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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편집장 Aug 27. 2020

0. 갑자기 글쓰기

#독서 #글쓰기 #독자보다 작가가 더 많은 시대 


글과 먼 당신, 갑자기 글을 써야할 때가 온다! 반드시 온다! 이미 왔다!  



우리는 지금 독서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먼저, 독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우리나라는 2년에 한 번씩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전국민 대상 독서 실태 조사를 한다. 2019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의 종이책 연간 독서율은 52.1%, 독서량은 6.1권으로, 2년 전에 비해 7.8%, 2.2권이 감소했다. 초중고생의 경우 독서율은 90.7%, 독서량 32.4권으로, 2년 전보다 독서율은 1% 감소했으나 독서량은 3.8권 증가했다. 연간 독서율은 일반도서(교과서, 학습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 제외)를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 연간 독서량은 지난 1년간 읽은 일반도서 권수를 가리킨다. 이 통계만 살펴봐도 우리가 어떻게 한국에서 살아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세부적인 통계를 확인해보면, 초등학생이 중,고등학생의 독서량을 완전히 압도한다. ‘초딩 독서논술’이 있기 때문이다. 방과후 활동을 하든, 학원을 다니든, 학습지를 하든 간에 ‘초딩’때는 책 볼 시간과 환경이 보다 넉넉하게 제공된다. 책을 안 읽으면 바보가 된다는 부모님의 무자비한 협박(?)에 우리는 진짜 책을 안 읽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책을 (억지로) 읽어 왔다. “책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책을 만든다”는 말 운운.


초딩때 빼고, 우리가 과연 책을 마음놓고 실컷 읽은 적이 있었을까.


    그러나 ‘중딩’이 되면 우리는 독서논술보다는 국영수 중심의 공부로 태세가 전환된다. 바야흐로 대학교 입시를 위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고딩’때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몇몇 학생은 ‘논술전형’이라는 ‘테크 트리’(Tech tree)를 타기 시작하지만, 대체로 본격적인 독서와 논술은 ‘초딩’때가 우리의 마지막 경험일 가능성이 높다. 수행평가때 독서감상문 몇 번 써봤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내 주변 지인의 증언에 따르자면, ‘초딩 독서논술’이 제일 가르치기 쉽다고 한다. 왜냐하면, 성적과 같은 결과물에 영향을 받지 않는 과목이니까! 부모도 학생도 선생도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고 한다. 독서논술을 잘 한다고 해서 성적이 잘 나오거나, 못 한다고 해서 성적이 안 나오는 그런 과목이 아니니까. 불쌍한 부모님들이여, 학생들이여, 선생님들이여(누가 제일 불쌍한가).

    전국민 대상 독서 실태 조사에서 성인들이 독서하기 어려운 이유로 가장 많이 대답한 것은 ‘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 이용’(29.1%)이었는데, 2017년까지 가장 많은 사람들이 꼽았던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였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 최첨단 디지털 환경에서 종이책보다는 영상 매체의 이용률이 점차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만 해도 아침에 눈떠서 밤에 눈 감을 때까지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보지 않는가. ‘잠들기전 유튜브 한판’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유튜브의 알고리즘(무한 재생 지옥)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전자책, 오디오북 독서율이 어느 정도 존재하지만, 조족지혈(鳥足之血), 창해일속(滄海一粟)에 불과하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 팬더믹이 선언된 ‘뉴 노멀(New Normal)’ 시대를 맞이하여 세상 모든 것이 유래 없이 변하고 있다. 이전으로 (영영)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넷플릭스’(Netflix)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하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영상 매체는 그나마 우리 손에 들고 있는 책 또한 빼앗아갈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지금 우리는 독서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슬프지만, 슬플 시간도 없는 우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대학생이 되면 그래도 책을 좀더 읽게 되지 않을까, 하고 섣부른 낙관을 하지만, 역시나는 역시나. 요즘은 대학생이 세상에서 제일 바쁘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강의가 비대면(un contact)으로 진행되면서 대학생들은 과제폭탄을 맞았고, 여전히 알바와 취업준비에 정신이 없다. 휴학 몇 년은 기본이고, ‘졸업 유예’까지 하면서 본격적인 ‘취준생’의 삶이 시작되지만,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 대학생과 취준생에게 책 따위를 읽을 사치는 허락되지 않는다.


부산카톨릭대학교 송상근 교수의 비대면 강의. 코로나19로 지친 학생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셨다!!


    그렇다면 취업에 성공(취뽀!)하거나 직업을 가지면 책을 읽을 여유가 있을까? No, No. ‘먹고사니즘’에 정신 없다. 지하철에서 책읽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만화책, 무협지 말고. 좀비(walking dead)가 걸어다닌다.

    성인의 종이책 연간 독서율이 52.1%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순수하게 독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입시를 위한 교과서, 학습참고서 또는 취업을 위한 수험서 등이라도 읽어서 그나마 6.1권이라는 독서량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럼 언제 책을 여유롭게 읽을 수 있을까. 아마도 모든 생업에서 손을 떼고 노동하지 않아도 먹고 살 정도의 형편이 되는 때가 되면 그제서야 책을 찾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때 책을 볼 만큼의 시력과 체력이 있는지는 의문. 책이 아닌 유튜브와 같은 영상을 보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결국 우리는, 초딩때 읽었던 책들이 초딩 이후 평생 살면서 읽을 책보다 많을 것이라는, 인정하기 싫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꼭 책을 읽어야 하나’하는 회의적인 관점도 존재한다. 책이 아닌 다양한 매체, 특히 영상물로 충분히 학습 가능하고, 지식을 습득하고 사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영상물의 빠른 속도. 쉴새없이 화면이 지나가는데, 깊은 사유와 폭넓은 지식 습득이 얼마나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 말 그대로 (지적 대화를 위한) 얇고 넓은 지식 정도는 습득할 수 있을 뿐이다. 슬프지만, 슬플 시간도 없다. 지금 당장 할일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갑자기, 글쓰기


    자 그럼,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가 마지막으로 글을 썼던 것이 언제인가. 떠올려보자. SNS, 채팅, 이메일 제외하고 말이다. 아니, 하루 중 종이에 펜이나 연필로 무언가를 적어본 일이 얼마나 되는가. 메모나 낙서도 포함된다. 사실, 나 역시 펜을 잘 들고 다니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있으니까! 요즘에는 다양한 스마트폰 앱이 있어 짧게나마 일기를 쓰거나 메모할 수 있지만, 그것마저 귀찮다!  

    더욱이 학창시절에 글쓰기를 얼마나 해봤을까. 독서와 마찬가지로, 초딩때 경험이 대부분일 것이다. 수행평가로 독서감상문 몇 번 써본 경험이 가장 최근일 것이다.

    문제는 고딩 이후다. 열심히 대학 진학 또는 취업을 위해 무시무시한 ‘중2병’의 강을 건너 ‘문제풀이-기계’가 되어 살아왔는데, 대학생이 되니, 갑자기 보고서와 레포트를 쓰라 하신다. (객관식) 문제를 잘 풀 자신은 있지만, 글쓰기라니. ‘멘붕’과 ‘현타’가 동시에 올 수밖에.


#죽겠네 #초딩 글쓰기 #대학생이면 뭐해 #맞춤법이 뭐임


    최근 대부분의 대학교에서는 ‘사고와 표현’, ‘글쓰기’ 등의 필수 교양과목을 운용하여 신입생에게 (급하게) 글쓰기 능력 향상을 요구하고 있다. 글쓰기 능력이 곧 사고 능력이기 때문이다. 초중고 교과서가 아니라 본격적인 전문 학문을 배워야 하니, 그에 따른 높은 차원의 사고 능력이 필수로 요청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이러한 강의를 오랫동안 맡아 강의해 왔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한학기 또는 1년 만에 글쓰기 능력을 괄목할 만큼 향상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글쓰기 능력이 사고 능력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쓰기 능력의 향상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많이 읽고(多讀), 많이 써야 하며(多作), 많이 생각해야(多商量) 하는데, 이것을 단기간에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짧은 시간이나마 훈련시켜서 앞으로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자신감을 길러주고 유용한 방법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 문제는 시간! 그 놈의 시간! 1학년 교양은 1학년에서 끝이다! 고학년으로 진급할수록 취업에 가까워진다. 고로, 글쓰기 훈련을 계속 유지할 시간이 없다! 

    문단 나누고, 개요 만들고, 중심문장 찾고, 문법 외우고, 글의 종류가 무엇무엇이 있다는 정도만 신입생 때 잠깐 배우는 것이 현 대학교의 현실이다. 뼈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자, 그럼 다 건너 뛰고, 이제 취업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고 치자! (잊고 있었던) 글을 다시 써야 한다! 1학년때 교양으로 들었던 글쓰기 훈련이 생각날 것이며, (중고책으로 팔지 않았다면) 글쓰기 교재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취업에 필요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자소설)’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자소서를 위한 컨설팅을 돈내고 받거나, 여기저기 자소서를 쓰기 위한 강의와 커뮤니티에 기웃기웃거리며 머리를 쥐어짜게 되는 게 일반적인 대학생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우리는 과연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왜 대학교에서는 졸업할 때까지 글쓰기를 가르치지 못할까. 답은 뻔하다. 먹고사니즘. 먹고 살기 위한 학문, 취업을 위한 학문, 자격증이 되는 학문을 익히는 데 모든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덤으로 ‘학점-기계’도 되어야 한다.

    기업에서는 왜 자소서를 받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글쓰기 능력이 사고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수준은 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잘 아는 인사채용 담당자가 내게 말했다. 이력서와 자소서를 보는 시간은 ‘김 굽는 속도’와 같다고. 적당히 빨리 본다는 말이다. 근데, 그렇게 빨리 봐도 실력 있는 자는 금세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김 구워본 적 있는가. 한 2~3초면 훑으면 된다.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 나는 종종 백일장이나 각종 문학상 심사를 맡게 되는데, 나 또한 김 굽는 속도 만큼 글을 봐도 심사가 가능하다. 몇 문장만으로도 그 사람의 실력을 쉽게 알 수 있다.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되면 글을 끝까지 읽지만, 나쁜 문장, 기본도 안 된 문장이 보이면, 끝까지 글을 볼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독서는 둘째치고 글쓸 일 거의 없이 학창시절을 보내왔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글쓰기할 상황이 도래하였다! 대학교 4년 내내 각종 보고서와 레포트 작성에 하얗게 밤을 지샐 것이며, 자소서는 또 얼마나 고치고 고쳐야 취업에 성공할까. 취업해도 문제. 직종에 따라 다르지만, 직장에서 써야할 보고서와 프로젝트 기획안은 또 얼마나 많을까.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취업할 때까지, 승진할 때까지, 인생 졸업할 때까지! 글쓰기는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독자보다 작가가 더 많은 시대


    그런데 또 한편으로, 요즘에는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 덕분에 모든 사람이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쉽게) 낼 수 있다! ‘독자보다 작가가 더 많아졌다’는 우스갯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을 수 있다. 서점에 가보라. 글쓰기 관련 책들이 아예 서점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나 역시 글쓰기 책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글쓰기 책은 ‘이 책 한 권이면 당신도 글을 쉽게 쓸 수 있습니다’라는 호언장담을 깔고 시작하지만 과연 그러한지는 의문이다. 글을 쓰기 위한 태도부터 마인드, 다양한 방법(스킬)을 알려주고 있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것인지, 효과적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글을 쓰기 위한 용기를 불어넣는 데에는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용기는 용기일 뿐. 용기를 불어넣어도 글쓰기가 지속되지 않는다면 하나마나 한 소리. 우리는 메모와 일기의 중요성,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식의 이런저런 TV프로그램이나 강연을 쉽게 접하게 되고, 늘 새해가 되면 작심삼일을 시행해보지만, 응, 작심삼일. 오래 가지 못한다. 내 습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장 쓰다만 일기장, 메모장, 노트가 집안 한 구석에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도 처박아 두어서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게 문제.


노트 제목이 <작심삼일>이다. 쓰다 말아도 죄책감이 덜 할 것 같다.


    SNS를 비롯해 블로그, 카카오 브런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매일 새로운 작가가 탄생하는 시대. 여기저기 글쓰기 강연도 넘치고, 글쓰기 관련 유튜브 영상도 많다. 매일 쏟아지는 글쓰기 안내서도 상당하다. 나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니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다른 점은 둘째치고, 계속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글쓰기 책을 써야겠다고 작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랫동안 대학교에서 ‘사고와 표현’, ‘글쓰기’ 등의 과목을 강의하면서, 청소년이나 일반 성인을 상대로 하는 인문학 강의 등을 맡으면서 늘 답답하고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의 방법과 이론만 서둘러 주입한다는 것이다. 대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일반 성인을 위한 강좌에서도 마찬가지. 글쓰기는 이런이런 종류가 있고 저런저런 이론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습니다, 이런 기술을 쓰면 됩니다 등 서둘러 결과물을 도출하려는 데 급하다. 특히 대학교에서는 글쓰기 결과물로 성적을 매기거나 취업을 위한 자소서를 만들어내는 일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만큼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은 그만하자. 마음 아프니까.

    나는 글쓰기의 힘을 믿는다. 물론, 나는 섣부르게 글쓰기가 우리의 삶을 위로하거나 마음의 병을 치료(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것은 글쓰기에 사후적으로 주어지는 보상 혹은 보너스인데, 이것이 목적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처음부터 노린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보상이자 전리품이다.


글쓰기는 우리 삶을 위로하거나 마음의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 그것은 글쓰기로 인해 부가적으로 얻어지는 보상일 뿐.


    그렇다면, 글쓰기 앞에 ‘실용’이 붙어야 하는 현 시대에서, 글쓰기와 문학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리고 글쓰기를 계속 이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니, 왜 글을 써야 할까.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나씩 생각해보자. 챕터 제로(0).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ps : <글쓰기 파내려가기>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본 글은 그 책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https://search.daum.net/search?w=bookpage&bookId=5460451&tab=introduction&DA=LB2&q=%EA%B8%80%EC%93%B0%EA%B8%B0%20%ED%8C%8C%EB%82%B4%EB%A0%A4%EA%B0%80%EA%B8%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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