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것보다 무서운 것
나는 그 안에 나 자신을 대입하는 버릇을 가지게 됐다. 피해자들이 당한 끔찍한 것들에 아직까지 저런 악습이 남아있다는 것에 씁쓸해진다. 어렸을 때, 체벌이 없어진 뒤로, 학교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밖에서는 여전히 패싸움이 일어났지만 내부에서는 치고받고 싸우는 정도였지 한 사람을 죽도록 때리지는 않았다. 아니 겉으로만 그렇게 보였을지 모른다.
물리적인 폭력의 무서움은 몸으로 직접 느끼지만 더 영악해진 아이들은 심리적인 압박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주변 반 친구들을 협박해 한 친구에게 말을 걸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 친구는 1년 내내 길을 막았다는 이유 하나로 교실에서도 급식실에서도 혼자여야 했다. 지나가다 앞문 너머로 본 그 친구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무표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침에 등교해서 학교 끝나고 기다리라는 말을 남겨놓은 소위 일진 무리들을 무시하고 집에 갔다가 그 집 현관 앞에서 20명 정도가 모여 소리 지르며 그 친구를 불러댔다는 것도 들었다.
우리 반에 내가 없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난 내가 투명인간처럼 느껴졌었다. 철저한 무시였다. 친구들이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대답을 해 주지 않았고 이동수업 시간에 아무도 엎드린 나를 깨우지 않았다. 내 잘못을 묻자 마지못해 차가운 눈을 하며 '그냥 같이 다니기 싫어.'라는 한 마디를 내뱉은 그날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 더 재밌다는 표정으로 킥킥대는 걸 본 뒤로 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혼자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몇 년 뒤에 본 그 친구 얼굴에서 나는 내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기억한다. 뉴스를 볼 때도, 학교폭력으로 마지막 선택은 자신의 몫으로 돌리려고 한 사람들을 보면서 기억하고 기억하니 쉽게 잊혀질 리가 있는가. 그 감각에 무던해진 다른 사람들에 또 상처 받는 나는 너무 예민한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