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후의 밥, 걸인의 찬
## 1.
나는 분식집에서 김밥을 먹고 있었다. 참치김밥이었다. 별로 배가 고프지도 않았는데 그냥 시켜서 먹고 있었다. 요즘 들어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아져서 억지로라도 뭔가 먹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그 여자도 똑같은 참치김밥을 먹고 있었는데, 먹는 모습이 달랐다. 한 입 베어 물고는 천천히 씹었다. 마치 그 맛을 오래 음미하려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그 여자를 계속 쳐다보게 되었다. 옷차림을 보니 넉넉한 형편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얼굴에는 어떤 품위 같은 것이 있었다. 지친 기색은 있지만 포기하지 않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때 그 여자가 나를 쳐다봤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눈이 마주쳤다. 민망해서 어쩔 줄 몰랐다.
## 2.
"혹시 김밥이 맛없나요?"
그 여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아, 아니에요. 맛있어요."
"그럼 왜 그렇게 천천히 드시고 계세요?"
나는 그제야 내 앞의 김밥을 내려다봤다. 거의 한 개를 다 먹었는데도 김밥 한 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음식을 아껴 먹는 습관이 생겼다.
"천천히 먹는 편이라서요."
"아, 저도 그래요."
그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나는 이 사람과 뭔가 통하는 게 있다는 걸 느꼈다.
## 3.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음식 이야기, 그다음에는 이 동네 이야기, 그러다가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까지.
그 여자는 혼자 산다고 했다. 나도 혼자 산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둘 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었다.
"요즘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그 여자가 말했다.
"그러게요. 예전에는 혼자 밥 먹는 사람 보면 안쓰럽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 같아요."
"하지만 가끔은 누군가와 함께 먹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랬다. 혼자 먹는 게 편하기는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
## 4.
"저 어릴 때는 김밥이 정말 특별한 음식이었어요."
그 여자가 김밥을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소풍 갈 때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죠. 어머니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만들어주시던..."
나도 그 시절이 기억났다. 어머니가 밤새워 김밥을 마시던 모습. 김, 밥, 단무지, 계란지단, 그리고 가끔씩 들어가는 고기. 그게 전부였지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언제든 먹을 수 있는데도, 왜 그때만큼 맛있지가 않을까요?"
"아마 마음이 달라져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 여자가 대답했다.
"그때는 기대하고 먹었잖아요.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니까. 지금은 그냥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니까."
맞는 말이었다. 같은 음식도 언제, 어떤 마음으로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법이다.
## 5.
그 여자는 이 근처에서 작은 가게를 한다고 했다. 혼자서 반찬을 만들어 파는 가게였다.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 가게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해서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 가게니까 좋아요."
그 여자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예전에는 회사에서 일했어요. 사무직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든 거예요. 이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가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만두셨어요?"
"네. 주변에서는 말렸어요. 안정된 직장을 왜 그만두냐고. 하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그 여자가 환하게 웃었다.
## 6.
나는 내 이야기도 해주었다. 글쓰는 일을 한다고,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서 힘들 때가 많다고.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계시니까 좋으시겠어요."
"글쎄요. 가끔은 그냥 월급쟁이가 나을 뻔했다는 생각도 해요."
"하지만 그러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살 수는 없으시잖아요."
그 여자가 말했다.
"자유라는 게 참 애매해요. 경제적으로는 불안하지만 시간적으로는 자유롭고. 뭔가를 얻으면 다른 뭔가를 잃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인생이죠 뭐."
그 여자가 씁쓸하게 웃었다.
## 7.
우리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식집에서 그렇게 오래 앉아 있어본 적이 처음이었다. 사장이 몇 번 쳐다보기는 했지만, 다른 손님이 별로 없어서 그냥 내버려두는 것 같았다.
"황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그 여자가 갑자기 물었다.
"아니요. 무슨 말이에요?"
"제가 어릴 때 할머니가 해주신 말인데요. 같은 음식이라도 황후가 혼자 먹으면 쓸쓸한 황후의 밥이 되고, 걸인이 여럿이 나누어 먹으면 따뜻한 걸인의 찬이 된다는 뜻이에요."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 말이네요."
"오늘 이렇게 함께 김밥을 먹으니까 그 말이 생각났어요. 평범한 김밥이지만, 혼자 먹을 때보다 훨씬 맛있는 것 같아요."
나도 그랬다. 똑같은 참치김밥인데 오늘따라 유난히 맛있었다.
## 8.
헤어지기 전에 그 여자가 쪽지에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다음에 반찬이 필요하시면 연락하세요. 혼자 사시는 분들한테는 조금씩 나누어서 드려요."
나도 내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다음에 또 여기서 만나면 함께 먹어요."
그 여자가 말했다.
"좋아요."
"오늘 좋은 시간 보내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저야말로 감사해요.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어서 좋았어요."
## 9.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계속 그 여자 생각을 했다.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편안했을까. 아마 비슷한 처지여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끼리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다. 외로움을 안다는 것, 자유롭지만 불안하다는 것, 그런 것들을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집에 도착해서 냉장고를 열어봤다. 김치 조금, 계란 몇 개, 우유 한 팩. 이게 전부였다. 내일은 그 여자에게 연락해서 반찬을 좀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10.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일기를 썼다.
'오늘 분식집에서 한 분을 만났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금세 친해졌다. 같은 김밥을 먹었는데 혼자 먹을 때보다 훨씬 맛있었다. 황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는 말을 배웠다.'
그리고 덧붙였다.
'돈이 많아서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오늘 그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다음 날 나는 정말로 그 여자에게 연락했다. 작은 가게였지만 반찬이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 여자가 환한 얼굴로 맞아주었다.
"어머, 정말 연락하셨네요!"
"약속했잖아요."
나는 김치, 나물, 조림을 조금씩 샀다. 혼자 먹기에 딱 적당한 양이었다.
"다음 주쯤에 또 그 분식집에서 만날까요?"
그 여자가 제안했다.
"좋아요."
나는 기꺼이 대답했다. 오랜만에 기다려지는 약속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 여자가 만든 반찬으로 저녁을 먹었다. 혼자 먹는 밥이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며칠 후면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황후의 밥, 걸인의 찬. 나는 이제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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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