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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냥깜냥 May 07. 2020

처음

written by 범쥬


 

‘존버는 승리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든, 버티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이긴다는 뜻이다. 

나는 사실 이 말을 작년까지 맹신했다. 일단 버티면 좋은 결말이 올 것이라고 생각해서, 어떤 힘든 일이든 간에 버티고 또 버텼다. 심지어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들까지 버텨내려고 한 적도 있었다. 이건 정말로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이 정도도 못 버티면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했다. 누군가가 ‘존버가 꼭 승리하는 건 아냐’ 같은 말을 하면, ‘아니, 존버는 반드시 승리해. 왜냐하면 승리할 때까지 존버하기 때문이지.’라는 말로 맞받아치곤 했다.

생각해 보면, 버텨서 얻어낸 것들이 꽤 많긴 하다. 학점, 통장 잔고, 자소서에 쓸 스펙 같은 것들이 내 ‘존버’의 결과다. 이제까지 해왔던 것들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견뎌 보니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친한 친구들이나 선배들은 나에게 ‘존버왕’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컸다. 예를 들어 자존감과 정신건강 같은 것들. 쉬지 않고서는 절대 복구할 수 없는 것들을 잃었다. 무엇인가를 중도 포기하게 되면, ‘그래, 조금은 쉬다 가는 것도 좋지’라는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서 스스로를 괴롭게 했다. 그 덕에 정신건강이 수직 하락했다. 건강한 정신을 위한 첫 번째 스텝은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던데, 내가 나를 좋지 않게 생각하니 건강한 정신이 움틀 수가 없었던 것이다. 

슬프게도 나는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떻게든 버티는 것이 이기는 거라고, 포기하거나 울면 지는 거라는 생각이 너무 깊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내게는 ‘1+1=2’라는 공식만큼 당연한 것이었기에, 내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고 있었는지 몰랐던 것이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파 보니 자타공인 ‘존버왕’도 겁이 났다. 상담을 거치면서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버틴다는 것에 더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생각을 고치지 않는 이상 내가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엔 힘들었다. 생각했던 방식을 완전히 바꾼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다 못해 ‘내가 이것도 버티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다소 우스운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나 역시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일종의 깨달음이 있었는지, 조금씩 조금씩 바뀌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완전히 코너에 몰려 있을 때엔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는 것이 결코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것을 하는 것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 그렇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떠올려 보기로 했다. 힘든 과정을 견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행복’에 두기로 한 것이다. 무엇인가 시작하면 그것이 명백히 버거운 일인데도 확실히 끝을 볼 때까지 버티는, 열정적이기보다는 조금은 미련해 보이기도 하는 나를 막기 위한 제어 장치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점수도 돈도 좋지만, 나를 지키지 못한다면 모두 소용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은 결과였다.  



얼마 전, 나는 꽤 마음에 들었던 직무의 인턴을 그만뒀다. 면접을 볼 때에도, 입사해서 일을 배울 때에도 열심히 하겠다는 내 마음은 변함없었지만, 면접 당시와는 180도 달라진 상사의 언행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짧은 기간이었으나 그의 존재가 주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실로 엄청났다. 이미 두 차례의 인턴 경험이 있는 나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스트레스는 두 배, 세 배로 불어났다. 인턴 기간 동안 마음고생 할 것이 불 보듯 뻔했고, 누가 보아도 빨리 퇴사하는 것이 나에게 이로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존버’가 습관이자 일상이었던 나는 그 와중에도 고민이 됐다. ‘이런 사람 밑에서 배우는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지금 이런 상황도 못 견디는데, 나중에 진짜 사회 생활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와 같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이 일을 잘 끝내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 것 같았다. ‘거봐, 저것도 못 버티는 게 무슨 인턴을 한다고.’같은 소리를 들을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 두고 싶었다. 도를 지나친 무례한 언사에 자존감이 깎여나갔고, 무엇보다도 나의 정신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버티기’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그간 상담하며 내 스스로도 노력했던 것이 빛을 발한 것인지, 다소 뜬금없이 마음 한 구석에서 ‘인턴 자리는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잃어버린 정신건강은 다시 되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가 나를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꾸역꾸역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은 나는 처음으로 생각을 실행으로 옮겼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고, 내 눈앞에 있는 당신도, 내가 받을 월급도, 그 무엇도 나를 좀먹을 수 없음을 또박또박 이야기하고 끝을 맺었다. 나의 자존감과 정신건강을 등지는 건 결코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끝을 나쁘게 맺는 것은 절대 좋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몇 번이고 망설였지만, 마음을 정한 이상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퇴사했다. 돌아보지 않을 것이지만, 돌아본다 해도 후회는 없다. 오히려 내가 나를 위해 이런 선택을 할 줄 아는구나, 싶어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아는 나, 무조건 버티는 것만이 답이 아님을 아는 나, 처음으로 그런 내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존버 하면 반드시 승리하나요?’라고 물으면 나는 아마도 ‘아니요, 아닙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스스로 절대 버틸 수 없음을 알고 있는 일을 끝까지 버텨 어떻게든 해내는 것은, 내가 승리한 것처럼 보일 순 있지만 동시에 나의 모든 것을 연료로 태워 없애 버리기에, 결코 승리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걸. 

물론 주어진 모든 일을 포기해 버리자는 말이 아니다. 앞뒤 재지 않고 포기해 버리는 건 오히려 더 독이 될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나처럼 ‘버티면 반드시 이긴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그런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고민할 때—내가 그랬듯— 종종 ‘나’ 라는 것을 빼놓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존버’는 항상 승리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임을, 부디 마음 속에 새겨두길 바란다.  



____ 범쥬 its.me.bom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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