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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율 Sep 25. 2024

책과 연애하기

제1장 독서 불변의 법칙

  나의 사춘기는 늦게 왔다. 40대에 온 사춘기는 세상에 반항하며 내 삶을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좋아하나, 잘할 줄 아는 것은 무엇인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이런 질문들을 10대 20대에 하지 못하고 지금 이 나이에 하고 있다. 늦게 온 사춘기는 독서로부터 시작되었다. 책과 연애하면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책과 함께하는 여행을 즐기면서 책이 주인인 책 공간을 찾아다녔다. 기차와 여행지에서 책 읽는 즐거움과 설렘이 좋았다. 올가을 오춘기를 맞았다. 불혹의 나이, 책 읽고 글 쓰며 책으로 소통하는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준비한다. 20년 직장인의 삶을 그만두고 공유 오피스로 출근하며 ‘갭이어’를 하는 중이다. 처음엔 3개월만 하자고 했다. 8개월이 훌쩍 지났다. 사실 버티기 힘들 때도 많다. 불안감에 죽을 것 같은 공포감도 느낀다. 그럴 때면 도망가고 싶다. 다시 직장으로, 하던 일터로 말이다. 하지만 최소 1년은 버텨보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도서관에서 3년을 책만 읽은 김병완 저자의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를 다시 읽으며 위로했다. 놀아보지 못한 삶, 뒤처지면 끝장날 것 같던 삶, 불안해 안절부절못했던 내가 지금 혼자서 사춘기 때 경험했어야 하는 고민과 인생 공부를 하고 있다. 낯부끄러운 일이다. 해보고 싶었던 일 목록을 노트에 썼다.


  ‘아침형 인간으로 밤 11시 잠들고, 5시 일어나기’, ‘읽은 책 엑셀로 정리하기’, ‘1日 1冊 독서 리뷰 블로그 글쓰기’, ‘브런치 작가 되기’, ‘북스테이 경험하기’(책과 함께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읽고 쓰고 뛰고), ‘책 보며 2호선 한 바퀴 돌다 서점가기’, ‘동네 카페 내 자리 만들기’, ‘조조 영화 보고 낮술’, ‘옷장 정리 버리기’, ‘운필각 정원 가꾸기’(유리온실, 캠핑데크, 농원 간판 만들기), ‘독서와 재테크 독서모임 만들어 운영하기’, ‘서울 도시 건축 부동산 답사 프로그램 만들어 운영하기’, ‘자급자족하는 삶, 밤나무 농장 관리 및 브랜드 만들어 상품화하기’, ‘1인 지식기업 창업’, ‘글쓰기 공부’(단체나 모임에 가입하여 전문적으로 배우기), ‘전자책 출간하기’, ‘독서 경영 공부·독서지도사 등 전문가 되기’, ‘주 1회 독서모임 참여하기’, ‘저자와의 북토크 강연 참여하기’, ‘책방 북카페 둘러보기’, ‘재테크 강연 등 전문강사 진출’, ‘매년 1권 책 쓰기’, ‘내 책 출간하고 북토크 하기’, ‘출판사 서포터즈 참여하기’, ‘독서모임 아지트 만들기’ 등.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다. 하나씩 실천하면서 내용이 추가될 것이다. 그리고 책과 사랑에 빠져 책만 생각하고, 책만 만지며, 책하고만 대화하는 온전한 하루를 실천해 보기로 했다. 아래는 책과 연애하기 경험을 적은 것이다.



■ 밤의 서재와 동침하기

  11월 중순 경복궁 옆 서촌에 자리한 호모북커스에서 책과 함께 하루 동침을 했다. 우연히 알게 된 이곳은 생각보다 아늑하고 책과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한옥을 그대로를 살려 서재를 들여 낮에는 공유 서재로 개방하고, 밤에는 숙박시설이 된다. 한옥 게스트하우스이면서 책-독서-한옥-숙박이라는 4개의 키워드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 듯 것이다. 우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각형의 중정이 있다. ㅁ자 구조를 떠올리면 될 것 같다. 내부는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고,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숙박이 가능한 서재 공간이다. 가로 3m x 세로 7m 정도의 직사각형 방안에 동쪽과 남쪽에 작은 창문이 있고, 벽에는 책장을 들여놓고 책을 꽂았다. 한옥의 서까래가 노출되어 천장이 높고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가로 1.5m 되는 나무 책상이 중정 쪽으로 2개 놓여 있어 의자에 앉아 책을 보거나 글쓰기에 안성맞춤이다. 따뜻한 느낌의 조명이 창호지와 잘 어울려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원룸형으로 개조하여 주방과 화장실도 내부에 설치하였다. 우리 전통가옥의 구조를 살리면서 편리성도 갖춘 한옥이다.

  책 읽는 사람이란 뜻의 ‘호모북커스’, 어떠한 소음 하나 없이 책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밤새 책을 읽다 아침을 맞았다. 같은 하늘 아래 서울이지만 인왕산을 품은 서촌의 아침 공기는 청량하다. 한옥에서의 잠은 피부에 수분을 주는 것 같다. 면도할 때 한결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사방에 책이 있다. 색다른 아침을 경험한다. 오전 11시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출근하면 퇴근을 하듯, 태어나면 죽음이 있듯. 모든 것엔 시작과 끝이 있다. 끝맺음엔 시원섭섭한 마음이 든다. 서촌 한옥 서재에서의 하룻밤이 아쉽다. 이 모든 것을 제자리에 놓고 떠나야 함이 서운하다. 언제 또 이 공간을 누릴 수 있으랴. 일주일은 이곳에 있어야 좀 성에 찰 것 같다.

  서가에 꽂힌 책 제목도 다 읽지 못했다. 이 책들과도 한 번씩은 교감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 번은 서가를 탈출해서 내 손으로 쓰다듬어 주고 제자리로 돌려보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작은 창문에 비치는 햇살은 온화함을 전달한다. 방바닥은 따뜻하고 허리 위는 선선한 웃풍이 있는 한옥. 독서가라면 이런 서재를 선호할 것이다. 차가운 머리. 창의적 생각에 어울리는 난방구조다. 머지않아 이곳에 다시 오리. 그때는 동네 주민이 되어 골목 곳곳을 마실 다니려 한다. 교보문고도 가깝다. 인왕산,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가 있는 곳. 아침에 궁궐 담벼락을 끼고 걸어보자. 한 일주일 책 독서 글쓰기 산책에 흠뻑 젖어 봤으면. 한옥에서 독서모임을 하면 또 어떤 맛일까 궁금해진다. 



■ 지하철 독서로 시작하는 서울 책 여행

  언제가 《나는 매일 책을 읽기로 했다》이란 책에서 본 다양한 독서 경험을 오늘에야 실천하려 한다. 일요일 아침 7시 30분 지하철 2호선에 올라탔다. 한산한 끝 칸, 끝자리에 앉았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펼쳐 들었다. 지금의 상황을 꼭 해보고 싶었다. 지하철 독서, 2호선 순환선 한 바퀴를 책을 보면서 도는 것이다. 엉덩이가 아파올 때쯤 어느 전철역에 내린다. 그 인근의 책방 또는 카페에 들른다. 커피 한잔을 받아들고 조용한 구석 자리에 앉아 두어 시간 책에 집중한다. 그러다 오전 11시 대형서점이 오픈할 때쯤 서점으로 이동한다. 이 시간에 서점은 한산하다. 책 고르기에 안성맞춤. 서가에 기대어 책을 골라 보기에 성가심이 없다. 오전 시간의 서점이 좋다. 마음 가는 책을 한 둘 골라 결제 후 길쭉한 원목 테이블에 자리하나를 차지한다. 연필, 형광펜, 자, 노트를 펼치고 느낌을 몇 자 적어간다. 금세 시간이 흘러간다. 오후 1시가 넘었다. 출출하다. 졸리기도 하고 지쳤다. 조용한 초밥 전문점을 찾아 들어간다. 모듬초밥에 청하 한 병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서점에서 읽다 만 책을 펼친다. 초밥 한 점에 청아 한 잔씩 넘긴다. 낮술 독서를 꼭 해보고 싶었다. 서촌에서 청와대 앞을 지나쳐 삼청동길로 한 바퀴 돌아 정독도서관까지 걷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쪽으로 발길을 돌려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회를 보고 시청역에서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온다. 꼬박 12시간을 밖에서 책과 함께 걸었다. 어떤 휴일보다 알찬 하루를 보냈다. 이렇게 하루에 해보고 싶었던 소원 여섯 가지를 한방에 풀었다.  

   

  07:30~08:40 지하철 2호선 강남 방향으로 탑승하여 책을 보다 2호선 시청역에 하차.

  08:40~10:50 스타벅스 광화문으로 이동하여, 두어 시간 독서.

  11:00~13:30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문구와 책 구경, 책 2권 사서 원목 탁자에서 읽음.

  13:50~15:30 서촌으로 이동하여 모듬초밥 청아 한 병으로 식사, 책과 함께하는 낮술 경험

  15:30~16:30 서촌-청와대-삼청동길-정독도서관 산책

  16:30~18:0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관람

  19:30 시청역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귀가    

 

  초여름. 일요일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꼭 해보고 싶었던 그 독서. 지하철 독서, 카페에서 책 읽기, 책방 투어, 낮술 독서, 도심 산책, 미술관 전시회 관람을 하루에 끝냈다. 서울은 지하철의 도시다. 그래서 책 읽기에 딱 좋다. 이후로도 종종 책과 온전히 하루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 나는 책과 연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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