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참아야 할 것 같다

II. 쓰기의 물리

by leehyojoon ARCH

II. 쓰기의 물리

더 참아야 할 것 같다


과거의 글을 다시 읽으면 부끄럽다.


왜 여기서 더 밀어붙이지 못했을까. 왜 여기서 더 침묵하지 못했을까. 그 생각이 온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런데 지금 읽으면 얕아 보인다. 압력이 부족해 보인다. 더 갈 수 있었는데 거기서 멈춘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기술의 문제인가.


아니다. 내구성의 문제다. 그때는 그만큼의 압력만 견딜 수 있었다. 그만큼의 침묵만 유지할 수 있었다. 더 가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거기서 멈췄다. 멈춘 것이 잘못이 아니다. 그때의 한계였다.


지금은 더 버틸 수 있다.


더 깊이 들어가도 무너지지 않는다. 더 오래 침묵해도 장면이 흩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성장이다. 기술이 늘어서가 아니다. 압력을 견디는 시간이 늘어서다. 밀도를 감당하는 체력이 늘어서다.


그래서 과거가 부끄럽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이 오만은 아니다. 그때의 나는 거기까지가 진짜였다. 지금의 나는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 차이를 안다. 그것이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워할 수 있다는 것은 더 자랐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도 부족하다.


미래의 내가 이 글을 다시 읽을 것이다. 그때 또 부끄러울 것이다. 왜 여기서 더 가지 않았을까. 왜 여기서 설명을 붙였을까. 왜 이렇게 친절했을까. 그 부끄러움을 미리 안다. 그래서 지금 더 참아야 한다.


더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더 참는 것이다. 설명하고 싶은 손을 참는 것. 독자를 안심시키고 싶은 욕망을 참는 것. 장면을 정리하고 싶은 충동을 참는 것. 참는 것은 수동이 아니다. 가장 능동적인 선택이다. 손을 떼는 것. 말을 삼키는 것. 장면이 스스로 서 있을 시간을 주는 것.


미래의 나를 기준으로 둔다.


지금 완성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했을 때 남는 것. 설명은 시간을 통과하지 못한다. 친절도 통과하지 못한다. 압력만 통과한다. 침묵만 통과한다. 그러니 지금 참아야 한다. 미래의 내가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어떤 질문은 금방 답이 나온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 한두 장면 쓰면 해결된다.


그런데 어떤 질문은 끝까지 간다. 이 관계의 본질이 무엇인가. 이 침묵이 왜 유지되는가. 이 비대칭이 왜 안정적인가. 이런 질문은 소설이 끝나도 완전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 질문으로 쓴다.


금방 답이 나오는 질문만 있으면 쓰지 않는다. 그것은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다. 사건 나열은 예측 가능하다. 예측 가능한 것은 긴장이 없다.


끝까지 가는 질문이 있을 때만 쓴다. 그 질문이 변주되면서 끝까지 가는 것. 답이 나오지 않은 채로 끝나는 것. 그 끝나지 않음이 잔여가 된다.


어떤 날은 더 버틸 수 있다.


어떤 날은 안 된다. 안 되는 날은 쓰지 않는다. 억지로 쓰면 밀도가 없다. 밀도 없는 글은 시간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러니 버틸 수 있는 날만 쓴다. 내구성이 있는 날만.


참는 것이 항상 옳은가.


모르겠다. 너무 참으면 글이 굳는다. 너무 조이면 숨이 없다. 그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가. 정답이 없다. 감각만 있다. 가슴이 조여오면 너무 조인 것이다. 가슴이 열리면 적당히 조인 것이다.


그 감각을 믿는다.


그리고 미래의 나를 믿는다. 미래의 내가 이 글을 다시 읽을 것이다. 손댄 흔적이 없기를. 부끄러운 친절이 없기를. 불안의 흔적이 없기를. 그냥 장면이 거기 있기를. 압력이 유지되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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