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는 말에서조차 숨 막히고 환멸이 나는 때가 있다.

by sooookhee


최근 여자는 A의 SNS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피드의 멘트, 프로필의 상태, 스토리 같은 것들에서 느껴지는 분명하고 다른 무언가가 여자의 시선을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여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예민한 거다. 쓸데없이 의미부여를 하는 거다. 내가 지금 기분이 너무 다운되어서 내가 보는 타인도 그런 줄 아는 거다. 내 감정을 상대방에게 투사하나 보다.'


그런데도 설명하기 어려운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손바닥만 한 화면으로 연결된 누군가를 걱정해서 무얼 하겠냐는 현실적인 생각도 잠시. 검은색으로 가득했던 A의 프로필 사진이 기본 이미지로 바뀌었다. 그런 것들에 크게 의미 부여할 필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사소한 변화에 괜히 여자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때 기본 프로필 이미지 테두리의 원이 반짝였다.


'아! 새 스토리다.'


우울의 수렁에서 몸부림치며 자신이 되묻곤 했던 여러 질문들이 검은 바탕의 화면의 흰 글씨로 나타났다. 여자는 마음이 저릿해졌다.


'이건 너무 하고 싶은 말이 확실한데. SOS잖아.'


여자는 자신이 힘든 시간을 허우적댔을 때 실낱같은 버팀목이 되었던 모든 것들을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사랑과 응원을 보여주고 싶었다. A가 인스턴트로라도 위로를 받고, 안심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돌아가 충분한 사랑과 포근함 속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문득 여자는 진짜의 A가 어떤지 하나도 알지 못하면서, 여자 자신의 기분에 취해 그녀를 멋대로 판단하고 위로하겠다고 설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닿았다. 어쩌면 그래서 A는 더 외로운 걸지도 몰라. 이런 위로들이 그녀에게 가 닿을 때 얼마나 겉도는 말들로 보이고 들릴까. 떠도는 위로의 말들에서 플라스틱 맛을 느끼고 더 고독해지는 건 아닐까.


'괜한 짓 하지 말자. 얼마나 웃기는 모양새일까. 나나 잘하지. 내가 누구를 걱정하고 있나.'


여자는 고개를 휘휘 젓고 다시 일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결국 그 오지랖을 참지 못하고, 부디 A가 보고 희미하게라도 웃기를 바라면서 질문과 상관없는 메시지를 보낸다.


- 보이지도, 닿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너를 많이 응원해.

- 너는 온전히 너만 생각했으면 좋겠어.


여자는 A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말을 쓰다가 '행복'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에 숨이 턱 막혔다. 과거 어느 시간 속 여자가 원망 섞인 눈초리로 현실의 여자를 쳐다보며 말하는 듯했다.


'나는 지금 너무 슬퍼. 나는 지금 슬픔을 견디기에도 너무 벅차.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니 바람을 나한테 강요하지 마.'


화면을 두드리던 손가락은 한참을 헛돌다 '행복'이라는 말을 지웠다. A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보내는 거지만 이 또한 여자 스스로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자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건 뭔가라도 했어야 했다는, 그러나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부채감 때문인 걸까. 순수하게 온전히 내가 염려하는 A, 그녀를 위한 마음일까.


- 네가 웃으면 좋겠어. 오늘 맛있는 거 먹고 재미난 거 하면서 보냈으면 좋겠다..



여자는 일상의 포근한 단어들을 골라내 누덕누덕 기워내다 결국 그만두었다. 응원의 말에 깊숙이 베어본 기억들이 단어와 문장에 묻는다. 오염된 단어와 문장을 걷어 내다 보면 결국 뻔한 말만 남고 만다. 염려하는 말에서조차 숨 막히고 환멸이 나는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때가 있다. 걷잡을 수 없이 미끄러지는 때가.


그때, 그 순간에 여자 자신을 구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


여자는 생각에 잠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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