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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냥깜냥 Jun 21. 2020

향수(鄕愁)

written by 강 세화




해가 길어지고 습한 더위가 불쑥 찾아왔다. 여름이 됐다. 매년 여름이 되면 늘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몇 학년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생의 여름 어느 날, 느긋한 오후. 나무 재질의 거실 바닥은 볕이 들지 않는 오전동안 시원하게 식어 있었고 햇빛은 정오를 넘겨서야 겨우 빼꼼히 집 안을 내비치고 있었다. 매미도 울지 않는 초여름, 거실에 대(大)자로 뻗어 따끈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달구었다가 몸을 뒤집어 차갑게 식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노스탤지어’라고도 하는 향수는 드문드문 나를 찾아와 추억에 젖게 만든다. 4살에 다세대 주택에서 이사 와 약 20년째 살고있는 우리 집은, 그 긴 시간 동안 바래버린 벽지와 가구들 사이로 수많은 기억이 쌓여 있다.



내 방 침대 옆에는 빨간 색연필로 “세화와 함께 자요”라는 문장과 함께 상형문자와도 같은 낙서가 그려져 있다. 이 흔적이 생긴 순간을 보고 싶다면 이제 막 한글을 뗀 미취학 아동 시절의 나로 돌아가야 한다. 어린 세화는 언니 오빠가 끝내지 못하고 버려둔 어린이 천자문 책을 얻게 된다. 난 새로운 문자를 배운다는 학구열에 몽당연필을 들고 열심히 한자를 써 내려갔다. 밭 전(田)자와 나무 목(木), 입 구(口) 이 세 가지 한자를 마스터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감명받은 7살 강세화는 이 업적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어디에? 벽에. 돌돌 돌아가는 빨간 색연필을 고사리손으로 딱 들어 올리고 벽에 찰싹 붙어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다. 그 순간만큼은 난 세상에서 가는 명필가였다.


무엇인가 해내고 나면 꼭 칭찬을 받아야 하는 성정을 타고난 나. 마지막 획까지 야무지게 쓰고 나서 엄마를 데리고 와서 보여줬다. 다섯 식구를 위한 집 장만의 목표를 위해 십수 년을 노력했을 엄마. 겨우 얻어낸 집의 새하얀 벽지에 빨간 오점…아니 문장을 남긴 딸내미의 노력에 억장이 무너졌던 우리 엄마는 당연하게도 나를 혼냈다. 분명 칭찬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혼이 나버린 나는 수습을 해야겠단 마음으로 씩씩하게 지우개를 들었다. 종이 재질의 벽지니까 당연히 지우개로 지워질 줄로만 알고 말이다. 그날 난 엄마의 더 큰 꾸지람, 눈물로 얼룩진 얼굴과 찢어진 벽지를 얻었다. 이제는 세월을 맞고 변색된 낡은 벽지에 조금 희미해진 글씨, 그리고 그 기억이 지금까지도 나를 웃게 하곤 한다.



거실 벽 위에는 낡은 스피커가 두 개 붙어 있다. 카세트 비디오테이프를 보던 시절, 아빠가 스테레오 사운드로 DVD를 보자며 달아 놓은 것들이다. 비록 빠른 시대의 흐름 속으로 비디오테이프는 사라졌고, 거실 한 가운데를 꽉 채웠던 브라운관 TV도 언니 오빠의 공부를 위해 없어졌지만, 가끔 아빠는 빔프로젝터와 스크린을 들고 와 보고 싶은 방송을 보곤 했다. 주로 새벽에 있던 국가대표 축구 친선경기 등을 위해 사용됐는데, 그날은 세 남매가 늦게까지 깨어있어도 혼나지 않는 날이었기 때문에 신나서 졸린 눈을 부릅뜨고 끝까지 보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경기를 보는 날은 저녁부터 시청 준비를 해야 했다. 아빠가 빔프로젝터를 설정하는 동안 오빠랑 언니는 스크린을 세우고, 엄마는 냉동실에 박혀있던 오징어를 꺼내서 다섯이 먹을 만큼 구웠다. 나는 엄마 옆에서 내가 좋아하는 재래 김을 꺼내서 약한 불에 같이 푸릇푸릇 구웠다. 오징어를 찍어 먹을 고추장과 땅콩 같은 다른 주전부리와 함께 쟁반에 내어오면 어느새 소파에, 바닥에 하나둘 모여 시작을 기다리곤 했다.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오는 몇 걸음 안 되는 공간에 희한하게도 초록색 보조 등이 하나 있었는데, 나름 무드 있게 그 조명을 켜고 경기를 봤었다. 새벽 세 시가 넘어가면 무거운 눈꺼풀을 견디지 못해 아빠 옆에서 잠이 들었다가, 골이 들어감과 동시에 터지는 가족들의 함성에 깜짝 놀라 일어났었던 순간까지. 집에 돌아와 소파에 드러누워 천장을 봤을 때 보이는 스피커에는 그 새벽의 기억이 묻어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우리 집. 때로는 지긋지긋해서 얼른 떠나오고 싶어 울기도 하고 좋을 것 하나 없는 곳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과 그 기억에 그리움이 일렁거릴 때가 있다. 바쁘고 정신없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어느 순간 불쑥 다가오는 향수는 소중한 것들을 다시금 알려준다. 새로운 기구로 바뀌어 이전의 낡았던 모습이 사라져버린 놀이터, 꺼내기 귀찮아서 몇 년을 방치했다 버려버린 크리스마스트리에도 추억이 있었음을. 1미터도 안되는 높이의 협탁의 키를 겨우 따라잡아 내복 차림으로 사진을 찍었던 여섯 살의 나도, 하나 있던 컴퓨터를 차지하려 오빠와 다투었던 열두 살의 나도, 잠자리에 들기 전 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던 열여덟 살의 나도 모두 우리 집에 있었음을 말이다.



____ 강세화 glorysehw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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