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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편집장 Aug 07. 2019

파일의 개수는 욕망의 개수

#한글 #4 저장하기 #Alt+S #Alt+V #최종

수시로 누르세요 알트에스(Alt+S). 생각날 때마다 알트브이(Alt+V). 이들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한글이나 기타 북디자인 프로그램을 쓰는 편집자들은 습관적으로 '저장하기'(알트에스, Alt+S)를 누른다. 잠깐 전화를 받거나 자리를 비우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 눈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서도 '수시로' 누른다. 아마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경험했을 것이다. 컴퓨터 전원 멀티탭을 건드리거나 프로그램 오류 등 여러 이유로 몇 시간 동안 작업했던 작업물이 통째로 날아갔던 경험. '멘붕'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상황이다. 지옥. 말 그대로 지옥이다. 나 자신에게 욕을 한다. 마우스를 집어던진 적도 몇 번 있다. 그리고 다시 마우스를 연결할 때의 기분은... 정말 지옥.

  지옥을 몇 번 경험한 편집자들은 이제 알아서 수시로 알트에스를 누른다. 작업하다가 중간중간 알트에스, 전화받아도 알트에스, 화장실 갈 때도 알트에스, 다른 작업창을 열 때도 알트에스, 인터넷 서핑할 때도 알트에스, 심심해도 알트에스, 일하기 싫어도 알트에스... 알트에스가 우리를 (야근에서) 구원할 것이다.


옛날 사람만 알 수 있는 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클릭하면 지옥문이 열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잽싸게 막으려면 단축키 Alt+S.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알트브이, Alt+V)가 있다. 알트브이는 작업물의 이름을 바꿔서 저장하는 명령어이다. 하나의 작업물은 하루아침에 끝나는 것이 아니므로, 날짜별로, 특이사항별로 저장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도 매우 중요. 아무 생각 없이 이미 작업이 완료된 작업물과 그 이전 작업물을 혼동하여 예전 작업물을 열어 작업도 하지 않은 채 완료된 작업물 이름으로 저장하는 순간, 또다시 지옥문이 열린다. 야근이 문제가 아니다. 나 자신을 수없이 자책하고 원망하여 마침내 자학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너무 많은 알트에스가 존재하면, 그것도 문제. 무엇이 마지막 작업물일까. 파일명을 보면 그 작업이 얼마나 고된 작업이었는지 알 수 있다. 최최최최최최최최최최최종. "나의 가장 나아종에 지닌 것도 오직 이 뿐"(김현승, <눈물>)이었으면 좋으련만. 최종은 최종까지 최종이 아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인쇄되어 실제 책이 나올 때까지 절대 안심하지 말 것. 재인쇄하고 싶지 않으면!


알트에스는 거둘 뿐


  습관처럼 알트에스를 누르는 일이 뭐 대단한 일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단순한 일이 아니다. 디스켓 모양의 저장하기도 알고 있고, 단축키를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을 습관처럼 누르는 일은 전문 편집자가 아니면 굳이 하지 않는다. 우리는 칼퇴해야 하므로 몸이 먼저 기억하는 일이지만, 일반적인 사람은 작업하기 바빠 알트에스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가끔 디스켓을 클릭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쓰던 글이 어떻게 날아가겠어하고, 작업에 주력할 것이나, 생각보다 이 세상은 돌발 상황이 많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류의 가능성을 줄여준다. 수시로 알트에스와 알트브이로 파일을 저장해두면, 작업을 잘못했더라도 다시 예전 작업 상황으로 되돌릴 수 있다. 바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한글에서 작업하다 알트에스를 누르면 마우스 커서가 순간 동그라미(로딩)로 되었다 사라진다. 파일의 용량이 크면 동그라미가 몇 초간 회전한다. 이 단축키는 한글만 해당되지 않는다. Adobe 시리즈나 일반 프로그램에서도 적용되는 단축키. S는 Save에 약자 일터. 이 동그라미가 오래 회전하면 우리는 불안하다. 영원히 회전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겪어봤기 때문이다. 영원히 회전한다는 것은, 프로그램 오류를 뜻한다. 윔부팅(Ctrl+Alt+Del=멘붕)을 고민해야 한다. 즉, 그동안 작업했던 것이 날아갈 예정이라는 뜻이다!야근+밤샘 콤보 예약이라는 뜻이다!ㅠㅠ

영원히 돈다. 멘탈도 돈다.

   (이제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나는 알트에스를 눌렀을 때, 동그라미가 순간(순간이어야 한다!) 생겼다 사라지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 나는 내 작업과 내 글에 확신을 갖게 된다. 물론 '되돌리기(Ctrl+Z)''다시실행(Ctrl+Shift+Z)'이라는 기능이 있어 되돌릴 수 있지만, 알트에스를 누른다는 것은 여기까지는 저장되었다는 뜻이다. 되돌릴 수도 있지만, 확정되었다는 뜻이자 내가 실수하지 않은 이상, 계속 남아있다는 뜻이다. 특히, 글을 쓸 때, 글이 막힐 경우나 진척이 되지 않을 때, 나는 수시로 알트에스를 누르면서 내 마음을 환기시킨다. 가뭄에 콩 나듯 '그분'이 오셔서 글이 막힘없이 죽죽 나가다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경우, 그럴 때 나는 알트에스를 누르면서 환희에 젖는다. 잘했어 good boy, 하고 말이다.


당신은 몇 개의 알트브이가 있습니까


  글을 쓸 때도, 나는 알트에스는 물론이거니와, 알트브이는 기본 of 기본. 산문이든 작품이든 간에 심지어 메모장이든 간에 파일을 열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알트브이다. 지난날의 글에서 진도를 더 나갈 것이니까, 지난날의 글과 달라질 것이니까, 오늘 날짜로 이름을 변경한다. 그래서 나는 웹상의 글쓰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브런치의 글쓰기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구나!)

저장 아니면 발행. to be or not to be. 너무 폭력적이지 않은가요 브런치 운영자님들!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도 만들어주세요!!

  

  글이 완성되어 마감 원고로 메일 전송하기 전까지, 나는 간략한 파일명에 날짜만 부기하다가, 글이 완성되면 파일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부여하고 메일 전송을 한다. 이때까지 폴더 안을 채우는 파일의 개수가 고심의 흔적. 파일이 무명(無名)에서 작품명이 될 때까지 알트브이는 차곡차곡 쌓여간다. 작품이 작품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따라서 나는 폴더와 파일이 헷갈리지 않도록 날짜와 번호를 부여하되, 가장 최근의 것이 정렬될 수 있도록 파일명은 만든다. 이를테면, 하나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1.원고 / 2.작업중 / 3.최종 폴더로 번호를 넣어 순서대로 폴더가 보이도록 하고, 작품 활동, 공부, 업무, 잡동사니 등의 파일들은 연도별, 시급도별, 강의별, 매체별 분류하여 한눈에 파일이 들어올 수 있도록 폴더명과 한글명을 명확히 지정한다. 폴더 안에 폴더, 폴더 안에 폴더... 이런 식이다. 강박증자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능력도 안 되면서,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욕망만 가득하니, 폴더와 파일이 점점 늘어난다. 파일의 개수는 욕망의 개수다. 파일의 개수는 무능력함과 노력의 이합집산. 그래서 이번 생도 망했다네.


나는 몇 개의 파티션을 가지고 있는가


  예전에 함께 공부하던 선생님께서 나보고 '분리주의자'라고 하셨다. 일상을 파티션으로 촘촘히 나눠 살아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파티션들이 유기적인 조합을 이루고 있지 않고 따로 논다는 것이다. 하나의 이념을 향해 유치환의 깃발처럼 나부껴야 하는데, 나는 파티션이 너무 많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feat. 조성모, <가시나무>)그래서 그분은 내게 <단순하게 살기>라는 책을 선물하셨다.

단순하게 살고 싶어서 책을 읽으면 더 복잡해지는 게 함정.

  그러나 단순하게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아는 바, 나는 더더욱이 하고 싶은 게 많아 그렇게 살 수가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역할이 많으면 단순하게 살 수가 없다. 예컨대, 굵직한 역할만 꼽아보자면, 나는 출판사 편집장, 문학 연구자, 강의자, 시인, 눈에 넣으면 조금 아플 아들의 아빠, 사랑스러운 아내의 남편, (자랑스러워야 할) 아들(사위) 등등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는 것은 '진즉에' 포기했다. 내가 선택한 일도 아니지만, 또 내가 내려놓고 있지도 않다. 그냥 흘러가게 두었을 뿐. 가끔 아내는 내가 평범한 직장인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나 역시 가끔은 그렇게 살고 싶기도 하다. 잠을 최대한 뒤로 미루면서, 시간을 n분의 1로 나누면서 살아가는 나 자신이 때로는 너무 싫다. 제발 잠 좀 푹 자고 싶다 나도!! 물론, 일복이 많은 것도 큰 복이라 생각한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능력이 있으니까 많은 일들을 맡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일들을 맡기 때문에 능력이 생긴다고 믿는다! 그러니, 엄살은 여기까지!!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나는 한 놈만 패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무대포(유오성)는 패싸움에서 도망가는 중국집 배달원 김수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한 놈만 패!" 한 놈만 죽도록 팬다고 하니, 내가 그 한 놈으로 걸리면 끝장이다. 그동안 반말하던 김수로는 무대포에게 바짝 쫄아 존댓말을 쓰게 된다. 다들 섣불리 무대포에게 덤비지 못한다. 한 우물만 판다는 말의 찰진 버전이겠다.

 

"너 왜 나만 따라와?" "나는 한 놈만 패!" "그런 게 어딨어?" "나는 무조건 한 놈만 패!" "그게... 저에요?" "말밥이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


   하나의 파일을 붙들고 얌전히 저장, 저장, 저장하거나, 죽자 사자 매달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파일이 잘못되거나, 다시 되돌려야 할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조금이라도 오류의 가능성을 줄이고 싶을 뿐. 인생도 마찬가지. 한 우물만 파는 자에게 못 당하겠지만, 멀티태스킹 하는 사람도 못 당한다. 더욱이 하나의 직장,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먹고 살아가기에 인생이 너무 길다! (조만간 우리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 채, 첨단 의학의 발달을 저주하게 될지도 모른다...ㅂㄷㅂㄷ)

  하여, 나는 일단 알트브이를 많이 만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만들 것이다. 폴더 안에 폴더를, 파일밖에 파일을! 일을 하든 글을 쓰든 삶을 살아가든!! 그러니까 내가 패는 한 놈은, 바로 나 자신인 것 같다 젠장. 나 자신을 죽도록 패면, 뭐라도 나오겠지. 나 한 놈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달달달 볶으면 뭐라도 되겠지. 잠도 안 재우고 쥐어짜고 쥐어짜면 뭐라도 생기겠지. 나 한 놈만 죽도록 패니, 이런저런 것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온다. 일단 줍줍. 죄다 쓸데없더라도 일단 줍줍. 바로 알트브이! 열심히 살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이렇게 되었구려. (무조건 오늘 브런치 글을 발행하려 했다. 며칠 끙끙 앓다, 이렇게 글이 하나 뙇! 브런치를 죽도록 패면 글 하나 나온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한 놈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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