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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역뿌리 May 17. 2018

<트립 투 스페인> 꽃중년과 함께 춤을

본 글은 <트립 투 스페인>의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솔직한 말로, 당황스러웠다. 크레딧이 오르는데, 내 머릿속엔 물음표만 가득했다(아, 물론 극적인 엔딩장면에서는 피식 했다). 스티븐 쿠거와 롭 브라이든, 영국의 꽃중년 콤비의 스페인 곳곳 맛집 탐방기를 담는데, 거침없이 날리는 특유의 영국식 유머도, 끊임없이 먹어대는 스페인 특유의 음식도 공감되지 않았다.

     

진지하고도 썰렁한 영국식 유머에 배꼽을 부여잡고 한바탕 웃을 수 있는 날이 올까. <트립 투 스페인> 스틸.


  그림의 떡이라고, 스크린 속에 있는 음식들을 절대 못 먹어서가 아니다. 근사한 요리를 클로즈업으로 오랫동안 잡아주지도 않고, 주인공으로 내세운 중년콤비는 맛이 어떤지 세세하게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재료부터 시작하는 이영자의 찰진 묘사와 맛 그대로를 세세하게 표현하는 백종원의 평의 스페인 버전을 기대한 탓일까.


  영국식 유머도 마찬가지다. 둘은 어디에서나 주변 인물의 성대모사를 하기도 하고, 툭하고 냉소적 유머를 내뱉기도 한다. 간혹 아는 배우의 성대모사가 나오면 솔깃했지만(마이클 케인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장면은 도통 웃을 수 없었다. 과장되게 말하거나 반어법이나 역설법과 같은 온 풍자기법을 동원해 유머를 치지만, 영국의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맥락을 알지 못하기에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오직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노는 것 같아 소외되는 느낌도 받았다. 한국으로 수출할 심산이라면, 적어도 문화적 코드를 고려해야 하지 않았나요.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하는 그대야말로 진정한 꽃중년. <트립 투 스페인> 스틸.


  이상하게도 싫은 감정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유쾌했다. 공감도, 이해도, 가지 않았지만 식당이 바뀔 때마다 식사를 하며 다양한 주제에 대해 쉴 틈 없이 재미있는 수다 떠는 아저씨들을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스크린 안으로 들어가서 그 은밀한 여행에 동참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찌됐든, 적어도 40년을 살아온 중년 남성들이기에. 켜켜이 살아낸 그들의 인생에는 잊지 못할 트라우마도, 앞으로 마주할 시련도 있을 것이다(영화 속 스티브는 별거했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아내와 사고 친 아들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그러나 오래된 친구와 여행의 순간만큼은 모든 짐을 잠시 한쪽에 묻어둔 채 새로운 재미를 터트리는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그들의 케미 속에서 활력이 돋보였다. 그러니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스페인 시리즈가 다가 아니었다. 스티븐 쿠거와 롭 브라이든은 이탈리아도, 영국도 다녀왔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꽃할배 시리즈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원래 방송 프로그램을 영화화했다고 하니, 그 귀여운 콤비는 진짜 자신을 연기한 셈이다. 그래서, ‘여행’이라는 컨셉과 ‘유머러스한 대화’라는 소재가 작위적이지 않았고, 그래서 공감조차 못하는 이 영화가 좋았던 것 같다. 다음엔 영국식 유머를 배워오겠습니다.


산초와 돈키호테로 변장한 그들은 퍽 어울렸다. <트립 투 스페인>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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