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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편집장 Jul 26. 2019

독자 몰래 숨긴 글

#한글 #3 조판부호

한글 창에 적힌 글자들 사이에 당신은 모르지만 나만 몰래 보는 것이 있다. 짐작은 하고 계시겠지만.



  책을 편집하다 보면 원고에서 텍스트 행간이 이상하게 벌어져 있거나, 심상치 않은 띄어쓰기를 발견하게 된다. 단순히 2칸 띄어져(스페이스바 2번) 있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벌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웹상 글쓰기(HTML)와 전문 프로그램 글쓰기의 차이. 웹(대체로 메일에 쓴 글)에 쓴 글을 한글 등의 파일에 그대로 옮기면서 일어나는 흔한 일이다. 행간도 이상하게 띄어지게 되는데, 윈도우 보조프로그램 메모장에 웹상의 글을 '복-붙'하여 옮겼다가 한글에 앉히면 그나마 한글의 스타일대로 텍스트가 앉혀지니(정반대도 가능), 참고하시도록. 메모장은 이렇게 쓰는 겁니다 여러분.

  들여쓰기를 스페이스바 2번(∨)으로 한 원고도 있고, 실수로 스페이스바를 2번 누른 경우도 있으니, 원고를 다른 프로그램에 앉히기 전에 나는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바로 Ctrl+f으로 찾기(바꾸기)에서 스페이스바 2번을 단번에, 한꺼번에 없애는 일. 차라리 실수로 2칸의 띄어쓰기가 붙어 있는 단어를 억지로 떼어놓는 것이 더 쉬울지언정, 일일이 2칸을 찾아 지운다는 것은 중노동에 가깝다. 최대한 편집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어느 정도 편집이 끝났을 때는 F2키(낮은 한글 버전은 Ctrl+f)를 눌러 2칸 띄어진 것을 수동으로 찾아 지운다. 전문 편집자가 아니면 잘 모를 일이나,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 다른 책을 읽다가 2칸 띄어진 것을 발견하면, 우리 '업자'들은 말한다. "편집이 엉망이네!" 아는 게 병이다.


메모장은 거둘 뿐. Ctrl+f는 사람도 찾고 빈칸도 찾아준다. 내 인연도 Ctrl+f로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편집의 반은 밑작업

  

  나는 한글 프로그램으로 편집 작업을 할 때, 조판부호와 문단부호를 모두 '표시'로 설정하고 작업한다. 격자 역시 '가로세로선'을 '보기'로 한다. 누가 내게 따로 알려준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실은, 출판사에 와서 편집 기술을 따로 배운 적은 거의 없다. 다 독학! 그리고 요즘에는 카페나 블로그에서 다 알려준다!), 무심결에 한글의 이것저것 기능들을 만져보다가 얻어걸린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들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편집에 익숙하지 않을 때, 잘못된 띄어쓰기 하나도 엄청난 일이므로, 부들부들 손 떨어가며 조판부호를 살폈다. Ctrl+f라는 신세계를 접하기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조판부호와 문단부호가 있는 것이 편하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이 텍스트만 있는 한글 창이 더 무섭고 두렵다. 정말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 공포스럽다.


조판부호 및 문단부호 : 편집과정에서 사용자가 내리는 명령 중 보이지 않는 것. 조판부호(∨)와 문단부호(↲)는 편집 화면에서는 보이지만 인쇄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없는 이 막막한 백지를 보라!

  그나마 한글은 빨간 줄이 그어지면서 잘못된 곳을 알려주지만, 전문 편집 프로그램인 인디자인(Adobe Indesign) 등은 그런 게 없다. 그러니, 띄어쓰기, 맞춤법 등에 웬만큼 자신이 있지 않은 이상, 원고를 인디자인에 그대로 앉힌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그래서 내가 인디자인보다 한글을 더 애용한다는 뜻은 결코 아님! 단축키 쓰기가 편해서 그런 거임! 진짜임!)이다. 따라서 원고를 인디자인에 앉힐 때 띄어쓰기나 문장부호들을 먼저 잡아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일일이 지우기도 힘들고, 인디자인에서는 쉽게 발견하기도 어려우니, 먼저 밑작업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빨리 편집하고 집에 갈 수 있을까 하며, 잔머리 굴리고 굴려서 터득한 비법이다! 작업의 효율은, 그렇게 온다. 궁즉통. 극단의 상황에 이르면 해결할 방법이 생긴다. 출판사 일은 늘 극단의 상황인가 보다.


격자는 배려입니다


  편집할 때의 습관이 글 쓸 때의 습관으로 옮겨왔다. 조판부호, 문단부호를 비롯하여 격자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 역시, 돌아버리겠다. 부호와 격자가 없다니! 브런치는 조판부호와 격자를 만들어달라. 처음에 브런치에 글을 쓸 때, 한글파일로 글을 쓰고 브런치로 옮겨왔다. 그러나 브런치의 갖가지 기능들을 제대로 써먹으려면 한글에서 옮기기보다는, 쓰면서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나에게는 미칠 노릇. 여전히 어색하고 이상하며 뭔가 빠진 듯한 느낌적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브런치에 건의해봐야겠다.


격자가 있는 세상은 오늘도 평화롭다. 저 빈칸을 모두 채워버리겠다!


  아마도 내가 부호와 격자에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내 성격에서 기인하는 것일 테다. 텍스트가 일정한 공간 안에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 것을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는 나의 '변태스러움'에 부호와 격자는 제격. 텍스트가 넘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잘못된 띄어쓰기와 행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중증이냐면, 나는 한글로 글을 쓸 때, 격자를 확인하고 단락의 크기를 정한다. 퇴고할 때, 한 두 행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나는, 격자의 끝과 처음을 늘 염두에 둔다. 가장 행복할 때는, 격자의 끝 줄에 단락이 끝났을 때! 그리고 격자의 처음에 새로운 단락이 시작될 때!! 나는 무릎을 치며 '쾌감'을 느낀다. 이 정도는 써야 고수지! 편집할 때도 마찬가지. 내가 생각하는 편집의 끝판왕은, 단락과 문장이 한 두 행 다음 페이지로 넘치지 않게 하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니다(아무도 하지 않을 수도 있...).  근데 변태스러움은 나의 만족 때문이기도 하지만, 독자에 대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단락을 페이지에 또는 한눈에 있도록, 리듬을 놓치지 않도록 친절하게 배려하는 것이다.


단락이 격자의 끝 줄에 끝날 때의 쾌감은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격자의 첫 줄에 새롭게 시작되는 단락을 보라. 정말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지 않은가. 사랑스럽다.


작가는 조판부호와 문단부호를 아는 사람


  조판부호와 문단부호는 좀 다르다. 이것은 독자에 대한 배려이기보다는, 글 쓰는 사람의 마인드 문제라고 생각한다. 보지 않아도 되는 부호를 굳이 보겠다는 것은,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에 예민해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문단부호(↲)는 내가 행간을 '의도적으로' 띄었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한 논리가 끝나고 다른 논리가 시작된다는 것을 매우 폭력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엔터()를 쳐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게 한다. 그러니, 글쓰기가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아무데서나 엔터 치면 안 됩니다.



"슬프거나 화가 날 때 엔터키를 치세요". 시중에서 '빅엔터 쿠션'을 살 수 있다! 일단 나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나는 조판부호(∨)에 각별한 애정이 있다. '지극히' 비정상이긴 한데, 단어 사이의 빈칸은 마치 단어와 단어 사이의 심연과 같아서, 단어와 단어의 (심리적) 간격을 최대한 벌리려고 한다. 문장이 부드럽게 흐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어와 단어 사이를 부러 벌려 독자를 잠깐 머물게 하려고 한다. 일종의 낚시질, 혹은 빠뜨리기. 쉽게 읽을 수는 있으나 빨리 읽을 수 없는 글, 단어와 문장을 곱씹게 하려는 나름의 치밀한 계획. 이 숨겨진 글자는 독자에게 감춘 것이지만, (몰래) 내가 의도적으로 다루는 편집 명령이다. 이곳, 크레바스에, 개미지옥에 당신을 빠뜨릴 수 있다면, 아니 함께 빠질 수 있다면! 생긴 것()도 푹 빠지게 생겼다. 그러나 독자도 안다. 이곳이 빠지는 곳임을, 이곳이 위험한 곳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진다. 이곳이 문학의 공간이자, 즐거움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빠지려고 빠지는 사람을 우리는 독자라 부른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작가는 조판부호와 문단부호를 아는 사람이라고. 독자에게는 당연히 숨긴다. 다 보여주면 독자가 빠지지 않고 '폴짝'하고 건너가버리니까. 조판부호와 문단부호는 음악의 음표처럼 존재하나, 음악을 듣는 독자는 선율만 듣는다. 음표는 연주하는 이에게만 중요한 것이니까.





  때로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보여주는 것보다 숨기는 것이 더 미학적일 때도 있다. 글이 그런 것이 아닐까. 롤랑 바르트는 "나는 손가락으로 내 가면을 가리키면서 앞으로 나아간다(Larvatus prodeo)" 데카르트의 말을 인용하여 정념(pathos)을 감추는 일 자체가 발각되는 것을 랑의 본질이라고 했다(<사랑의 단상>). 마찬가지로 글쓰기 역시, 당신을 향해 정념을 숨기고 있는데, 이렇게 숨기고 있는 상황 자체를 알아달라고 하는 것 아닐까.

  작가는 조판부호와 문단부호 등을 감추고 독자에게 글을 보내지만, 독자는 작가가 감추고 있는 것, 의미의 행간에 빠질 준비를 하고 빠진다. 단지 독자는 모른 척할 뿐. 대부분의 작가들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작가 자신이 독자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 그러나 독자는 착하고 순해서 그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할 뿐. 모르는 척 빠져주는 독자. 얼마나 감사한가.    

  오늘도, 당신에게 내 정념을 감추고 글을 보낸다. 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당신이 알아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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