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퇴로가 되어주고 싶다

079 초역 채근담

by 무공 김낙범

오늘 읽는 채근담 한 구절입니다.

“악당이나 적을 제거할 때는
그들이 도망갈 길을 한 가닥 남겨 둬야 한다.
만일 도주로가 막힌 상태에서 궁지에 몰리면
적은 반드시 필사의 각오로 반격해 올 것이다.”


우리는 상대에게 도망갈 길조차 허락하고

칼처럼 날카롭게 지적하고,

숨 쉴 틈조차 없게 비판을 합니다.
정당함을 앞세워 상대를 몰아세우다 보면
결국 마지막엔, 상처와 후회만이 남게 됩니다.


사냥에서도 그렇습니다.
도망갈 길을 터놓고 좇아야 합니다.
궁지에 몰린 사냥감은
오히려 죽음을 각오하고 덤벼들 뿐입니다.


우리 삶의 갈등도 다르지 않습니다.
말다툼, 충돌, 감정의 불씨.
그 모든 순간에 우리는 여지를 남길 수 있어야 합니다.


물러서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를 위한 여백이 결국 나를 위한 안전지대가 된다는 것.
그 단순한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채근담은 또 이렇게 말한다.

“온몸으로 공격해 오는 자는 강하므로
틀림없이 이쪽에도 희생이 발생한다.”


예전에 정면으로 부딪친 결과,
무너지는 건 종종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상대의 변명까지도
조금은 들어줄 수 있었어야 했습니다.
모든 길을 차단당한 사람은 결국,
방어가 아닌 공격으로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관계에도, 대화에도, 감정에도
도망갈 길을 하나쯤 남겨두는 용기.

오늘은 그 마음으로
말을 아끼고, 시선을 낮추고,
누군가의 퇴로가 되어주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너도 괜찮아. 도망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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