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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역뿌리 Aug 24. 2017

#53 <레이디 맥베스> 그녀는 악녀가 아니다

*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와 관련이 없다.  '레이디 맥베스', 언뜻 보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 속 맥베스의 아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레이디 맥베스> 속 캐서린은 옆에서 맥베스의 악행을 부추기는 아내와는 다르다. 그녀는 오직 욕망에 눈이 먼 채 악행을 자행하는 인물이다. 이 점에서 아내가 아닌, 맥베스와 유사해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여러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두 캐릭터와는 달리, 차별적인 캐릭터를 구축한다.



<레이디 맥베스> 스틸컷


캐서린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자들을 모조리 처단한다. 설사 그 대상이 꼬마아이일지라도. 그녀는 남편 알렉산더의 혼외자식인 테디마저 없애기에 이른다. 자신과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라서 살인한 것이 아니다. 하는 수 없이 아이와 함께 저택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세상인 저택에서 권력을 아이에게 내줄 수 없다. 시아버지 보리스와 알렉산더를 차례로 살인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복수심에 의한 것이 절대 아니다. 쥐어잡고 있던 그녀의 권력을 그들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녀가 내려놓고 싶지 않아하던 권력은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욕망과 욕망하는 방법을 알기 전까지는 그녀는 수동적인 객체였다. 매일 아침 여자시종 애나는 캐서린에게 불편한 크리놀린을 착용시킨 채 코르셋으로 허리를 꽉 조인다. 누가 봐도 뜨아할 고통이지만 그녀는 아픈 내색 하지 않는다. 매일 밤 머리칼이 뜯겨나갈 정도로 머리를 빗길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혹여나 신음소리가 새어나올까, 이를 악물고 참는다.


저택에 들어온 이래로 알렉산더는 늘상 강압적으로 캐서린에게 명령한다. 잠옷을 벗으라고 하거나 벽을 보고 서있으라는 식. 그녀는 기분이 언짢은 듯하지만 이내 그가 시키는 대로 이행한다. 그러면 그는 침대에 누워 자버린다. 방안에 우두커니 서 있는 캐서린은 아무 저항조차 하지 않는다. 보리스가 그녀가 좋아하는 외출을 금하고, 아내로서의 역할만 강요할 때에도 캐서린은 잠시 의견을 내세우는 듯하지만 결국 그의 말에 순종한다. 철저하게 자신의 생각이 배제된 채 그녀의 일상이 굴러가는 셈이다. 캐서린은 의견을 끈질기게 관철시키지도 않는다. 그렇게까지 행동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레이디 맥베스> 스틸컷. 욕망 앞에 그녀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저택을 주름잡던 알렉산더과 보리스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캐서린은 그 필요성을 절감한다. 저택의 남자하인, 세바스찬이 그녀의 욕망을 깨운다. 캐서린은 계층적 또는 윤리적 금단의 영역을 넘나들며 그제서야 내재된 욕망을 인식한다. 욕망의 맛을 본 이상,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다. 그녀는 욕망을 사수하기 위해 그리고 저택 내 새롭게 자리잡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고 행한다.


캐서린을 권력욕에 휩싸인 악녀로 볼지도 모르겠다. 맞다. 19세기 영국에서 가족을 살인함으로써 당시 잘 짜여진 사회를 전복시키는자는 악녀가 맞다. 그러나 21세기에서는 조금 다르다. 기존의 가부장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한-원래의 질서로 되돌려놓은-인물로 보인다. 캐서린이 욕망을 좇아 그녀에게 유리한 세상으로 만든 게 분명하지만, 이는 곧 새로운 질서가 구축된 세상을 향한 첫걸음에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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