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하늘에 붙어살며..

2012. 2. 2. 4:11

# 타인의 사무실에 작은 영역을 점유하다


남의 하늘에 붙어살며..

망치든건축가 hyojoon

2012. 2. 2. 4:11


책상 하나 반. 정확히 말하면 큰 책상의 모서리 부분이다. 원래 주인이 쓰다 남은 자리, 그곳이 내 영역이다. 1미터 남짓한 공간에 노트북과 몇 권의 책, 커피잔 하나가 내 세상의 전부다.


점유라는 말이 부끄럽다. 점유하려면 최소한의 권리라도 있어야 하는데, 내게는 그런 것도 없다. 그냥 눈감아주는 것이다. 선의에 기댄 얹혀살기다. 매일 아침 "안녕하세요" 인사할 때마다 죄송하다는 마음이 앞선다.


사무실 주인은 좋은 사람이다. 나를 불편해하지 않는다. 적어도 티는 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남이 자기 공간에 있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걸.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몸을 움츠린다. 혹시 내 때문에 업무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닌가. 내가 있어서 손님 응대가 어색해지는 건 아닌가. 괜한 걱정인 줄 알면서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점심시간이 가장 어색하다. 혼자 남겨지는 시간. 나가자니 갈 곳도 없고, 있자니 남의 사무실을 혼자 지키고 있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 그래서 보통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 사서 근처 공원에 앉아 먹는다.


내 물건들은 항상 정리되어 있다. 흐트러뜨릴 수가 없다. 이곳은 내 공간이 아니니까. 매일 저녁 퇴근할 때는 모든 걸 치우고 간다. 내일 아침 와서 다시 펼쳐놓는다. 매일 이사 가는 기분이다.


화장실도 마음 편히 갈 수 없다. 너무 자주 가면 눈에 띌까 봐 참는다. 물도 아껴 마신다. 정수기 물인데도 왜 이리 아까운지. 남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공짜도 부담스럽다.


전화받는 목소리도 조심스럽다. 목소리가 너무 크면 방해될까 봐 속삭이듯 말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이 잘 못 듣겠다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다.


사무실 주인이 손님과 미팅할 때는 더욱 조심스럽다. 투명인간이 되려고 애쓴다. 숨소리도 조심하고, 키보드 치는 소리도 최대한 줄인다. 가끔은 정말로 내가 여기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도 감사하다. 이런 작은 공간이라도 내어준 그 마음이 고맙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남을 이렇게까지 배려해 주겠는가. 하지만 감사함과 동시에 미안함도 크다. 언제까지 이런 신세로 살아야 할까.


가끔 꿈을 꾼다. 내 사무실을 갖는 꿈을. 작아도 좋으니 온전히 내 것인 공간을 갖는 꿈을. 그곳에서는 마음껏 전화도 받고,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갈 수 있을 텐데.


동료들은 내 처지를 안다. 그래서 더욱 신경 쓸 때가 있다. "괜찮냐"라고 물어볼 때마다 "괜찮다"라고 대답하지만, 정말 괜찮지는 않다. 하지만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들도 자기 일로 바쁜데 내 사정까지 걱정시킬 수는 없으니까.


밤늦게 혼자 남아 있을 때가 있다. 그때만큼은 이곳이 내 공간인 것 같다. 조용하고 평화롭다. 아무도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껏 일할 수 있다. 그런 시간이 소중하다.


사무실 열쇠는 없다. 당연히 없어야 한다. 그래서 주인보다 늦게 와야 하고, 주인보다 먼저 나가야 한다. 내 시간표가 남의 시간표에 맞춰져 있다. 자유라는 게 이렇게 소중한 건지 새삼 깨닫는다.


언젠가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내 공간을 찾아서. 하지만 그날이 오면 이곳에서의 시간도 그리워질 것 같다. 불편했지만 따뜻했던 시간들. 작은 친절에 감동했던 시간들.


오늘도 책상 모서리에 앉아서 일한다. 1미터 남짓한 내 세상에서. 작지만 소중한 이 자리에서. 언젠가 떠날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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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 오후, 타인의 사무실 한 모서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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