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by kndewa

보다시피 『페스트』에 대한 서평을 쓰고자 한다. 사실 이 전에 쓰던 글이 있었는데 도저히 진전이 안되고 맛이 영 안 살아서 폐기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독후감을 써보기로 했다.


『페스트』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에 대해 서술하기 전에 꽤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거 같은 『이방인』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한다. 어찌 됐든 『페스트』 읽게 된 것도, 카뮈의 사상에 흥미를 갖게 된 것도 '이방인'이라는 매력적인 제목을 가진 짧은 책 덕분이니까. 흔히 카뮈의 사상, 실존주의는 (그 자체만으로 매우 매우 모호하다만) 은 '부조리'와 '반항'이라는 키워드로 대표가 된다. 무정하고 불가항력적인 세상의 부조리에 반항하는 강건한 인간. 하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은 강건함과는 동떨어진 삶을 사는 한 무고한 사내의 발자취를 좇는다. 밀려오는 삶의 파도에 맞서 자맥질조차 하지 않던, 아니 하길 거부하던 그 남성은 법정에서 패륜아이자 사이코패스 살인자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는다. 물론 사내 본인은 동요하지 않은 채 죽음마저 한결같이 무신경히 받아들인다.


작품 내내 무기력하고 무신경한 사내의 모습을 카뮈가 부르짖는 반항으로 여기는 안타까운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작이니 사상적 정수가 들어있겠지'하고 속단하는 사람이 꽤나 있는 모양이다. 『이방인』을 읽은 사람이 수백만 명이 넘어갈 테니 이는 파급력이 굉장한 오판 아닐까. 사실 카뮈의 노트를 보면 그는 그의 사상을 여러 작품에 걸쳐 펼칠 계획을 하고 있었다.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로 부조리에 대한 '거부'를, 『페스트』와 『반항하는 인간』으로 부조리의 '긍정'을, 더 나아가 부조리에 대한 '사랑'?을 펼쳐 보이려 했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인해 마지막 단계 '사랑'을 완성시키지 못한 채 요절한다.) 따라서 『이방인』은 부조리에 맞선 반항보다는 부조리를 처음 접한 인생 초보자의 행보를 묘사하는 거대한 작품관의 서문에 가깝고, 사내의 행동은 반항이 아닌 거부다. 만약 카뮈 사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싶다면 그의 작품을 전부 읽거나, 되려 『이방인』을 배제하고 후기 작품을 읽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을 내려놓고 나서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문학성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대체 어느 부분이 반항이라는 말인가. 뫼르소의 소극성은 내가 아는 실존주의와 완전히 어긋나는데? 그리하여 조사 끝에 알게 된 게 상술된 내용이고, 카뮈가 전하는 바를 확실히 알아내기 위해 『페스트』를 집어 들었던 것이다. 『페스트』의 서평을 즉흥적으로 압축해 보자면 ' 『이방인』은 정말 맛보기였구나'다. 『이방인』을 읽으면서 간략하게 느꼈던 카뮈의 특장점을 장장 400페이지에 걸쳐 음미할 수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방인』에서도 빛을 발했던 그의 문장력이다. 아래와 같은 그의 담담하고 건조하면서도 잔혹하리만치 생생한 묘사가 번역의 근본적 불완전성을 뚫고 느껴졌다. 내가 그은 밑줄의 절반은 아마 그의 문장력에 대한 감탄에서 나왔으리라 생각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은 내가 어떻게든 온몸을 비틀어가며 따라갈 수 있겠다 싶지만 이 양반의 문장은 넘볼 수 없는 높고 두터운 벽이다.


"그 적막한 대도시는 이미 활기를 잃어버린 육중한 입방체들을 모아 놓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고, 단지 그 사이에서 잊힌 자선가들이나 영원히 청동 속에 갇혀 질식해 버린 그 옛날 위인들의 흉상만이 돌이나 쇠로 만든 그 인공의 얼굴을 통해, 한때는 인간이었던 것들이 몰락한 영상을 상기시키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었다." p. 227


보통 작가가 생생함을 좇다 보면 문장이 길어지고 문체가 '축축'해진다. 『죄와 벌』과 같은 서양, 특히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 이 느낌이 두드러졌는데, 배배 꼬인 숲 속 오솔길을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숲은 숨 막히도록 아름답고 구석구석 생명이 넘쳐흘렀지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라 자꾸 길바닥이 신경 쓰였다. 카뮈의 문장은 이와 달리 내가 사랑하는 일본 사소설의 간결한 건조함과 유럽 문학의 자유분방함이 적절히 섞여있다. 그래서 적막, 질식, 몰락과 같은 부정적 단어들이 연거푸 쓰였음에도 촌스럽거나 장황하긴커녕 담담하고 냉혹하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일본 사소설이 잘 정리된 책장과도 같은 바흐의 음악이라면 (바흐는 들을 때는 항상 눈앞에 거대한 책장이 보인다) 카뮈의 글은 쇼팽의 음악이다. 쇼팽의 음악은 굉장히 경제적으로 구성돼 있어서 기교마저 선율의 일부로서 기능한다. 카뮈의 문장도 같은 맥락이다. 클래식 음악이 생소한 분들을 위해 정리하자면 단어선택이 상당히 경제적이되 기발하다. (프랑스인 특인가?)


"여름이 대번에 하늘과 집 위에서 폭발했다... 태양은 우리 시민들을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뒤쫓아 가서, 어디든 멈추어 서기만 하면 후려치는 것이었다." p. 150

"그것들이 지나가면 11월의 싸늘하고 노란 햇빛이 다시 그 집들 위를 비추는 것이었다." p.305


보다시피 카뮈는 '여름'과 '폭발', '태양'과 후려치다, '햇빛'과 싸늘함 과 같이 본래 사이가 어색한 단어들을 한데 모아 친숙한 의미를 형성해 낸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묘사를 구상해 내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지만, 원리 정도는 유추해 볼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땡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의 행인의 인상착의부터 찡그린 얼굴, 땀방울의 형태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독자의 머리에 사진을 손수 그려 넣는다면, 카뮈는 간결하고 추상적인 묘사로 윤곽선을 제시하고 독자가 색을 채워 넣도록 한다. 태양의 후려침과 여름의 폭발이라는 순수한 문학적 개념이 갖는 추상성을 해소하기 위해 독자는 그에 상응하는 확실성을 갖는 본인만의 경험을 꺼내 들게 된다. 타인의 체험이 아무리 생생한들 他라는 근본적 한계가 있지만, 타인의 체험에 독자 본인의 체험이 덧씌워질 수만 있다면 他라는 글자가 일정 부분 自로 바뀐다. 이것이 카뮈의 전매특허든 아니든, 나는 『페스트』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러한 문학적 표현들을 곱씹으며 아주 큰 재미를 느꼈다.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문장력의 궁극이 아닐까 싶다.


기교적인 부분은 이쯤 하고, 글의 내용에 좀 더 밀접한 감상을 논해보자. 국어선생님 曰, 모든 문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거대한 답이다. 따라서 뛰어난 작가에게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이란 당연히 갖춰야 할 덕목이다. 그럼에도 내가 카뮈의 통찰력을 논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 통찰력이 작품의 다른 요소들과 재밌는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페스트라는 장치로 사회라는 가면을 들어내고 인간의 밑바닥을 드러냄으로써 카뮈는 우리가 숭상하는 감정들의 본질이 우리가 바라는 것만큼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음을 시사한다. 취지부터 방법론까지 참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끝없이 소유하고 싶다거나, 또는 한동한 헤어져 있어야만 된 경우 다시 만나는 날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결코 깨어나지 않을 꿈도 없는 깊은 잠 속에 빠뜨려 놓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것이 안심 못하는 마음의 가당찮은 욕망이기 때문이다." p.149

"'항상 나보다 부자유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무렵에 품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요약하는 표현이었다." p.223


사랑과 희망은 고귀하다. 절망의 수렁에 빠진 주인공이 사랑을 발판 삼아 나아가고 희망을 되뇌며 연명한다. 하지만 페스트의 손짓에 사랑은 가죽을 벗고 가련한 이기심을 드러내고, 희망은 남의 희망을 양분 삼아 피어난다. 페스트(흑사병)보다도 시꺼먼 건 우리가 아닐까, 카뮈는 질문한다. 페스트에 대한 묘사를 한 번 보자.


"페스트는 마치 추상처럼 단조로운 것이었다." p.122

"페스트는 그 무엇보다도 용의주도하고 빈틈없으며 그 기능이 순조로운 하나의 행정사무였다." p.236

"페스트는 고독하면서도 고독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을 공범자로 삼는다." p.257


페스트는 생명을 포식하는 굶주린 재앙다운 괴물이 아니라 서슬 퍼런 의지를 가진 하나의 순리로서 묘사된다. 단순히 보면 이는 카뮈 사상의 핵심인 무정한 부조리와 일맥상통하지만, 나는 『페스트』라는 책이 사람과 전염병 간의 표면적 대립구도를 서술하기 위해 집필되었다 생각하지 않는다. 되려 페스트는 인간 본질에 기생하는 나약함이라는 진짜 부조리를 이끌어내는 하나의 도구로서 기능한다 여겨진다.


"그가 상대방에게 전달하고자 한 이미지는 기대와 정열의 불 속에서 오래 익힌 것이었다. 그와 반대로 상대방은 습관적인 감동이나 시장에 가면 살 수 있는 상투적인 괴로움이나, 판에 박힌 감상 정도로 상상하는 것이었다." p.104

"하강기에 있어서 인간의 하루하루는 이미 그의 것이 아닌지라 언제 빼앗기고 말지도 모르는 일이며, 따라서 그 자신은 어떻게도 할 수도 없고 그러니까 전혀 아무것도 취하지 않는 것이 바로 최선의 길이라고 대강 설명했다." p.158

"천만에요. 인간은 오랫동안 고통을 참거나 오랫동안 행복해진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가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p.215


페스트로 말미암아 서로 제대로 된 소통조차 하지 못하고, 인생 대부분을 떠밀려가며 허비하고, 시간에 적셔져 굳어가는 인간의 고질적인 불완전성이 작품 내내 가감 없이 드러난다. 별다른 의미 없이 세상에 나타나 별다른 의미 없이 스러져가는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들의 비참함을 카뮈를 비롯한 실존주의 작가들은 왜 묘사하고 있을까. 그것이 그들의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 아닐까.


"이런 방법으로든 저런 방법으로든 싸워야 한다는 것이지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었다." p.179

"불행 속에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일면이 있다. 그러나 추상이 우리를 죽이기 시작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추상과 대결해야 한다." p.120


클리셰, 어쩌면 김 빠지기는 것 같기도 한 "결말"이다. 핵심은 반항, 지는 싸움이라도 그것이 일방적인 패배가 아닌 싸움임에 의의가 있다... 라. 과도하게 희망적이지도, 이상주의적이지도 않은 이 결론이 은근히 마음에 든다. 본래 약간의 인간혐오를 갖고 있을뿐더러, 우주와 신, 초지능과 같은 장대한 개념을 추종하는 사람으로서 인간이란 어찌할 수 없는 미물이라 예전부터 느껴왔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읽은 마블 만화책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정확히는 이게 아니지만,


"When death comes for you, make sure you scream right back in her face."


만화책의 내용과는 크게 관련 없는, 주인공이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었다. 주인공의 시시껄렁한 성격상 그냥 개똥철학으로 치부되며 넘어갔지만, 11살에 그 책을 읽은 이후 그 만화책을 떠올릴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저 대사였다. 그냥 머릿속의 한 구석에 처박혀 있던 대사를 8년의 시간 후 다시 마주하니 감회가 새롭다. 뭐, 저 대사가 내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건 아니지만, 행동을 옮기진 않았을지언정 여렸을 때부터 실존주의의 핵심을 간직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내심 기분이 좋다. 내가 본질적으로 실존주의에 그만큼 알게 모르게 매력을 느낀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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