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은 언제, 누구에게 남는가

074 초역 채근담

by 무공 김낙범

동생이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주식에 실패했고, 빚을 졌다고 했습니다.
“형, 도와줘…”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은행 대출을 받아
그 빚을 대신 갚아주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동생은 연락을 끊었습니다.


섭섭한 마음이 들 법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바랐습니다.
어디서든 무사히 살아가기를.
그것이면 되었다고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문득 채근담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거금을 주고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 듣는가 하면,
밥 한 끼 대접했을 뿐인데 평생 은인이 되기도 한다.”


인연이란 참 묘합니다.
진심을 다한 도움은 때론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무심히 건넨 작은 친절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됩니다.
도움이 ‘은혜’가 될지, ‘짐’이 될지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이웃집 독거노인 댁을 청소해 드린 일이 있습니다.
몸이 불편해 오랫동안 손보지 못한 집이었습니다.
우리는 좋은 마음으로 구석구석 청소했고,
쌓인 먼지를 털고 묵은 물건들을 정리했습니다.


며칠 뒤, 노인이 찾아왔습니다.
“욕실 바가지가 없어졌어.”
그 바가지는 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버렸던 것입니다.


“그거, 깨져 있어서 버렸어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인은 소리쳤습니다.
“아직 쓸 만했는데 왜 버려!”

그날 이후, 우리는 서먹해졌습니다.


그리고 또 채근담의 말.
“배려도 지나치면 반감을 사고,
모질게 대해도 때로는 그것을 고마워한다.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으면
은혜도 원망이 되어 돌아온다.”


돌아보면, 나 역시 그랬습니다.
한 친구가 내게 건넨 차가운 말에
한동안 마음이 닫혔지만,
결국 그 말이 나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도움이란, 결국 마음을 읽는 일입니다.
돕는다는 이유로 판단하지 않고,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간섭하지 않는 일.
그 섬세한 경계 안에서 우리는
관계를 배워가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도움보다 이해를 원하고
배려보다 공감을 바라는 존재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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