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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울 Jul 17. 2020

오감으로 뉴욕을 기억하는 방법

Sleep no more, 잠들 수 없는 밤


뉴욕을 여행하며 느낀 것이 있다면 예술적 체험이 아주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가깝게는 거리의 예술가들 그리고 뉴욕 자체가 가진 에너지까지 모든 게 영감 덩어리이다.

특히 다양한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가장 부러웠다.

브로드웨이부터 소극장, 개인의 공연들 심지어 거리의 공연들까지 무궁무진한 도시이다.



그중 뉴욕에 가기 전 이 공연은 죽기 전에 봐야겠다 싶은 공연이 있어 바로 예매를 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너무 감명받아 공연이 끝나자마자 다음 공연을 예매해버린 결말이다.

공연의 이름은

'Sleep no more'



건물 전체를 무대로 사용하여 관객이 가면을 쓰고  배우들의 동선을 따라다니며 퍼포먼스를 관람하는 동적인 공연이다.

배우들이 나체의 상태로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 충격적이고 가괴한 장면들이 많기 때문에 성인만 관람할 수 있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은 소설 맥배스에서 차용했다고 하고 입장하는 순간부터 끝이 날 때까지 오직 분위기, 분위기, 분위기로 승부한다.

전체적으로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에다 강렬한 인테리어와 효과들이 곳곳에 있어서 아예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다.

심지어 입장하기 전과 후로 바에서 대기를 하는데 입장 순간부터 직원들이 철저하게 컨셉을 따라 행동한다.

정말 작정하고 공연을 기획했구나 하고 느껴졌다.


공연은 대사가 없기 때문에 관람의 부담은 없겠지만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모든 배우들을 따라다녀야 한다.

하지만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하기만 해도 전혀 아쉬움이 없을 것이다.

정신없이 몰입하다 보면 마치 내가 이야기 안에서 유령이 되어 따라다니는 듯한 기분이다.


그리고 공연의 포인트는 배우들이 직접 관객과 소통한다는 것이다.

배우들은 관객을 즉석에서 선택해 붙잡고 울고 귓속말을 하기도 하며 어떤 방이나 공간으로 데려가 은밀한(?) 시간을 보내고 나오기도 한다.

나에게도 행운의 순간이 있었는데 배우가 내민 손을 잡자 몇 바퀴 춤을 추더니 사라졌다.

뭐라고 중얼거렸던 거 같은데 노랫소리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다..ㅜㅜ


저세상 분위기를 좋아하고 무거운 추리물, 옛날 컬트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환장할 만한 공연임은 당연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피칠갑이 된 채 나체의 상태로 울부짖던 주인공.. 동물의 탈을 쓰고 일렉트릭 한 음악에 맞춘 기괴한 퍼포먼스

그리고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펼치는 강렬한 마무리 퍼포먼스까지 시각과 청각이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곳곳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 심지어 실험실(?) 같은 공간에 놓인 사탕도 먹을 수 있기에 후각 미각까지 잡아버린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공연임에는 틀림없다.


두 번째 공연을 봤을 때는 더욱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어떤 배우를 따라가던 잊지 못할 장면들이 펼쳐지기 때문에 몇 번이고 더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멍한 상태로 라운지에 돌아오면 금발의 가수가 재즈 공연을 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모두 혼이 빠진 상태로 웅성거리며 쉴 새 없이 자신이 봤던 것들을 떠들고 있었다.

함께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 볼 친구가 없던 것이 처음으로 아쉬운 순간이었다.


공연이 나에게 남긴 것은 근육통, 미친 듯이 좋은 재즈 음악들, 그리고 뉴욕에 관한 애정 한 움큼이었다.

(공연 중에는 몰입해서 고통을 잊지만 미친 듯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뛰어다니기 때문에 무시무시한 다음날이 기다린다. 스트레칭을 제대로하고 반드시 운동화를 신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흘러나오던 재즈 음악들, 기괴한 일렉트로닉 한 음악들이 계속 귀에 맴돌아 지금까지 꾸준히 듣고 있고 이 공연을 위해 다시 뉴욕에 가고 싶을 만큼 인상적인 시간이었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이런 공연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연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생생하게 꿈을 꾸고 온 느낌이다.

제발 사라지지 말고 계속 존재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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