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그렇다. 나는 이 시국에 자취를 시작한 대학생이다.
왜?
직전까지 자취를 고민한다며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지만, 내 안에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나 보다.
어디가 얼마나 더 싸고 가구나 커튼은 잘 달려 있으며 수압은 적당한지, 벌레는 없는지, 또 마트나 편의점은 가까운지 따위를 열심히 찾아보며 개강 전 마지막 일주일을 보냈다.
물류센터와 편의점 알바로 꾸역꾸역 조금씩 모아놓은 돈으로 보증금을 대고 월세 걱정을 하며 자취를 시작한 것이다. 낯을 가리고 많은 사람의 집중을 잠깐이라도 받으면 양 볼때기부터 시뻘게지며 뒤로 숨고 싶어 하는 나였지만 내 방을 구하는 데 있어서는 일생의 기지를 발휘한 듯싶다. 낡아서 고장 난 가구를 바꿔줄 수 있는지부터 창틀이 덜렁거리는 사소한 문제까지 내 성대를 타고 주인아저씨 귀로 들어갔다.
초등학교 발표 시간에서부터 덜덜 염소 목소리를 내던 내가 내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나 생각보다 잘하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써 놓은 것들을 보면서 조곤조곤 질문하는 게 세상 어떻게 살아갈 거냐 타박받던 여러 날들과는 달라졌다는 생각이 조금은 든다.
찬장에 식료품을 채워 넣었다. 아침에 과연 먹기나 할지 의문인 시리얼에 바나나, 밥솥은 없어서 쟁여놓은 햇반과 라면. 왠지 좀 더 쌀 것 같은 동네 마트에서 대충 장을 보고 챙겨준 영수증을 보니 집 나가면 다 돈이라는 게 피부로 다가왔다. 프로 자취러로 발돋움하고 있는 기분에 벌써 사로잡혔지만 시리얼을 말아먹을 우유를 빼먹은 걸 보면 한참 멀었다 싶다.
나름 내 첫 방이라고 이것저것 들여놓고 싶다가도 사람 하나 겨우 살 공간에 큰 욕심부리지 않기로 한다. 가까운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은은한 조명을 켜고 책상 의자에 앉아 읽자니 초심은 다 어디 갔는지 눈꺼풀이 내려온다. 이사하고 정리하느라 너무 힘을 뺐나.
조촐한 밥상을 차리고 아무도 없이 혼자 입에 넣자니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밥상 건너편에 없다는 게 새삼 어색하다. 수저 젓가락부터 반찬까지 내가 꺼내 놓고, 또 뒷정리와 설거지까지 내 몫으로 돌아온다.
문단속을 하고 커튼을 치고, 자취한답시고 친구가 선물로 보내온 무드등을 켜고 작은 침대에 몸을 뉘었다. 빛에 반사되어 어두운 노란색인 천장을 보고 있자니 작은 탁상시계의 초침 소리가 귀에 크게 울린다.
'시험 준비도 제대로 계획 세워서 시작하자.'
'일찍 일어나서 운동도 좀 하고.'
'책 읽고 글도 써야지.'
'배달 대신에 요리왕이 되자.'
곧 옅어질 다짐을 새겨 넣으며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