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다온
그 애의 집엔 레몬 나무가 있었다.
덜 익어 녹색을 띠고 있는 열매를 그때는 알지 못하고 이게 왜 레몬인지 물었다.
레몬이니까. 그 애가 대답했다. 그 애가 레몬 나무를 바라보는 눈에 마땅한 애정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 애에게서 생기를 찾는 것도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 애는 레몬 나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여름의 기억이 나에겐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다. 운동회에서 넘어진 기억도 아니고 놀이동산에서 신나게 웃던 기억도 아니고. 그 애의 시선, 옅은 갈색의 눈동자, 자라고 있는 레몬 나무, 회색의 화분, 그리고 쨍한 레몬빛 햇살.
어느 봄날, 옆집에 또래 아이가 이사를 왔다. 평범한 가족처럼 보였고 인사도 나누었다. 엄마의 다리에 붙어 흘깃 마주친 눈의 색이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조심스레 손을 흔들었을 때 아이도 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사이좋게 지내주렴. 상냥한 그 집 엄마의 목소리에도 믿음직스럽게 고갤 끄덕였다. 눈이 예쁜 옆집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 애와 나는 학교가 달랐기 때문에 교실에선 만날 수 없었지만, 하교하는 길에 종종 마주치곤 했다. 안녕, 하고 말을 붙이면 안녕, 하고 대답해주었다. 봄치고는 더운 날이었는데도 아이는 기장이 긴 상의와 하의를 입고 다녔다. 덥지 않냐는 물음에는 말없이 고갤 끄덕일 뿐이었다.
어느 주말에는 그 애를 골목에서 마주쳤다. 가만히 담에 기대어 서서 신발 앞코를 내려다보는 옆모습이 있었다. 그 애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갤 돌려 나를 보았다.
“집에 안 가?”
“…우리 집에 갈래?”
항상 먼저 말을 거는 건 내 쪽이었기에 그 애가 건넨 반가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응! 신나게 대답하며 그 애를 따라갔다. 우리 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의 문을 열고 들어간 집은 냉기가 돌았다.
“실례합니다…….”
“아무도 없어. 괜찮아.”
나는 그 애가 먼저 해놓은 것처럼 가지런하게 신발을 벗고 들어가 거실 소파에 앉았다. 주방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들리더니 머지않아 그 애는 유리잔에 녹차를 가지고 왔다. 처음엔 그게 녹차인 줄도 몰랐다. 이게 뭐야? 녹차. 보리차 같은 거야? 비슷해.
하지만 냄새가 전혀 달랐다. 맛도 달랐고. 그래도 그 애가 준 거라고 홀짝홀짝 열심히 마셨던 것 같다. 녹차의 맛이 작은 혀를 까끌하게 만들 즈음 그 애가 방에 올라가 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또 그 애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 애가 열어준 그 애의 세상은 그 애처럼 작고 조용했다. 책상은 깔끔했고 책장엔 노트와 책이 많았다. 장난감은 하나도 없었고 눈에 띄는 건 창가에 놓인 화분 하나였다.
“이건 뭐야?”
“레몬 나무.”
내가 아는 레몬 열매는 노란색이고 조금 더 컸지만, 그 나무에 달린 열매는 작은 녹색이었다. 그래서 이게 왜 레몬이냐고 물었다. 그 애는 레몬이니까, 라고 답하고선 가만히 그 나무를 응시했다.
“너에게 소중한 거야?”
“…아마도.”
왠지 말을 더 걸 수가 없어서 그렇게 가만히, 레몬을 바라보는 그 애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하늘이 붉게 물들 때, 아래층에서 소리가 났다. 그 애는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 애는 항상 건조하고 무심한 표정이었는데, 처음 보는 낯빛이었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내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1층에는 그 애의 아빠가 있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옆집 친구예요.”
“그렇구나. 잘 놀았니?”
우리가 같이 논 게 맞겠지? 같이 놀았다기에는 가만히 있었던 시간이 훨씬 많았지만, 나는 그 애가 나를 직접 친구라고 소개해 준 게 기뻐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는 나를 현관 쪽으로 데려갔다. 조심해서 가. 그 애의 배웅을 받으며 신발을 신고 그 애의 아버지에게 안녕히 계세요, 인사까지 한 뒤에 그 집에서 나왔다.
그대로 몇 걸음만 걸으면 우리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담 두 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놓인 그 애의 집과 우리 집은 전혀 다른 곳 같았다. 익숙하게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엄마가 주방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반겨주는 소리가 있고 사람의 온기가 있는 공간이었다.
“엄마, 레몬은 노란색이 아니야?”
“레몬은 노란색이지.”
“그치만 녹색이었는데.”
“레몬 나무를 봤니?”
“응.”
그때 엄마가 가르쳐주셔서 알았다. 레몬 열매는 녹색일 때 따놓고 익힌다는 걸. 익고 나면 내가 아는 노란색이 된다는 것도. 그 애는 언제쯤 열매를 딸까. 그 열매가 노란색이 되는 걸 같이 볼 수 있을까. 나는 조금 설렜던 것도 같다.
날이 더워지고 여름 방학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방학 숙제 같은 건 잊고 시내의 스포츠센터 안에 있는 수영장에 가거나, 12시가 되도록 쿨쿨 늦잠을 자기도 했었다. 느즈막히 일어나 그만큼 늦은 점심을 먹고 해가 조금 누그러질 시간대가 되어서 밖에 나갔다. 놀이터에 친구가 있으면 같이 놀 생각으로.
하지만 내 걸음은 오래 걷지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애가 공용 쓰레기장 앞에 가만히 서 있었기 때문에. 각 주택에서 내다 놓는 쓰레기봉투들을 모아두는 작은 공간이었다. 아침마다 쓰레기 차가 와서 그 봉투들을 가지고 간다고 했다. 적당한 오후였기 때문에 그 공간에 쌓인 쓰레기가 많진 않았다. 검은 봉투들 앞에 멀거니 서 있는 작은 아이가 오늘따라 더 작게만 보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저번처럼 고갤 돌려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푹 숙인 고개를 따라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물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그 애는 울고 있었다.
그 애가 떨어뜨린 눈물방울은 여름의 아스팔트에 금방 스며들었다. 진하게 물들었다 사라지는 그 방울방울을 바라보다가, 그 애의 앞에 놓인 봉투 하나가 아무렇게나 찢긴 채 속을 다 보여주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제야 봉투 속이 눈에 들어왔고, 그 애가 왜 우는지도 알 수 있었다.
뚝뚝 부러진 나뭇가지와 널브러진 잎들, 나뒹구는 녹색의 열매, 깨진 화분 조각과 흙 무더기. 그 사이사이로 평범한 집에서 버릴 법한 쓰레기들이 몇 개 보였다.
감히 나는 그 애를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자그마한 손으로 봉투를 찢다가 다치진 않았나 싶어서 무작정 쭈그리고 앉아 축 늘어진 그 애의 손을 살폈다. 흙이 꽤 묻어 있긴 했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었고, 작은 생채기가 다였다. 하지만 그 손이 어찌나 아파 보이던지,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의 옷자락을 잡고 우리 집으로 이끌었다. 부모님이 외출한 뒤라 아무도 없는 거실에 그 애를 앉히고 거실장에서 구급상자를 꺼냈다. 그 애는 여전히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나는 조심조심 그 애의 손바닥을 펼쳤다가, 상처는 꼭 씻어주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라서 급하게 부엌으로 가 큰 국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물그릇에 그 애의 두 손을 담갔다가 빼고, 구급상자 안에 있는 거즈 뭉치로 톡톡 열심히 물을 닦아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다칠 때마다 엄마가 해주시던 대로 소독약을 상처 위로 묻히고 후우, 후, 마를 때까지 계속 불었다. 그 애는 내가 상처 위에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줄 때까지 나에게 손을 맡기고 얌전히 있었다.
“아픈 거 다 날아가라─”
마지막으로 상처 위에 꼭 걸어줘야 했던 주문까지 끝내고, 나는 그 애와 눈을 맞추었다. 어느새 눈물도 그친 그 애는 내 눈을 똑바로 마주쳐 주었다. 아마도 소중하게 여기던 레몬 나무를 잃고 서글퍼하고 있을 줄 알았지만,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차분한 시선이 내게 닿아왔다.
“마지막에,”
“응?”
“마지막에 한 거 뭐야?”
“그거, 얼른 낫는 주문.”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해주시던 건데, 안 하면 왠지 더 아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냥 하는 게 좋아. 그 애는 가만히 내 말을 듣곤 고갤 한 번 끄덕였다. 나는 괜히 그 애를 위로하고 싶어서 실없는 이야길 꺼냈다.
“레몬 나무에도 하고 올까?”
“소용없을 거야.”
“그건 나도 알지만.”
“괜찮아.”
고마워. 그 애가 말했다. 처음으로 웃으면서 말해주고는, 있잖아, 하며 말문을 열었다.
과일은 사람이랑 조금 닮은 것 같다고 생각해. 껍질이 있고, 속이 있고, 씨도 있고. 사람의 껍질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 속은, 씨는. 전부 다 뭘까.
그때의 나는 그 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 애는 그 말을 내뱉고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느릿하게 운동화를 신은 뒤, 나를 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안녕.”
그것이 그 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여름 방학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집은 이사를 가버렸고, 그 뒤로는 어디에서도 그 애를 볼 수 없었다.
나는 가끔 그 여름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살아내고 살아지면서 잊고 살다가 이따금, 그렇게. 그런 날이면 어딘가에 있을 거라 믿고 싶은 그 애를 생각하며 카페에 들르곤 한다.
주문 도와드릴까요. 담백한 목소리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옅은 빛의 눈동자를 향해서,
“레몬차, 하나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