 모순되는데, 어떻게 둘 다 옳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정승은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대 말도 옳소.”


겉으로 보기엔 모순된 대답 같지만, 이 일화는 진정한 경청과 존중의 태도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말과 행동에는 저마다의 이유와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닐지언정, 결코 무시되어야 할 ‘부분적 진실’은 존재하는 법입니다.


자아실현은 자신을 믿는 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관점 속에서도 스스로를 확장해 가는 여정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순간, 멈추지 않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다른 사람의 진실도 함께 보고 있는가?” 그 물음이 깊을수록, 우리는 더 성숙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진실’과 ‘타인의 진실’을 함께 품을 수 있는 넓은 시선입니다. 아시타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만의 정의에서 한 걸음 물러나 타인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태도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더 나은 인간, 더 깊은 자아를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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