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색 공원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는 용기

화이부동(和而不同)

by 무공 김낙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모두들 의욕이 넘쳐 있었다. 각자 맡은 역할이 분명했고, 팀원들은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피력했다. 의견이 모이면 금세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회의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서로 다른 생각이 불협화음을 이루면서, 각자의 주장이 조금씩 날카로워졌다. 다시 합의를 도출하려 했으나, 어느 누구도 쉽사리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목표를 향해 의욕을 가지고 달려가던 발걸음이, 어느 순간 뿌리 깊은 돌부리에 걸려 버린 것이다.


팀장으로서 나는 난감했다. 조율자인 내가 던지는 한 마디가 자칫 갈등을 더욱 부추길까 염려스럽기도 했다. 그 순간, 침묵만이 안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두의 말에는 분명 프로젝트를 잘하고 싶다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뜨거운 열정이 오히려 팀 분위기를 더욱 팽팽하게 만들었다. 누구의 생각이 더 옳은지도 알 수 없었다. 의견을 듣는 자리에서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의 말을 흘려들었다.


회의가 길어질수록 내면의 피로는 쌓였다. 어쩐지 이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도 익숙하게 겪어온 모습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 다름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다른 생각, 다른 삶, 다른 성장의 맥락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동의 목표를 이루려 할 때 그 갈등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러나 매번 이런 갈등 앞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각자 등을 돌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회의 중에 문득, 머릿속에 오래된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논어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화이부동이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 서로 다르면서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품지 못하는 사람.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오래 전부터 내 삶의 작은 화두였다. 그러나 오늘까지도 나는 그 의미를 온전히 체험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것 같다.


프로젝트의 갈등 속에서도 다름은 틈이 아니라 문이라는 생각이 점차 뚜렷해졌다. 각자 넘치는 의욕에 의해 의견 충돌이 심했지만, 그 혼란의 공간에서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길이 드러났다. 팀원들 사이에서 갈등이 커질수록, 각자의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다. 시간이 흘러 잠시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서로 다른 주장들 사이에 매우 작은 접점이 있었다. 그 지점이야말로 어쩌면 프로젝트를 전진시키는 실마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목격한 팀원들의 갈등은, 삶을 이루는 다양한 일이 겹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정에서도 각기 다른 삶의 속도, 취향, 신념이 존재한다. 직장에서도 부딪히는 의견들, 그 중재와 타협의 과정은 늘 반복된다. 내 마음의 깊은 곳에서도 자주 충돌하는 의욕과 불안, 안정과 변화 사이의 갈등이 있다. 그 모든 다름은 처음에는 불편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불편함은 점차 새로운 균형점으로 바뀐다.


예전에는 다름과 갈등 앞에서 회피했다. 단절이 오히려 평화를 가져올 거라 믿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름이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문임을 체험하게 되었다. 팀원 각자가 소신을 지키는 것,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날카로움과 감정의 소용돌이가 한때 프로젝트를 무산시킬 뻔했다. 그러나 조금 물러나서 바라보니, 그 분열의 적막 속에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길이 있었다. 어떤 길은 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갈등의 순간에 팀원 한 사람이 던진 말이 실마리가 되었다. 균형은 같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껴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깊이 깨닫는다.


조화를 이루는 능력은 자신의 자리를 고집할 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다름을 존중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오랜 시간 동안 익숙해져 있던 같음이라는 안전지대는,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을 자아냈지만 다름을 향한 작은 용기를 냈을 때, 전에 없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팀의 분위기도 서서히 변화한다. 서로를 설득하기보다, 서로의 생각을 들어주면서 자연스럽게 방향이 잡혀간다. 누군가 자신만의 길을 내세우더라도, 그 다름을 존중하면 작은 균형이 이루어진다.


이제 회의실을 떠난 후에도, 사무실의 풍경이 달라 보인다. 서로의 목소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견디는 시간. 프로젝트의 마지막에 가까워지자, 각자의 소신은 하나의 방향으로 모인다. 서로 어색했던 순간은 서서히 흐릿해지고, 다름의 긴장 속에서 균형이 생겨난다. 그 모든 시간에서 가장 값진 배움은, 서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등을 돌릴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삶도 그러하다. 집에서는 가족 간의 사소한 의견 차이가 때론 큰 갈등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다름 속에서 가족만의 따뜻한 온기가 만들어진다. 직장에서도 익숙하지 않은 의견과 마주할 때, 처음엔 불안해도 결국 새로운 성장의 계기가 된다. 내 마음 안에서도 다양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부딪힌다. 그 혼란의 와중에, 조화는 언제나 다름을 받아들이는 곳에서 시작된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무렵, 팀원 중 한 사람이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 이번에는 좀 부딪혀서 힘들었지만, 다들 그렇게 고민해준 덕에 결과가 더 좋아진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으며, 논어의 구절이 다시 떠올랐다. 군자는 다름을 인정하며 조화를 이루고, 소인은 같음만 좇다가 결국 화합하지 못한다. 우리는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며, 균형이란 이름의 작은 조화를 만들어 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회의실을 나오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을볕이 회색 벽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다름의 시간, 충돌과 소용돌이의 과정도 결국에는 온화한 빛 아래 녹아드는 법이다. 앞으로도 나는 다양한 길을,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이들과 다시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이 순간을 기억하려 한다.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의 길을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화이부동. 내 삶의 좌표에 새로 남겨진 말. 다름은 틈이 아니라, 결국 새로운 문이 된다. 그 문을 함께 열어젖히는 사람들과, 나는 오늘도 조금씩 성장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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