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8. 02:49
# 황후의 밥, 걸인의 찬
나이가 들면 그에 맞는 뭔가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집 한 채, 자동차 한 대, 통장 잔고 몇 천만 원.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걸 갖지 못한 게 부끄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왔다. 빗겨서 사는 것도 나름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중요한 건 다른 곳에 있다고, 돈이나 집 같은 건 사람 사는 데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믿고 싶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말이 있다. 세상이 원래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다른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 그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 말을 잊고 지냈나 보다. 아니면 나만은 예외일 거라고 착각했나 보다.
황후의 밥, 걸인의 찬. 이 말이 문득 떠올랐다. 같은 음식이라도 먹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일까. 아니면 처지에 따라 음식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뜻일까.
가난을 선택하는 사치라는 말도 생각해 보았다. 정말 웃기는 소리다. 가난이 선택이라니. 가난한 사람치고 가난을 선택한 사람이 어디 있나. 모두들 어쩔 수 없이 가난한 것이지. 하지만 때로는 정말 선택인 것 같기도 하다. 더 쉬운 길이 있는데도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는 것.
참으로 나이브한 발상이었다.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본 것 같다. 돈이 없어도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생각. 스무 살도 아니고 이 나이에 그런 생각을 했다니.
그래도 나는 믿고 싶었다. 비워둔 가슴만으로도 누군가를 품을 수 있다고. 사랑만으로도 살 수 있는 하늘이 있다고. 비록 남의 하늘에 얹혀살고 있지만, 그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남의 하늘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없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어디에 가서도 나는 손님이다. 임시로 머무는 사람이다. 언제든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사람.
그저 이 삶이 무의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크게 성공하지 못해도,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적어도 의미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의미라는 것도 배부른 소리일지 모른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왔다. 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초라하지만, 그래도 내가 머물 수 있는 곳이다. 달빛이 새파랗게 쏟아져 들어온다. 참 묘한 색깔이다. 차갑고 쓸쓸한 빛.
온기가 없던 방안을 내 온기로 채워야 한다. 사람이 사는 곳은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혼자 사는 방에 무슨 온기가 있을까. 나 혼자만의 온기로는 이 넓은 방을 다 채울 수 없다.
창문 너머로 찬바람이 들어온다. 소름이 돋는다. 몸이 추워서가 아니라 마음이 추워서 그런 것 같다. 이런 날엔 혼자 있기가 더욱 힘들다.
외로움을 모르고 살았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럴 리가 없다고 대답하겠다. 외로움이야말로 내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무서울 게 없는 척하며 살아왔지만, 실상은 늘 두려웠다.
그리움은 어떨까. 그리움을 버렸냐고 묻는다면 더욱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그리움은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움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고,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향을 떠나온 지가 벌써 사십 년이 넘었다. 마흔 해가 넘도록 이 산비탈에서 살고 있다. 돌고 돌아도 결국 이곳이다. 빨래가 널린 옥상, 가파른 비탈길, 새벽이면 들려오는 기침소리.
새벽마다 들려오는 누군가의 기침소리에 잠이 깬다. 아마 나와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일 것이다. 혼자 살면서 아픈 몸을 달래며 사는 사람. 그 기침소리가 고달프게 들린다.
그 사람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아니, 그 사람만 불쌍한 게 아니라 나도 불쌍하고, 이렇게 사는 우리 모두가 불쌍하다. 하지만 불쌍하다고 해서 어떻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냥 불쌍한 채로 살아갈 뿐이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채로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 기침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되고, 저녁이 되면 또 누군가의 기침소리와 함께 하루가 끝난다. 이런 일상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한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으면서도.
그래도 나쁘지 않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기분이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사는 기분이다. 황후의 밥은 못 먹어도 걸인의 찬이라도 나누어 먹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가끔 생각한다. 만약 내가 황후였다면 어땠을까. 화려한 궁궐에서 수라상을 받아먹으며 살았다면 더 행복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외로움은 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법이니까.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먹느냐인 것 같다. 혼자 먹는 황후의 밥보다는 함께 나누어 먹는 걸인의 찬이 더 따뜻할 수도 있다.
오늘도 그 기침소리를 들으며 잠들 것이다. 그리고 내일 새벽에도 그 소리에 잠이 깰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아갈 것이다. 황후도 걸인도 아닌, 그냥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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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8일 새벽, 산비탈 어느 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