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회와 자부심 사이에서
밤이 깊으면 과거가 온다. 부르지 않았는데도 온다. 위로도 아니고 교훈도 아니다. 그냥 적막이 오래된 장면들을 데려온다. 선을 긋던 손. 도면 위에 남긴 치수들. 중심선을 잡기 전의 그 짧은 정지. 그것들이 순서도 없이, 말도 없이 돌아온다.
낮에는 기능이 앞서고, 밤에는 의미가 떠오른다.
건축공학으로 학부를 마쳤다. 무게를 견디게 하는 법, 무너지지 않을 조건을 수치로 확인하는 법을 배웠다. 구조는 계산이었다. 감정이 아니라 하중이었고, 직관이 아니라 공식이었다. 그것이 좋았다. 명확했기 때문이다. 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설계 사무소에 들어가서 도면을 그렸다. 선을 긋고 공간을 나누고 치수를 적었다. 그런데 어딘가 자꾸 막혔다. 손은 움직이는데 생각이 따라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왜 이 공간이어야 하는지, 이 형태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 벽이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계산은 할 수 있었지만 그 앞의 질문을 붙드는 언어가 없었다. 도면은 그려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그 답답함을 안고 gsak 건축학 석사 과정에 들어갔다. IMF가 터진 직후였다. 세상이 흔들리던 시절이었다. 남들이 살아남기 위해 현장에 붙어 있을 때 나는 사고의 체계를 세우러 학교로 돌아갔다. 다만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지금도 완전히 알지 못한다.
건축학은 달랐다. 공학이 수치로 묻는다면 건축학은 언어로 물었다.
스튜디오 방식이었다. 매 학기 선생이 바뀌었고 방법론도 바뀌었다. 정답을 주는 수업이 아니었다. 매번 다른 방식으로 질문하게 만들었다.
왜 세우는가. 이 공간은 무엇을 하는가. 사람은 여기서 어떻게 움직이는가. 빛은 어디서 들어오고 어디서 사라지는가.
그 질문들이 처음에는 낯설었고, 나중에는 익숙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손보다 먼저 작동하기 시작했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바꾸는 훈련이었다. 공학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그 후로 20여 년을 건축설계를 했다. 공간을 짓고 도면을 그리고 건물이 땅 위에 서는 것을 보았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생겼다. 발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것들이 생겼다.
서른이 지나고 마흔이 지났다. 다리를 하나 건널 때마다 쉬운 일은 없었다. 그 하나하나를 건너면서 조금씩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비록 그 하늘이 내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런데도 오랫동안 후회한다고 말했다. 기회비용을 날렸다고. 그 시간이 없었다면 경력이 달라졌을 거라고. 더 일찍 더 많이 쌓을 수 있었을 거라고. 계산은 언제나 손실 쪽으로 기울었다.
남들에게 그 말을 꺼낼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 좀 아깝지. 그 동의가 오히려 편했다. 후회한다고 말하면 최소한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그런데 그 말 끝에는 항상 슬그머니 붙이는 것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석사'야. 건축설계 바닥에서 석사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격증이 없으면 설계 도장을 찍을 수 없고, 현장에서는 포트폴리오와 경력이 전부라는 걸 알면서도. 출강을 하거나 학교 자리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학위는 명함 한 줄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것만이라도 남아 있어야 했으니까.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속으로만 붙였다. 후회한다고 말하면서 학위를 손에서 놓지 않는 모순. 후회와 자부심이 같은 문장 안에 살았다. 들여다보면 불편한 이중성이었다. 그래서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다.
후회라는 말로 덮어두면 계산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독립을 했던 때가 있었다. 내 이름으로 시작하는 일이었고, 오래 준비했다. 그런데 결과는 실패였다.
남의 하늘 아래로 들어가야 했다. 참으로 생소한 공간이었다. 염치도 빼앗아 가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치만 남고 자존은 사치가 된 자리. 타협이 없는 공간이었다. 오직 나의 선택만이 있었다. 선택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좁은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그것만은 남아 있었다. 그것으로 버텼다.
두려웠다. 이 나락이 시작이 아니길, 이 절망이 마지막이길.
그런 심정으로 하루를 견뎠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 건 언제였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점점 좁혀져가는 심상 속에서 마음의 폭도 감정의 폭도 일방적인 것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현장에서 일하다 말고 고개를 들었더니 하늘이 청명했다. 그 맑음이 낯설었다. 아니, 낯선 것이 아니라 허무했다. 저 하늘은 저렇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맑은데,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순간 마음을 잡기가 어려웠다. 삼십 년을 쌓아도 한순간의 허무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감각. 그 감각만큼은 어디선가 읽은 적 있는 것 같았다.*
최근이었다. 누군가의 글에서 문장 하나를 만났다.
"아깝다는 말은, 값이 사라졌을 때 쓰는 말 아닌가."
찰칵, 하는 느낌이었다. 그냥 걸렸다. 왜 걸렸는지는 그 순간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다. 오랫동안 아깝다는 말을 달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문장은 아깝다는 말의 조건을 먼저 물었다. "값이 사라졌을 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 문장이 오래된 후회의 덮개를 들어올렸다.
쌓이지 않은 경력은 사실이다. 날린 기회비용도 사실이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시간이 남긴 것들은 어디로 갔는가.
왜 세우는가를 묻는 습관. 수치 앞에서 언어를 찾는 태도. 서두르지 않는 감각. 쉽게 확정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20여 년의 설계를 관통하지 않았는가. 그 질문들이 도면 위의 선을 바꾸지 않았는가. 지금 문장을 쌓을 때 작동하는 그것들은 어디서 왔는가.
도면을 그리던 손과 지금 단어를 고르는 손이 어딘가 닮아 있다. 문장의 하중을 가늠하고, 단락의 중심을 잡고, 비워야 할 자리를 남긴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구조를 먼저 생각하는 버릇은 그대로다.
건물은 서 있다. 글은 쌓인다. 그 손이 아직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연결인지 위안인지, 아직 판단하지 못했다. 밤은 답을 주지 않는다. 장면만 데려올 뿐이다. 현장의 청명한 하늘. 남의 하늘 아래 살던 날의 눈치. 서른이 지나고 마흔이 지나며 조금씩 올려다본 하늘들. 그 하늘이 내 것이었는지 아닌지조차 지금은 모르겠다.
아깝다는 말은 값이 사라졌을 때 쓰는 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묻는다.
그 시간의 값은 정말 사라진 것인가.
소설이 끝나지 않듯, 질문도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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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송헌정자에서 취하다(松軒亭子醉)」중. 三十年間勞苦業 松軒亭子一醉休. '삼십 년간 수고로이 쌓은 업적, 송헌정자에서 한 번 취해 쉬노라.' 감히 그 이름을 빌릴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헛됨의 감각만큼은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