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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울 May 20. 2020

뉴욕에서 만난 고마운 인연들 #3

뉴욕에서 다시 만난 초등학교 친구

나와 친구는 타임스퀘어 앞 빨간 계단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처음 가는 타임스퀘어는 생각보다 더 복잡했고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원래 북적이는 곳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걱정이 됐지만, 오히려 뉴욕에 온 것이 실감이 나고 코를 찌르는 하수구 냄새마저 반가웠다.


빨간 계단에는 만남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정신이 뺏길세라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기분으로 친구를 찾아 헤맸다.

누군가 나를 응시하는 기분에 그곳을 바라보자, 친구가 예전과 똑같이 새하얀 피부와 풍성한 긴 머리로 웃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서로 말없이 웃으며 바라보다가,

"야 사람 진짜 많다 배고파 죽을 거 같아 밥 먹으러 가자 뭐 먹을래?"

"야 미국까지 왔는데 빅맥 먹어야지 가자 가자"

10년 만에 마주한 사이지만 아무런 어색함도, 아무런 멋쩍은 행동도 없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반겼다.


맞아, 우린 항상 그랬었다.

이 친구와 함께라면 모든 행동이 편했고 진지함과 가벼움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이 세상에 무엇에도 편견을 가지지 않고 항상 따뜻함으로 다가가던 친구였다.

초등학생이었지만 참 성숙하고 밝았던 친구를 보며 나는 이런 친구가 있어 참 운이 좋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우리는 빅맥을 먹고 타임스퀘어를 쏘아다니다가 뉴저지에 있는 친구의 집으로 갔다.

아쉽게도 친구는 이틀 뒤에 중국으로 갈 예정이어서 짧은 시간 동안 알차게 보내야 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한국에서 처음 오는 손님이라며 나를 반길 준비를 단단히 하고 계셨고 지극히 미국스러운 이틀을 보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미국의 동네축제를 가서 총 게임으로 코끼리 인형을 타기도 하고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피자를 사 먹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아보카도를 먹어 본 적 없는 내게 아보카도를 무더기로 사주시기도 했다.

처음 먹어본 아보카도의 맛은.. 음.. 서걱서걱한 달걀노른자의 맛.

안 익은 아보카도는 니맛내맛도 아니었지만 맛있다며 숟가락으로 싹싹 긁어먹었다.

다음날 먹어본 제대로 된 아보카도는 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미국에 온 지 하루 만에 너무나 미국스럽고 일상스러운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는 잠들기 전 낮에 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

주무시는 어머니께 들킬까 봐 속닥속닥 실없이 웃긴 농담을 하며 낄낄거리고 바닥을 굴러 다녔다.


우리는 뉴욕의 밤을 지새우며 10년 전의 허물없이 서로 행복했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었구나.


다음날 아침 이상하게 허기진 배를 잡고 나가보니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한식이 차려져 있었다.

"시차 때문에 아침에 많이 배고플 거야~"

(뉴욕의 아침 8시는 한국시간 밤 9시 정도이다. )

시차로 인해 일찍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새벽부터 음식을 만들고 계셨던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리 기쁠 수가 없었다.

마음이 담겨 더욱 배부른 아침식사였다.


친구의 어머니는 혼자 여행을 할 내가 걱정된다며 하루에 한번 연락 할 것을 당부하셨고 손수만든 삼각김밥과 간식꾸러미를 챙겨주셨다.

삼각김밥은 가방에 고이 넣고 잊고 있다가 다음날 센트럴 파크를 거닐다 나무 그늘에 철퍼덕 앉아 발견했다.

한입 물었는데, 눈물이 나올뻔 했다.

아직도 고소하고 달콤짭짤한 고추장소고기 삼각김밥을 잊을 수 없다.




여행 중 만난 인연들을 돌아보면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전에 깨달은 것은 마음을 열면 좋은 인연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허물없이 다가가고 진솔하게 사람을 상대하면 어떤 식으로 던 복에 겨운 인연이 찾아왔던 것 같다.


아마 날 잘 아는 사람들이 내가 여행 중 많은 사람에게 먼저 다가갔다는 것을 알면 굉장히 놀랄 것이다.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인 내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편하고 허물없는 모습이었으니까.

사람을 만날 때 괜히 의기소침해지고 할 말을 쥐어 짜내며 형식적으로 노력하던 지난 순간들이 지나간다.

무슨 차이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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