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초역 채근담
말을 아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화 중에도 조용히 듣기만 하고, 미소로 모든 대답을 대신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묘한 신뢰를 느끼곤 합니다.
왠지 속이 깊을 것 같고, 나의 비밀도 잘 지켜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채근담》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수가 적고 좀처럼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내 본심을 밝혀서는 안 된다.”
아무 말 없는 고요함이
반드시 깊은 물처럼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침묵은 때로 계산이고, 감추는 기술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말이 없는 사람은
그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일 뿐,
마음이 깊은 사람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에게 먼저 내 진심을 꺼내 보이는 것은,
어쩌면 가장 먼저 상처받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또 채근담은 말합니다.
“쉽게 발끈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는 가끔,
목소리가 큰 사람에게 이끌리고,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을 '능력자'라 착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 곁에 오래 있으면
늘 누군가를 이기려는 말투에
내 마음이 자꾸만 쪼그라드는 느낌이 듭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는 말들 속에
나는 점점 조용해지고,
결국 말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아 지게 됩니다.
그럴 땐,
아예 말문을 닫는 것도
스스로를 지키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말은 마음의 표현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누구에게나 적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에게는, 닫힌 채로 남겨두는 것이 더 건강합니다.
조용한 사람에겐 마음을 천천히 열고,
성급한 사람에겐 말마저 아끼는 것.
그것이 삶을 덜 소란스럽게 지키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