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5. 04:19
# 오롯한 책임
## 1. 꾼의 행로
나는 꾼이다.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유랑하는 꾼. 어느 곳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구름 같은 존재. 남의 하늘 아래 붙어살면서도 그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꾼.
꾼이라는 말에는 묘한 자조가 섞여 있다. 기예를 파는 자, 재주를 파는 자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정착하지 못하는 자, 떠도는 자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나는 언제부터 이런 꾼이 되었을까? 언제부터 남의 하늘에 기대어 살게 되었을까?
하늘이라는 말을 생각한다. 하늘은 누구의 것인가? 모든 사람의 것이면서 동시에 아무의 것도 아닌 것이 하늘이다. 그런데 나는 왜 남의 하늘이라고 느끼는가? 어쩌면 진정한 자유인은 모든 하늘을 자신의 하늘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패턴이라는 말도 생각해 본다. 반복되는 삶의 궤적,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고리. 우리는 모두 어떤 패턴 속에서 살아간다. 다만 그 패턴을 자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 2. 책임의 변증법
"무릇 책임 없는 권리는 없다"라고 했던가. 하지만 권리 없는 책임은 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몸으로 알고 있다. 특별한 권리를 바란 적도 없는데, 책임은 업보처럼 따라다닌다.
책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 답해야 할 의무인가, 아니면 자신에게 답해야 할 의무인가? 책임의 무게는 누가 정하는가? 사회가 정하는가, 개인이 정하는가?
나는 생각한다. 책임이란 선택의 그림자가 아닐까. 선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때로는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이 인간 존재의 역설이다.
업보라는 말이 떠오른다. 전생의 업이 현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불교적 개념. 하지만 업보는 숙명론이 아니다. 업보는 현재의 선택이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과율의 다른 표현이다.
## 3. 지켜지지 못한 것들
가정사가 지켜지지 못했다. 무엇이 가정을 지키는 것일까? 물질적 안정인가, 정신적 유대인가? 아니면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랑인가? 나는 무엇을 지키려 했고, 무엇을 지키지 못했는가?
팀이 해체되었다. 함께 꿈꾸던 사람들이 흩어졌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사람들이 각자의 길로 돌아갔다. 해체라는 것은 단순히 조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꿈의 해체이고, 신뢰의 해체이고, 미래의 해체다.
마지막 하늘을 집어던졌다. 그 순간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분노였을까, 절망이었을까, 아니면 해방감이었을까? 던진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결국 그것도 남의 하늘이었다. 내가 내 것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남의 것이었다. 이것이 현대인의 슬픔이다. 우리는 소유하지 못하면서도 소유했다고 착각하며 산다.
## 4. 기억의 체온
기억은 체온처럼 머문다고 했다. 체온만큼 가깝고, 체온만큼 생생하게. 기억이란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의 창조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과거를 현재로 불러온다.
체온이라는 비유가 적절하다. 체온은 생명의 증거다. 살아있다는 것의 가장 확실한 표지. 기억도 그와 같다. 기억이 있는 한 그 순간은 죽지 않는다. 기억이 있는 한 그 경험은 계속 살아있다.
하지만 기억은 때로 고통이기도 하다. 잊고 싶은 것들, 지우고 싶은 것들이 체온처럼 생생하게 남아있을 때, 기억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된다.
## 5. 무너진 기대와 건너간 옵션
콤페티션이 발표되었다. 기대치가 무너졌다. 기대라는 것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우리는 현재를 희생해서 미래에 투자한다. 그런데 그 투자가 실패할 때, 우리는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잃는다.
옵션이 물을 건너갔다고 했다. 옵션이라는 것은 선택의 여지, 가능성의 공간이다. 그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자유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진정한 자유는 많은 선택지가 있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선택지를 택하든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오는 것이 아닐까?
## 6. 개인과 집단의 책임
개인의 성취와 과오가 집단을 대변한다고 했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역설이다. 개인주의 사회라고 하면서도 개인은 여전히 집단의 대표자로 여겨진다.
책임져야 할 둘이 꽂았던 프로젝트. 여기서 '둘'은 누구인가? 나와 나, 나와 타인,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책임의 주체가 분명하지 않을 때, 책임은 더욱 무거워진다.
던진 책임에 대한 반성. 그것이 오만이었을까? 오만이라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더 큰 오만일 수도 있다.
그 책임은 오롯했다고 했다. 오롯하다는 것은 온전하다는 뜻이다. 나누어질 수 없고, 양보할 수 없는 순수한 상태. 그런 책임을 져본 사람만이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7. 계약과 노동의 등가교환
영 당기지 않은 계약을 마쳤다고 했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현실. 이것이 현대인의 숙명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며 산다.
노동의 양과 통장잔고의 비례. 이 냉정한 등가교환의 논리. 하지만 정말 모든 것이 수치로 환산될 수 있을까? 노동의 의미, 일의 보람, 성취감 같은 것들은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새로이 지키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변명. 변명이라고 스스로 말하지만, 그것은 변명이 아니라 성장이다. 지킬 것이 생긴다는 것은 책임이 늘어난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삶의 의미가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 8. 생텍쥐페리의 가르침
『야간비행』을 떠올린다. 생텍쥐페리의 철학이 담긴 소설. 비행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말한 작품.
"온 하늘에 책임"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부분적 책임에서 전체적 책임으로의 확장. 개인적 책임에서 우주적 책임으로의 도약. 이것이 성숙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리비에르의 대사가 울린다. "생에는 해결책이란 없는 법이요. 앞으로 나가고 있는 힘이 있을 뿐이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문제를 뚫고 나가는 힘을 기르라는 뜻이다.
해결책은 뒤따라 온다는 말. 이것은 과정에 대한 신뢰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결과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믿음. 이런 믿음이 있어야 어려운 시기를 견딜 수 있다.
## 9. 글쓰기의 해방
직업적 글쓰기를 접었다고 했다. 확정적으로 작성해야 했던 직업적 쓰기의 고통에서 벗어나 모호한 글쓰기의 자유를 얻었다.
확정적 글쓰기와 모호한 글쓰기. 전자는 책임의 글쓰기이고, 후자는 자유의 글쓰기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책임을 회피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오는 것이 아닐까?
모호함도 하나의 진실이다. 세상은 원래 모호하다. 명확한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모호한 것은 자연이 만든 것이다. 모호한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자연에 가까워진다.
## 10. 밤과 잠의 철학
잠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마지막 질문이 모든 것을 요약한다. 잠은 휴식이면서 동시에 단절이다. 의식의 단절, 활동의 단절.
잠이 없다면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많다고 해서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시간의 질이다.
밤은 사색의 시간이다. 낮에는 할 수 없는 생각들을 하는 시간. 밤의 사색이 있어야 낮의 행동이 의미를 갖는다.
잠은 어쩌면 작은 죽음이다. 매일 밤 우리는 작은 죽음을 경험한다. 그리고 매일 아침 다시 태어난다. 이런 죽음과 부활의 리듬이 없다면 삶이 얼마나 지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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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5일 새벽, 책임의 무게를 견디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