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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냥깜냥 Oct 10. 2020

파란 거짓말 06.

written by 장미



파란 거짓말 06.

 w. 장미   


       

**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진주가 어떻게 해야 찬위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그냥 네 진실을 영원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줘. 소문이 사라지고 내가 편안해질 때까지라도.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입을 닫으면 되는 거잖아. 너한테 손해는 아무것도 없을 거야. 그렇지? 생각들이 머리를 계속해서 후려치고, 찬위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와중에 진주에게도 저가 쌓아온 이미지들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면 너무 날 것의 말들을 토해내고 싶지 않아서? 머리가 어지러워서 저 스스로조차 정확한 이유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찬위는 또다시 도망치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언제까지 이렇게 도망만 쳐야 할까. 다들 이 이야기를 그만 했으면 좋겠는데 왜 계속 저를 보며 이 이야기를 할까? 계속하던 생각의 끝없는 반복만 있었다. 진주는 그런 찬위가 답답하지도 않은지 차분히 찬위를 바라보며 담배를 태웠다. 조금씩 타들어가는 담배가 찬위의 마음과 다를 게 없다.     


“모르겠어.”

“뭐?”

“모르겠다구.”     


내가 직접 본 게 맞는데 너한테 뭘 해달라고 해야 해? 툭, 거짓말을 내뱉는다. 새파란 얼굴 위에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깔고 말이다. 이 말이 굉장히 이상하다는 것을 찬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진주는 찬위에게 직접적으로 네가 직접 보지 않았지 않느냐는 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이상한 말로 먼저 진주에게 약점을 내보인 것도 찬위 스스로라는 것도 무척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찬위는 솔직하게 말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못생긴 사과를 계속 베어 먹으며 씨가 보일 때까지 거짓말을 하는 법만 배워왔다. 그렇게해야 충분히 사랑 받고, 관심 받는 삶을 살 수 있었으니까.

진주는 찬위의 말에 할 말을 잃어버렸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을 다물면서 떨어진 담배는 진주의 실내화 근처에서 홀로 타들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할 말을 잃은 진주 때문에 생각보다 정적은 아주 길고 오래 유지되었다. 그동안 찬위의 머릿속에 차오르는 것은 새로운 거짓말의 바닷물이다. 실제로 직접 본 것을 물으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자신이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이유는 무엇인지, 네가 무섭지 않다고 똑바른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배짱까지 서서히 뇌를 가득 채운다. 피는 빠르게 식어간다. 뇌가 파랗게 물드는 속도에 맞춰서.     


“너….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래?”

“그럴 일 없어. 진짜 본 거니까.”

“그럼 나도 봤어?”

“뭐?”

“그 자리에 있던 나를 봤냐고.”     


나는 그 자리에서 너를 본 적이 없는데, 너는 나를 봤어? 시야가 뱅글뱅글 바쁘게 돌아간다. 이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진주는 저와 마찬가지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저와 다르게 정말 거기에 있을 수도 있다. 잘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진주가 저와 마찬가지로 거짓말쟁이인데 자신이 동요하는 걸 보인다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을 테니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아.”

“아니야. 대답하려고 했어.”

“뭐라고 대답하려고 했는데? 네가 날 봤다고? 아니면 날 못 봤다고?”

“…….”

“어떻게 대답해도 불리하잖아. 멍청아.”     


나를 봤으면 너는 애들한테 내 얘기를 했어야 했고, 나를 못 봤다면 거짓말을 한 건데 이상하지 않아?          



“불지른 건 난데 말이야.”          



………………. 

뭐?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저런 이야기를 함부로 해도 괜찮은 걸까? 나는 거짓말 하나도 이렇게 무섭고 힘든데 왜 쟤는 더 큰 잘못을 하고도 아무렇지도 않는 거지? 사람을 죽여놓고 그렇게 태연할 수 있어? 불을 지르고도 아무렇지 않게 학교를 다니고, 그것도 모자라서 교칙을 어겨가며 불을 피워 담배를 태울 수 있어? 나는 이 거짓말로 며칠을 고통 받았는데. 심해로 가라앉아 버려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도 없는데. 쟤는 아무렇지 않아. 나보다 더 큰 잘못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멱살을 잡은 것은 한 순간이었다. 시야에는 남의 교복을 꽉 쥐고 있는 제 손과 웃고 있는 진주의 얼굴로 가득하다. 처음으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걸 느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커다란 목소리가 분노로 쾅 울려 퍼진다. 괴상한 얼굴 표정을 한 찬위와 달리 진주의 얼굴은 너무나도 담백해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죄책감을 느낄 것이 없는 것처럼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어떻게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쳐?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을 해?”

“…….”

“거짓말이지? 내가 우스워 보여서 이런 장난 치는 거지?”

“장난 같아?”

“……뭐?”

“장난 같아 보여?”     


네가 나랑 뭐가 달라. 너도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 치는 건 똑같잖아. 너 그렇게 다 본 것처럼 얘기하는 것도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치는 거잖아. 왜? 너는 되고 나는 안 돼? 웃는 얼굴은 남들에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상냥하고 다정하게 조곤조곤 말을 내뱉는다. 꼭 찬위가 다른 친구들이 모르는 문제를 설명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진주의 말이 머리에 들어오는 속도가 무척이나 느렸다. 한참을 멍하게 서 있고 나서야 찬위는 진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였다. 찬위와 진주는 결국 똑같은 입장인 것이다. 거짓말이 조금 더 작은 죄일지 몰라도 결국 사람 목숨으로 장난친 거란 점은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찬위는 더 화를 낼 수 없었다. 오히려 힘이 빠져서 볼품없이 자리에 주저앉기까지 했다. 구겨진 셔츠자락을 툭툭 털어 정리를 한 진주는 주머니에 담뱃갑을 챙겨놓고 얼빠진 표정으로 앉아있는 찬위를 내려다보았다.     


“말했잖아. 좋은 기회를 주는 거라고.”

“…….”

“내가 방화범인 걸 어떻게 이야기할래? 그 이야기를 하면 넌 거짓말쟁이가 되는데.”

“…….”

“친구를 위해 감싸준 척 할 거야? 응? 내 삶이 힘들어질까봐 입을 꾹 다문 척이라도 할 거냐고?”     


그래도 변함이 없잖아. 네가 거짓말쟁이인 건.

그렇지? 묻는 말은 대답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찬위의 상처를 후벼파기 위한 말이었을 뿐이였던 거지. 찬위도, 진주도 그 점을 무척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진주는 조금 더 당당한 발걸음으로 학교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찬위는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이 새빨갛게 물들어간다. 그와 대비되는 파란 사과는 붉은 바다에 점점 가라앉는다. 파란 바다에 가라앉은 꿈에서의 저와 다르게 말이다. 거짓말은 뭘까. 찬위는 다시 시작점으로 되돌아간다. 붉은 불을 피해 도망치던 꿈과 파란 바다에 가라앉던 꿈이 마구잡이로 섞여 찬위를 끌어당긴다. 그대로 암흑이었다.          



**          



찬위가 다시 눈을 떴을 때에 보이는 건 진부한 소설처럼 병원의 하얀 천장이었다. 학교에서 기절한 저를 누군가 발견해 응급실로 왔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귀에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 눈을 감기 전까지 있었던 일을 겨우 정리하고 되새김질하는 것이 찬위가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던 것 같기도 했고, 그 옆에 서 있는 아버지의 얼굴이 잔뜩 굳어있는 것도 같았지만 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찬위야, 많이 힘들었니? 다정한 물음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면 기절하기 전에 있었던 일을 토해내고 말 것이다. 누가 범인인지 이야기하고, 저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많이 힘들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지금 나에게 협박하고 있는 범인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이야기도 빼먹지 않고 하겠지. 그럼 어떻게 될까? 진주가 말한 것처럼 저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으로 끝이 날까? 진주가 진솔하게 제 죄를 고백하고 일이 마무리될까? 친구가 그랬다는 걸 쉽게 말할 수 없었어요. 웃기는 대사를 치면서 눈물을 보이면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가족들도 다 없던 일처럼 넘어가주지 않을까? 엉망인 머리는 질문만 생산한다. 대답은 어디에도 있지 않고, 끝없이 질문이 나온다.     


‘네가 거짓말쟁이인 건.’     


목소리가 울린다. 진주의 밝고 고운 목소리이다. 대답은 없는 것처럼 질문을 해댔지만 사실 찬위는 대답을 잘 안다. 어쨌든 저는 이제 거짓말쟁이이다. 이렇게 커다란 것을 왜 숨겼니? 새로운 거짓말을 하면 돌아올 질문을 안다. 거기에 찬위가 정해진 대답을 얹으면 또 거짓말이 쌓인다. 계속해서 거짓말을 쌓고, 쌓고, 쌓고, 쌓고, 또 쌓고….

찬위는 이제 거짓말의 무서움을 잘 알았다. 처음 시작한 작은 거짓말도 커다란 괴물이 되어 저를 괴롭히고 있다. 새로 쌓을 거짓말이 어떤 공포를 만들어낼지 예상도 가지 않았다. 얼마나 끔찍할까, 얼마나 괴로울까, 언제쯤 나는 벗어날 수 있지? 꼭 평안했던 곳에서 쫓겨난 기분이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베어 물었던 최초의 인간들은 저와 같은 기분을 느꼈을까? 이 끔찍한 기분을 느끼며 허허벌판의 땅을 걸어나갔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 이들은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뜬금없이 든 생각은 기묘하게도 찬위가 깊이 하고 있던 생각에 바람을 불어 넣는다. 잠시 다른 얘기로 환기된 뇌는 금방 찬위가 갈 방향을 정해준다. 늘 그랬던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인정하지 않고, 부드러운 풀밭을 걷게 할 것이다.     


“학교에 경찰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니?”

“네?”

“네 얘기를 듣고 싶다고 하더구나. 엄마도 그 분을 만나뵈었어.”

“왜, 왜, 왜요?”

“네가 유일한 목격자잖니. 네 얘기를 선생님들끼리 상의하셨는데 그때 오신 경찰들이 그걸 들은 모양이야.”

“…그래서요?”

“네 말이 단서가 될 수 있으니 네 말을 꼭 들어보고 싶으시다고 하시더라.”

“싫어요.”

“응?”     


경찰은 싫어요. 무서워요, 엄마. 잘 하지 않던 애처로운 목소리를 가장하며 어머니께 매달린다. 미성숙한 아들은 싫어하실 거라 생각해서 늘 어른스러운 척하던 찬위였지만, 오늘만은 그러지 않았다. 이럴 때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면 동정심이 들겠지. 그렇다면 어머니도 경찰을 보러 가는 것을 강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애가 좋지 못하니 아이와 접촉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다정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찬위를 대신하여 경찰에게 말해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대충이라도 상황이 수습되지 않을까? 조금 더 빨리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이 정리되지 않을까? 아무 단서도 없는 경찰이 계속해서 이 일을 파고들지 않을 것이다. 금방 자리를 털고 일 없던 것처럼 넘어가겠지. 그 날의 사고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처럼 잠잠하게 가라앉을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더 이상 고통 받고 싶지 않았다.     


“얘야. 그래도 만나봐야지. 너 말고 그 분들을 누가 도울 수 있겠니?”

“선생님들 계시잖아요. 선생님들도 제 얘기를 안다면서요.”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야. 경찰을 보기 전에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먼저 해야 할 거라고 신신당부하시더구나.”     

너는 늘 잘해왔었잖니. 잘 할 수 있지?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빛에 보답하기 위해 잘하려고 노력했던 길면서도 짧았던 세월을 모두 부정하고 싶었다. 저는 그렇게 착한 아이가 아니에요. 거짓말도 했고, 나쁜 짓도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착하다는 이유로 날 거기에 보내지 말아요. 속으로 부모님께 매달리며 애원했지만 바깥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일단, 일단 선생님부터 뵐게요. 그러면 경찰과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겠죠? 늘 착한 말만 해왔던 아들은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본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은 뿌듯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본다. 믿었던 아들이 원하는 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갑자기 부모님이 제 가족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저를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는 이 사람들은 내 가족이 맞을까? 불쑥 든 생각이 환기로 멀쩡했던 뇌를 어지럽게 만든다. 자꾸, 자꾸, 자꾸 생각을 하는데 답은 나오지 않고, 질문이 뒤섞이기만 한다. 벗어나고 싶어서 생각을 하는데 자신을 옭아매기만 한다. 누가 목을 꽉 졸라서 숨도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찬위는 그대로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대충, 아무렇게나. 어머니는 그런 제 자식을 걱정하는 건지 다정한 손길로 따스한 이불을 챙겨 덮어준다. 충분히 쉬다가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럼에도 데워지지 않는다. 푸름으로 뒤덮인 알맹이는 무엇을 덮어도 따뜻하게 변하지 않는다. 나만 다른 색이야. 나만 이렇게 계속 다른 색일 거야. 찬위는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다시 감았다. 아무 꿈도 꾸지 않고 싶었다.   



____ 장미 therosenove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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