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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역뿌리 Aug 01. 2017

#50 <지구를 지켜라>,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하여  

*본 글은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구를 지켜라> 스틸컷
오빤 미치지 않았어"

     

영화는 병구의 유일한 편, 순이의 말로 시작한다. 여주인공이기도 한 그녀가 병구에게 '미치지 않았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 또한 이미 미쳐 있는 병구에게 '미쳐있을 뿐'이라 치부할 뿐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병구를 정신병자로 몰아간다. 그는 ‘지구를 지키겠다’는 명목 하에 납치한 강만식을 갖가지 방법으로 고문한다. 그에게 강만식은 안드로메다 PK-45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강만식을 고문하며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병구를 미친 사람으로 단정 짓는다. 그리고 철저하게 비정상인 범주에 있는 그에게 거리두기를 자처한다.

 

     

이번 개기월식 때 안드로메다에서 왕자가 올 거야.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어.  그전에 저놈부터 잡아야 돼. 이대로 놔뒀다간 엄청난 재앙이 몰려올 거야. 그럼 아무도 살아남지 못해, 아무도. 아무도 없어. 우리가 지구를 지켜야 돼"  

     

어린 시절부터 병구는 외부의 폭력에 노출되며 자랐다. 아버지는 광산 일을 하던 중 부상을 당하고, 만취상태로 가정폭력까지 행사하게 된다. 이에 병구의 어머니는 오열할 뿐이고, 병구 또한 그 곁에서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그의 행복했던 가정에 점차 균열이 일어나는 셈이다.


병구는 이 모든 것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고 싶었을 테다. 가정의 평화를 깨뜨린 주범을 찾아내 가혹한 복수를 하고 싶었을 테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다. 어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모든 일을 지켜보는 일밖에 없다. 오롯이 고통을 느끼며 그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깨닫는다. 강한 자는 약한 자에게 폭력을 가하고, 약한 자는 일방적으로 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는 가정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병구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교도소에서는 교도관에 의해 폭력을 당한다. 그는 어떠한 대항도 하지 못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강만식의 회사인 화학공장에서 어머니와 애인이 파업 진압 과정에서 불구가 된다. 어머니는 식물인간이 되고, 애인은 죽음을 맞이한다. 여러 국면으로 맞이한 폭력으로 인해 병구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지구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일들이 모두 외계인의 조종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지구를 지켜라> 스틸컷

     

"넌 날 못 이겨. 왜냐하면 너 같은 병신 새끼한테 한 번도 진 적이 없거든. 너 같은 놈들 잘 알아. 자기가 병신 새끼인 건 모르고 남의 탓만 하면서 병신처럼 사는 새끼들"


영화는 강만식이 외계인이었음을 밝힘으로써 끝이 난다. 우리가 '미친놈'이라 치부했던 병구의 말이 옳았음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그 누구도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바라보기'에만 충실했던 관객조차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를 멀찌감치 떨어져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결말부에 외계인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이 영화는 단순히 SF 물을 가장한 어느 개인의 복수극이 아님을 넌지시 말한다. 권력에 대항하는 개인의 복수극을 가장한, 힘의 논리로 점철된 지구를 꼬집는 SF 영화임을 말한다.

     

결국 강만식의 일당, 안드로메다 PK-45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은 지구를 폭파시킨다. 그들은 공격성 강한 유전자를 지닌 지구인들에게서 어떠한 희망조차 발견하지 못한다. 외계인들은 사욕 채우기에 급급해 같은 종족끼리 폭력과 살인을 서슴지 않는 ‘인간들의 짓거리’로만 보기 때문이다.


관객들 또한 구조 속 권력의 최하 계층에 있는 자가 죽고, 구조 속 최상 계층에 있는 자가 살아남는 장면으로 서사가 완결되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는 어떠한 열린 결말을 허용하지도 않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도 주지 않는다. 그저 광활한 우주 속 지구가 폭파되는 장면을 대미로 장식하여 씁쓸함과 허망함을 느끼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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