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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무는바람 Apr 05. 2023

주정공장은 어떻게 4.3역사관이
되었나?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다시 4월입니다. 노랗고 빨갛게 제주의 봄은 흐드러지게 물들어가는데, 알 굵은 비 듣는 소리처럼 가만히 마음이 무거워지는 그렇게 또 4월. 작게 퐁당이며 옹송그리는 4월의 바람이 부는 곳을 찾았습니다. 지난 3월 13일 개관한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제주 4월의 비와 바람이 들려주는 주정공장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주정공장 터의 기억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이 들어선 이곳은 1943년 일제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설립해서 1970년대까지 가동된 대규모 주정공장의 터로 제주의 관문인 제주항 인근에 위치해 있어요. 당시 고구마를 원료로 생산한 주정을 일본 병참본부에 항공연료로 납품하거나 제주에 주둔한 일본군 자동차의 연료로 공급했답니다. 제주 도민들은 이를 술로 만들어 음용했다고도 하네요. 

옛 주정공장 터 비문과 표지석

 

 해방 전후 제주도의 주요 산업시설로 당시로선 비교적 큰 가공공장이었고 그에 따른 창고 역시 큰 규모였지요. 이 주정공장 창고에는 4.3 당시 민간인 수용소로 이용된 아픈 기억이 담겨 있어요. 특히 1949년 봄에는 피난 입산했다가 귀순공작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대거 수용되었고 혹독한 고문과 열악한 수용 환경으로 수용자들은 많은 고초를 겪었답니다. 이곳에 수용됐던 청장년층 대부분은 재판 후 타지방 형무소로 이송됐고, 이들 중 다수는 한국전쟁 직후 집단 학살되었다고 해요.

야외에 조성된 작품 그날의 슬픔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는 예비검속으로 끌려온 주민들을 감금하는 장소로 또다시 이용되었어요. 예비검속된 많은 사람들은 정뜨리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 부근에서 총살되어 암매장 되거나 돌에 묶인 채 제주 앞바다에 던져져 희생되었다니 그 슬프고도 참담한 아픔을 우리가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3 동굴 유적지


기억...평화와 인권의 길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은 이런 제주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그 아픔을 교훈 삼아 평화, 인권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조성되었어요. 아픔을 잊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기억하여 살아남은 우리는 더이상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 그 마음이 붉게 자리한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지하 1층, 지상 1층의 소박한 규모이지만 그렇다고 담긴 마음이 작은 건 아니겠지요.

추모의 방

 

  먼저 1층 입구로 들어서면 추모의 방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추모의 방은 제주 4.3사건 당시 제주에서 생사를 알 수 없거나, 혹은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중 한국 전쟁 발발과 함께 행방불명된 3,994명의 영혼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래고자 하는 공간이에요. 푸른 바닥과 물결치는 벽면으로 볼 수 없는 그들의 이름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합니다. 사그라져가는 이름을 뒤로 하고 나오면서 만나는 김수열 시인의 <물에서 온 편지>는 그들의 염원인 듯 시리게 읽힙니다. 

 

 추모의 방을 나오면 지하 전시실로 이동해요. 지하전시실 가는 길 벽면에 쓰인 글귀 속 <그 고운 사람들>의 시간으로 들어가 봅니다.     

  지하전시실에는 산지항의 개항과 수탈의 역사가 동양척식주식회사 주정공장과 함께 소개되어 있어요. 다른 한쪽으로는 제주4.3과 초토화작전, 그리고 선무작전과 하산한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답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주정공장이 수용소로 이용될 당시의 모습과 실체 없는 허구의 재판으로 희생된 이들의 이야기가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지요. 


 길게 놓인 통로 벽면에는 제주수형인들의 수형인 명부와 그들의 이야기가 놓여 있어요. 여전히 집의 소와 말을 걱정하며 자신을 염려할 노부모에게 안심을 전하던 34살의 젊은이의 소금기 어린 눈물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들의 노력도 한눈에 볼 수 있답니다. 

벽에 새겨진 수형인명부
수형인 고두정의 글

 

 마지막 나서는 길에 영상 속 동백꽃이 그들의 무죄와 그들에 대한 그리움을 빨갛게 뚝뚝 떨어뜨리며 함께 합니다. 강요배 작가의 그림 한 점이 먹빛의 기도로 남았습니다. 그들을 위한 진혼의 마음은 쇳빛으로 스며듭니다.  오랜 시간 발길을 잡는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4월의 제주 봄빛은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혹여 제주의 4월을 만나러 온다면 이들이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주시길.. 부디...


*이 매거진의 글은 제주시정 홍보지 <열린제주시>의 '일과 열정'란과 제주시블로그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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