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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울 Apr 28. 2020

날이 좋으면 밭으로 갑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침에 눈을 뜨면 유난히 햇빛이 맑은 날이 있다.

내리쬐는 햇빛을 맞으며 기지개를 켜는 여유로운 낭만도 잠시, 정신을 차리고 생각한다.

아 오늘도 밭으로 가겠구나.


본가에 내려가면 묘목 관련 일을 하시는 아빠를 도와 일손을 보탠다.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부모님과 가끔 포상으로 떨어지는 치킨이 아른거려 자발적으로 나가는 편이다.

그래도 밭일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나무가 주는 알 수 없는 힘 때문이라 말하겠다.


어기적어기적 옷을 주워 입고 축축 늘어지는 몸을 이끌며 밭으로 나가면 나를 기다리는 나무들이 보인다.


일의 과정은 아주 간단하다.

아직 자라나고 있는 작은 나무들의 뿌리를 털고 정리하며 아빠와 이 나무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나무는 무엇이며 어디에 갈 것이고 이렇게 쓰인다. 하며.


같이 일하시는 할머니들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들의 세상을 배우기도 한다.

가끔 과거의 이야기를 하시다가 눈물을 보이시는 경우가 있다.

그 소녀시절 할머니들의 삶이 스쳐 지나간다.

그럴 때면 괜스레 할머니와 나무를 번갈아가며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내가 나무인지, 나무가 나인지 헷갈릴 시점이 되면 기적처럼 참이 등장한다.

생수 한잔 들이켜고 흙 언덕 자리에 앉아 손 훌훌 털고 초코파이 한입 먹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

.

.


햇볕은 뜨겁게 살을 태우고 일은 고되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하다 보면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지고 안정이 되곤 한다.

종종 만나는 반가운 친구들 때문일까?


나무 피톤치드의 영향일까?


기적처럼 나타나는 참 때문일까?


고된 일을 위험상황으로 간주하고 나오는 몸의 행복 호르몬..?


이유가 어찌 됐던 노동요를 들으며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지고 고민도 잠시 잊는다.

나무는 말이 없지만 거친 흙내 속에서 나무의 향은 은은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그 향을 맡고 있자면 괜스레 행복해진다.


그럴 때면 태생이 농부의 딸인가 보다 하고 생각한다.


.

.

.


나무는 나에게 많은 것들을 주곤 한다.

잡념을 덜어주고 부모님과의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뿐만 아니라

내 밥줄 담당이기도 했으니,

나는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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