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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편집장 Sep 01. 2020

1. 글쓰기 트라이앵글

#글쓰기 방법론 #총체적 시각 #해석에 반대한다 #끝까지 쓴다 #퇴고

글쓰기의 3가지 방법을 안내하겠다. 글쓰기는 글쓰기로 시작한다!


시간을 죽이는 시간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계속 쓰기 위해서는 RWP(Reading+Writing+Presentation)가 유기적으로 순환되어야 한다. 그것도 잘. 많이(+잘) 읽고 많이(+잘) 쓰고 많이(+잘)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입시와 취업이라는 실용 위주의 교육을 받아오고 공부를 해온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시간! 시간이 없다. 그러나 시간은 늘 없다. 늘 없을 것이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고, 글을 써야 하는데 시간이 없고, 말을 해야 하는데 대화할 시간도 없고,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만약 당신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겠는가. 코로나19로 인해 ‘자가격리’하며 집밖에 나가지 못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

   외출과 만남을 자제해야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 전개될 때, 책이 많이 팔리고 독서도 많이 하게 될 것이라는 다소 희망적인 전망이 있었지만, ‘역시나’ 였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리스는 전체 유료 가입자 1억 8,286만명 중 코로나 덕에 2020년 1~3월에만 전세계에서 1,577만명이 신규 가입했고, 한국은 2020년 3월에만 272만명이 신규 가입했다. 밖을 나가지 못하니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가 즐비한 넷플릭스에 빠질 수밖에. 나도 한달만 무료 구독하고 유료 구독 활성화 전, 바로 해지했다. 넷플릭스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달 무료에서 유료로 전환될 때 잽싸게 구독 중지 눌렀다. 난 넷플릭스 중독을 이길 자신이 없다.


   유튜브도 사정은 마찬가지. 어떻게 해야 그렇게 많은 구독자수로 돈을 벌 수 있는지, (진짜, 정말) 궁금하기만 하다. 요즘 초등학생 장래희망 선호도 1위가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사회적 거리를 두어야 할 때, 밀린 미드를 정주행했고,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빠져 새벽녘이 밝아올 쯤 잠들었고 넷플릭스 구독을 신청했다. 말 그대로 ‘킬링 타임’(killing time)했던 것이다. 시간이 많으면 시간을 잘 쓸 줄 알았는데, 시간을 죽이다니.

   무기력. 이 한 단어만큼 지금 우리의 코로나 시국을 잘 설명해주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그저 무기력하게 있다. 무기력은 ‘나를 어쩌지 못함’이라 할 수 있으니, 나 자신을 뜻대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나를 놓아버린 이 상태. 이 상태가 오랜시간 악화되면 우울증이 빠지게 될 것이다.


고흐 선생님도 개미지옥 같은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지셨나보다ㅋㅋㅋ


   우리는 시간을 죽이는 시간을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그만. 계속 시간을 죽일 수는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죽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일과 마찬가지 일테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 알차게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중 글쓰기와 독서와 관련된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름하야, ‘글쓰기 트라이앵글’.



글쓰기 트라이앵글 1. 총체적 시각
 : 세상의 모든 책은 연결되어 있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우리는 비결과 전략을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대답은 바로 이것이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 중국 북송의 문학가 구양수(1007~1072)가 한 말이다. 벌써 1,000년이나 지난 말이지만,  또 이만한 정답도 없다. 누가 할 줄 몰라서 안 하나, 할 수 없어서 못 하지.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말도 이제 말할 시간이 아까워서 못하겠다! 차근차근 하나씩 살펴보자.

가장 먼저 ‘다독’(多讀)의 문제. 얼마나 읽어야 다독이라 말할 수 있을까. 모름지기 사람은 평생 다섯 수레의 책은 읽어야 한다고, 책을 수레로 옮기면 소가 땀을 흘리게 되고, 쌓아올리면 들보에 닿을 정도라는 ‘한우충동(汗牛充棟)’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한 해에 발행되는 새 책만 해도 1억173만7114부(<2019 한국출판연감>, 대한출판문화협회)나 되니, 얼마나 읽어야 많이 읽었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날까.


훌륭한 사서가 되는 비결은 자신이 맡은 모든 책들에서 제목과 목차 외에는 절대 읽지 않는 거라고 말이야. 그는 이렇게 말했네. “책의 내용 속으로 코를 들이미는 자는 도서관에서 일하긴 글러먹은 사람이오! 그는 절대로 총체적 시각을 가질 수 없단 말입니다!” ―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 부분


   프랑스의 문학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피에르 바야르(Pierre Bayard)의 <읽지 않는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잠깐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이 언급된다. 그 소설 속에서 도서관 사서는, 하루에 책 1권씩 읽으려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훌륭한 사서는 책의 제목과 목차 외에는 절대로 읽지 않는다고 말이다. 책을 일일이 다 읽는 사서는 도서관에서 일하기 글러먹은 사람이며, 총체적 시각을 가지지 못한다고 말한다. 사서는 제목과 목차만 봐도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어떤 내용인지 파악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렇다. 내 아내는 현재 도서관 사서로 10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는데, 1년 구입 예산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예산 안에서 최대한 좋은 책을 많이 구입(收書)해야 하므로 제목과 목차만 보고도 좋은 책을 잘 찾아내야 한다고 아내는 말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언급되는 ‘총체적 시각’은 도서관 사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책을 읽을 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많은 사람들은 책을 최대한 많이, 그리고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은연중에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러나 바야르에 따르면, 그럴 필요가 없다. 정독할 의무에서 자유를! 망각의 죄책감에서 해방을! 그는 책과의 교감과 그에 따른 사유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책의 맥락과 독자의 사유가 만나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책의 맥락만 파악하면 그것으로 독서는 끝났다는 것이다. 책을 덮어도 사유는 계속될 것이므로.

   ‘총체적 시각’. 책 제목과 목차만 봐도 책의 맥락을 파악하는 요령. 이것이 더욱 필요한 시대가 지금 아닐까. 다양한 매체에서 쏟아지는 어마무시한 정보와 지식의 양을 우리가 모두 담아둘 수 없다. 그러나 그 정보와 지식 간의 관계를 파악해낼 수 있고, 지형도를 머릿속으로 그려낼 수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버릴 건 버리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이 가능하니까.

   따라서 책의 목차는 책 내용의 전체 지도와 같다.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이 책이 어떤 책인지, 무엇을 말하는지, 어디가 재미있는 부분이고, 어떤 것이 이 책이 전략적으로 노리고 있는 부분인지,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다. 목차가 책의 전부다!

   그러므로 ‘총체적 시각’은 지하철 노선도처럼 책과 책의 관계, 지식과 지식의 관계를 지도로 볼 줄 아는 것이다. 어떤 책이 어떤 책과 같은 맥락을 갖고 있는지, 어떤 지식이 어떤 지식과 만나는지, 그래서 이들의 관계가 어떤 의미를 형성하는지. 말 그대로 지식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책을 다 읽을 필요가 없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빈 곳’만 찾아서 읽고 그곳을 채워가면 그만이다.


지하철노선도처럼 머릿속에 책과 책의 관계를 지도로 그릴 줄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무작정 책을 많이 읽을 것이 아니라 맥락과 핵심이 서로 연결되는 지점을 찾고, 책을 나름의 방식으로 분류할 줄 알아야 한다. 당신 집에 서재가 없더라도, 머릿속에 큰 서재가 있어서 각 책장마다 서로 같은 경향의 책들이 모여 있어야 한다.

     책을 씹어먹으라는 말은 이제 옛 이야기. 당신의 관심사에 맞는 책들로 당신이 구축한 세계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면 된다. 다독과 정독의 죄책감은 이제 내려놓으시라. 퍼즐 맞추는 일에 ‘빅재미’가 찾아올 것이다.

   당신은 곧, 책에게 책을 소개받는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글쓰기 트라이앵글―2. 해석에 반대한다
 : 의미는 의미 지어진 의미


   이번에는 ‘다상량’(多商量). 흔히들 다상량을 생각을 많이 하는 것(헤아려 생각하다)으로 알고 있는데, 중국어에서 ‘상량(商量)’은 ‘상의하다’ 혹은 ‘의논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다상량은 생각의 ‘양(quantity)’의 문제가 아니라, ‘질(quality)’의 문제다.

   타인과 의논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듬고 문제를 고쳐가는 과정 혹은 책(문장)과 소통하면서 편견없이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다상량이다! 천하의 문필가 구양수가 설마 ‘많이 생각하라’ 정도로 밋밋하게 말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독서를 왜 하고(해야 하고), 어떻게 하며, 독서한 것을 어떻게 나누는가.

    현대에 와서 독서는 심신수양이나 출세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물론 교과서와 수험서는 제외. 여기서 독서는 앞서 언급한 일반도서에 해당하는데, 대부분 휴식과 즐거움을 위해 읽는다. ‘북캉스’(book+vacance)라는 말처럼, 독서를 즐기며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도 점차 늘고 있다.

    요즘에는 독서모임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가 많이 생겼다. 예컨대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트레바리>라는 독서 커뮤니티는 한 시즌 4개월 멤버십 가입을 하면, 월 1회 정기독서모임에 참가하여 독후감을 제출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말 그대로 독서모임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가 생성되는 것이다. 한달에 한 권씩 책을 강제로 읽어야 하고, 강제로 글을 써가야 하는데, 심지어 돈도 내야 한다. (코로나 시대를 잘 넘긴다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독서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초딩 이후로 우리들은 대체로 교과서를 통해 문학이나 기타 글들을 접했다. 솔직히, 입시라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글을 읽었고 썼었다. 취업해도 마찬가지. 그러다보니, 우리는 주입식과 암기 그리고 정답찾기에 능한 독서만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떠올려보자. 교과서가 생각날 것이고, 동영상 강의(인강)나 EBS 문제집 풀이가 생각날 것이다. 형형색색의 밑줄과 주석, 그리고 핵심어, 핵심문장, 분위기, 소재 등등. 어떤 것이 문제로 나올 줄 모르니, 그냥 다 외웠다! 정답이 있는 감상을 해야했던 것이다. 시의 주제도 외웠지만, 과연 한용운 시인이 그렇게 시를 읽어내는 것을 동의할까. 요즘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지만, 내가 김소월, 한용운 등의 시를 학교에서 배울 때, 무조건 ‘님’은 잃어버린 조국, 빼앗긴 민족을 상징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문학을 전공하다보니, 그 따위 해석이 (정말)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는 100명이 읽었을 때 100명의 감상이 모두 달라야 한다고 배웠다.

국어시간인지 미술시간인 알 수 없는 시간이 있었다. 색색의 형광펜으로 필기하기!! 난 여자들보다 예쁘게 필기를 잘 했다. 시험기간마다 내 교과서는 반을 한바퀴 돌았다.


해석은 지식인이 세계에 가하는 복수다. 해석한다는 것은 ‘의미’라는 그림자 세계를 세우기 위해 세계를 무력화시키고 고갈시키는 짓이다. 이는 세계를 ‘이 세계’로 번역하는 것이다(‘이 세계’라니! 다른 세계가 있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중략…) 우리의 임무는 예술작품에서 내용을 최대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있는 것 이상의 내용을 더 이상 짜내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내용을 쳐내서 조금이라도 실체를 보는 것이다. ― 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중

 

  미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사회운동가인 수전 손택(Susan Sontag)에 따르면, 해석은 ‘지식인이 세계에 가하는 복수’라고 했다. 쓸데없이 해석을 가한다는 말이다. 해석에 어떤 욕망이 이미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잃어버린 조국, 민족과 같은 국가 이데올로기나 해석자 스스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특별한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텍스트를 해석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일이라 생각하고, 우리는 어떻게든 해석하려 든다. 예컨대, 어떤 영화를 보면, 우리는 그 영화의 각종 상징과 복선, 플롯을 해석하려 한다. 영화 그 자체로 감상하면 되는데, 왜 굳이 시퀀스 하나하나를, 소재 하나하나를 해석하려고 할까.

     이 문제는 비단, 예술작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기도 하다. 책부터 시작해 어떤 사람의 표정, 어떤 사건의 의미 등 우리는 더 잘 보고, 더 잘 느끼기 위해 노력해야지,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해석학이 아니라 대상을 파헤치기보다는, 애정이 필요하다. 피사체에 애정이 있어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듯이, 우리는 이제 책을 읽을 때, 무조건 해석하려고 달려들지 말고, 책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감상해야 한다. 애정을 갖고 말이다. 정답은 당연히 없다! 정답 찾기는 이제 그만.

   그저 즐거우면 그만이고 이해 못하면 pass. 당신이 읽었을 때 좋다고 느껴지면 그것이 좋은 시이고, 당신 읽었을 때 재미있으면 재미있는 소설이다.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말자.  

   따라서, 그동안 우리가 찾아 헤맸던 의미는 우리가 갖다 붙인 의미, 의미 지어진 의미, 억지로 만든 의미라 할 수 있다. 특히 교과서 문학작품 해석은 최악으로 갖다 붙인 해석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해석은 모두에게 열려 있고, 모든 해석이 맞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짜증 섞인 표정과 말투를 보라. 의미에 목숨 걸지 말자.


   글쓰기 트라이앵글에서 ‘다독―다작―다상량’의 순서가 아니라 ‘다독―다상량―다작’의 순서로 이야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상량은 자신의 해석이 (무조건) 옳다고 여기거나, 타인의 해석을 (무조건) 신봉하는 것을 경계하는 일이다. 꾸준히 타인과 책과 소통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듬는 일,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문제삼고 깨어 있게 하는 일. 이것이 바로 다상량! 총체적 시각과 함께 가는 다상량! 이제 마지막 단계가 남았다.



글쓰기 트라이앵글―3. 끝까지 쓴다
 : 글쓰기는 퇴고부터 시작


   이제, 글을 써 보자. 컴퓨터 앞에 앉는다. 글을 쓰면 된다. 근데 어떻게 시작하지? 이것저것 좀 보다가 써야겠다. (한참 뒤) 무슨 말을 쓰지? 오늘은 망했네. 내일 써야겠다. (내일은 가능할까?)

   나처럼 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들도 매일 작품을 생각하진 않는다. 대체로 작가들은 청탁받은 작품을 넘겨야할 마감이 다가오면,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이 글은 쓰는 현재, 작품 2편의 마감을 6일이나 넘겼다. 그러나 괜찮다. 진짜 마감은 따로 있으니까(사죄와 읍소의 메일을 보내며 마감을 겨우 미뤘다).

갑자기, ‘그분’이 오신다! 그분이 오시면, 우리는 미친듯이 글을 써 나간다. 소위 말하는, ‘일필휘지(一筆揮之)’! 그분이 오셔야 우리는 글을 쓴다!

   글은 마감에 쫓기듯 써야 제맛이고, 그분이 오셔야 제맛! 미친듯이 밤을 새며 글을 써간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며 먹은 컵라면과 컵밥의 빈 용기를 쌓으면 못해도 아파트 20층 높이는 될 것이다. 과연 그렇게 탄생한 작품은 얼마나 작품성이 있을까?

   가끔 우리는 ‘갬성(감성)’ 터지는 날이 있다. 특히 요 며칠처럼 비가 계속 오면 마침내 갬성은 폭발한다! ‘밤수성(밤에 돋는 감수성)’도 터진다. 음주까지 하면 갬성과 밤수성은 못해도 100배 이상 증가한다. 폭발한다! 무척 위험한 시간. 이 주체못할 기분을 참지 못해 인스타나 페이스북 등 SNS에 글과 사진을 올린다. 멜랑콜리하니까. 난 지금 심각하니까. 카톡 프로필도 바꾼다. 오, 제발. 아침에 눈뜨자마자 후회와 숙취로 머리를 쥐어뜯는다. 차라리 오늘 그냥 제낄까. 이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술을 마실 땐 아예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고, 쳐다도 보지 말자.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자니?'하고 물어볼 일도 없다.


   왜 그럴까. 글 쓸 당시는 (매우) 괜찮아 보이지만, 다시 보면 최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날에는 반드시 삭제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감수성, 갬성은 그 특정한 시간대에만 유지되는 것이지, 하루 종일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밤에 그렇게 느꼈더라도, 햇빛 쨍쨍한 아침, 사람들 북적거리는 점심시간대에는 그 감정에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다. 더욱이 내 사적인 감정이 얼마나 호소력 있는지도 의문. 일필휘지라는 것이 그래서 문제다. 그 당시에는 자기 감정에 충만해서 글이 완벽해 보이고 괜찮아 보일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면서 문제가 하나둘 발견되기 시작한다.

   즉, 한 번에 완성되는 글은 없다! 일부 작가들이 ‘그분’이 오셔서 한번에 다 썼다고 말하는데, 대체로 그건 ‘뻥’이다. 한번에 내려쓸 수는 있겠으나, 두고두고 퇴고해야 한다. 내가 농담삼아 하는 말이 있다. ‘반건조 오징어 상태’. 적당히 물기가 있고 적당히 마른 상태가 되어야 글을 쓸 수 있다. 자신의 감정도 마찬가지. 감정에 너무 가까이 있어도 안 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안 된다. 거리 조절. 그 거리를 조절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다. 그러니까, 진짜 글쓰기의 시작은 바로 퇴고다!

   글쓰기 강의나 안내서 등에 자주 회자되고 있는 헤밍웨이의 어록이 있다. 바로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말. 처음 쓴 글은 밖에 내놓을 수준이 되지 못하고 쓰레기, 걸레 조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초고를 끈질기게 퇴고하고 퇴고하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퇴고를 무척 많이 한다. 그분이 오셔도 퇴고는 퇴고다. 퇴고에까지 그분이 오시면 좋으려만. 버려지는 초고도 엄청 많다. 초고를 버릴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자가 작품을 지배하리라.

   따라서 우리는 글을 쓸 때, 한번에 다 쓰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글쓰기는 퇴고부터 시작이다. 문제는 초고까지 쓰는 게 문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초고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문제겠다)

   그렇다면 퇴고는 어떻게 쓰레기 같은 글을 심폐소생시키는가?

   퇴고는 1차적으로 글의 문제점을 잡아낼 수 있고, 감정과 리듬을 조절할 수 있다. 특히 삭제할 용기! 글을 삭제할 수 있는 용기가 정말 대단한 용기라는 것을 당신도 알 것이다. 어떻게 쓴 문장인데! 하지만 그 문장이 없어야 글이 산다! 제발 지우자. 퇴고의 중요성은 말하지 않아도 알테니 여기까지.

   자, 당신이 어떤 글을 써야할 일이 생겼다.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초고를 써라. 지우면 되니까. 더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더 쉽다. 그렇게 대충 완성된 초고부터 글은 시작된다. 막막함이 덜 할 것이다. 흰 백지보다는 까만 글씨가 많은 것이 덜 공포스러울 것이다.

   일필휘지. 그것은 초고에만 해당되는 말이며, 글쓰기는 퇴고부터 시작이다.



글쓰기는 글쓰기로 시작


   ‘글쓰기는 글쓰기로 시작’이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말장난 같아 보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확한 말이다. 글쓰기에 여러 목적과 이유가 추가되면 쓰기 싫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제 공부하려고 마음먹었는데, 부모님이 ‘공부 좀 해’라는 말을 듣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특수한 목적이 있어서 글을 써야할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쓸 때, 마인드 만큼은 글 자체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글에 집중하라는 말은, 글을 써가면서 글과 싸우라는 말이다. 비문, 어색한 문장, 잘못된 문장, 맥락과 어긋난 문장 등등 글을 계속 고쳐가면서 글에 집중해야 하며, 자신의 논리와 사유가 어떻게 세계와 싸우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라는 말이다. 글쓰기 자체가 글쓰기의 목적이다!

"바람을 가르는 빠른 팔!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영화 <목포는 항구다>)


   그렇게 글에 집중하는 일이 곧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일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글과 마주하면서 당신의 바닥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닥은 두 가지 바닥이다. 첫째는 문장력의 바닥, 둘째는 자기 자신의 바닥. 어휘력의 빈곤함과 유아스러운 표현에 절망하게 될 것이고,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자기 자신의 민낯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버텨야 한다. 그렇게 버티는 일을, 글에 집중하는 일을 우리는 ‘퇴고’라 부른다. 

   당연히, 바닥을 찍으면, 올라올 일만 남는다. 바닥이 깊을수록 높이 올라갈 것이다.



ps : <글쓰기 파내려가기>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본 글은 그 책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https://search.daum.net/search?w=bookpage&bookId=5460451&tab=introduction&DA=LB2&q=%EA%B8%80%EC%93%B0%EA%B8%B0%20%ED%8C%8C%EB%82%B4%EB%A0%A4%EA%B0%80%EA%B8%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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