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방법론
어떤 감정은 이름이 없다.
슬픔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조용하고, 공포라고 부르기엔 너무 느리고, 절망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일상적인 것들. 그것들은 우리가 가진 감정의 어휘 바깥에 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몸이 먼저 안다. 이름을 찾기 전에 이미 몸에 각인된다.
나는 그것을 이름 없이 쓰고 싶었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감정은 범주 안에 갇힌다. 슬픔이라고 쓰면 독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슬픔을 꺼낸다. 작가가 쓴 슬픔이 아니라 독자가 이미 가지고 있던 슬픔을. 그 순간 텍스트는 독자의 기억과 교환되고, 작가가 기록하려 했던 것은 그 교환 속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다른 언어를 찾았다.
온도. 압력. 마찰. 무게. 이것들은 감정의 이름이 아니다. 감정이 몸에 남긴 흔적이다.
아들을 잃은 엄마를 쓸 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이 여자의 몸은 지금 몇 도인가.
유골함을 품에 안았을 때 가슴팍으로 번지는 것. 화로의 열기인지 기억의 잔상인지 알 수 없는 온도. 식지 않는 미열. 이것은 슬픔의 온도가 아니다. 슬픔이 신체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소멸한 존재가 남긴 열이 아직 몸 안에서 순환하고 있다는 것. 그 순환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
환상통이라는 것이 있다. 잘려나간 팔다리가 여전히 아픈 것. 신경계가 없는 것을 있다고 감지하는 것. 나는 상실을 환상통으로 이해했다. 사라진 존재가 여전히 몸 안에서 열을 발생시키는 것. 그 열이 실재하지 않지만 신경계는 실재한다고 기록하는 것.
슬프다는 단어로는 이것을 쓸 수 없다. 하지만 식지 않는 미열로는 쓸 수 있다.
감정을 온도로 번역하면 감정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층위로 내려간다. 의식의 층위에서 신체의 층위로. 언어의 층위에서 감각의 층위로.
독자는 슬프다는 단어를 읽을 때 생각한다. 아, 이 사람이 슬프구나. 그 생각은 이해다. 이해는 거리를 만든다. 이해한 순간 독자는 안전해진다. 저 사람의 슬픔을 나는 이해했다. 나는 괜찮다.
하지만 식지 않는 미열을 읽을 때 독자는 생각하기 전에 느낀다. 자신의 가슴팍에서 그 온도를 찾는다. 이해가 아니라 감각이다. 감각은 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독자는 안전하지 않다. 그리고 안전하지 않은 독자만이 진짜로 읽는다.
온도로 번역하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감정의 이름은 거짓말한다.
슬프다고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슬픔만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슬픔 안에는 안도가 있고, 죄책감이 있고, 분노가 있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가벼움이 있다. 이것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서로 모순되면서 동시에 실재한다. 하지만 슬프다는 단어는 그 복잡성을 하나로 평탄화한다.
온도는 그렇지 않다. 온도는 복수로 존재할 수 있다. 가슴팍의 미열과 손끝의 냉기가 동시에 있을 수 있다. 안구의 건조함과 허벅지 안쪽의 땀이 동시에 있을 수 있다. 이 복수의 감각들이 감정의 이름보다 더 정직하게 그 사람의 상태를 기록한다.
장례식날 웃으면서 조문객의 손을 잡는 엄마. 나는 이 여자를 슬프다고 쓰지 않았다. 대신 손바닥에 묻은 타인의 온기를 닦아내지 못한다고 썼다. 다음 손을 잡을 때 이전 손의 열이 아직 남아 있다고 썼다. 이 감각이 슬픔보다 더 그 여자의 상태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슬픔은 단일하다. 감각은 복수다. 그 복수성이 인간을 더 정확하게 기록한다.
마찰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마찰은 접촉면에서 발생한다. 두 개의 표면이 만날 때, 그 만남이 순조롭지 않을 때 생기는 것. 나는 마찰을 감정의 번역어로 자주 쓴다. 관계의 마찰이 아니라 신체의 마찰. 눈꺼풀 안쪽 점막이 각막을 긁는 마찰. 눈물샘이 작동하지 않을 때 안구 표면에서 일어나는 것.
아들이 타는 것을 유리창 너머로 보면서 눈물이 나오지 않는 엄마. 나는 그 장면을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쓰지 않았다. 눈꺼풀 안쪽 점막이 거칠어지며 각막을 긁는다고 썼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마찰이 일어난다고 썼다.
이 마찰이 눈물보다 더 처절하다. 눈물은 배출이다. 마찰은 갇힘이다. 나와야 할 것이 나오지 못하고 안에서 긁어대는 것. 그것이 그 여자의 상태였다.
감정의 이름으로는 이 차이를 쓸 수 없다.
대신 다음 문장을 쓴다. 더 정확한 온도로. 더 구체적인 마찰로. 더 정밀한 무게로.
독자가 그것을 읽으면서 자신의 가슴팍에서 무언가 뜨거워진다면, 그리고 그 뜨거움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면.
그때 무엇이 일어난 것인지 나도 완전히 알지 못한다. 감정을 제거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발생시킨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