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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냥깜냥 Oct 17. 2020

여백으로의 걸음

written by 강 세화


여백이란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꽤나 자주 공상에 빠지는 나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잠에서 깨고 나서 그 내용을 세세히 적을 정도로 기억에도 남는 꿈을 자주 꾸고, 좋아하는 만화나 소설의 이야기를 되새기다 뒷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생각들을 여백에 담아내던 것이 내 취미인 그림 그리기의 시발점이다.





선생님이나 부모님 같은 어른들이 산만함이라 표현하던 낙서들은 내 상상력의 집약체였다. 교과서 본문 옆이나 문제들 사이사이의 작은 공간에, 어젯밤 꿨던 꿈속의 이상한 하늘을 그리거나 전에 봤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떠올려 서툴게 따라 그리곤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들이 칭찬해주면 뿌듯해지는 건 덤이고, 그저 즐겁게 마구 그려댔다.


낙서의 양분인 잡념은 내 몸과 함께 자라는지, 여백을 채운 낙서들이 글자 옆 작은 공간이 비좁아 더 큰 세상을 바라기 시작했다. 교과서를 낙서 범벅으로 만들었다가 책 검사라도 하면 잔뜩 혼도 나겠다, 아예 낙서용 연습장을 새로 샀다. 낙서 공간을 옮긴 난 내 머릿속을 채운 끊임없는 생각들을 본격적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자면 본격적인 딴짓 시작인 셈. 수업 시간에 집중은 안 되고, 마침 손에는 연필이, 그리고 앞에는 연습장이 있으니 어린이의 얄팍한 의지로는 쉽게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런데 즐겁게 낙서를 하던 어느 순간, 내 그림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어설픔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는데 나는 애꿎은 장비 탓을 했다. 중학교 1학년 시절에 만났던 한 친구는 컴퓨터로 그림 그리는 실력이 프로만큼 뛰어났고, 나는 그를 부러워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노력은 모른 척하고 나도 그 애처럼 타블렛이라는 게 있으면 그림 실력이 출중해질 줄 알았다. 확실히 컴퓨터 드로잉 툴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니 편했다. 물감이나 색연필로 조색을 하지 않아도, 스포이드로 콕 콕 집어낸 색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 다채로운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뭔가 실수를 하고 선이 삐쭉 잘못 튀어나와도 Ctrl + z, 이 단축키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되니 전보다 공을 덜 들여도 나름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와서 신이 났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노력이 없으면 실력이 쌓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데 얌체같이 단숨에 멋진 결과물만 뚝딱 만들어내고 싶었다. 도깨비방망이 한번 휘두르면 나오는 동화 속 금은보화 마냥. 그림에 쏟을 시간과 땀은 이미 공부라는 제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는 생각에 매이자, 더는 의욕조차 나질 않았다. 그래서 그림도, 낙서도 하지 않게 됐다. 순수한 즐거움이 묻어있던 이면지의 뒷장이나 새 캔버스는 더 이상 즐거운 상상이 가득한 여백이 아니라 공허하고 막연한 공간이 됐다.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내 발로 다시 좁디좁은 여백을 찾은 때는 다름 아닌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둔 겨울방학. 예비 고3 학우들이 이제 우리 차례라며 특강과 학원을 급급히 찾아다닌다는 시기에 나는 ‘덕질’에 퐁당 빠져버렸다. 지금까지도 열렬히 애정하는 방탄소년단에. 친구들은 1, 2학년 때부터 좋아하다가 3학년이 돼서 마음 다잡고 공부할 거라며 ‘탈덕’하더니, 나는 무슨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찬 연어마냥 굴었다. 무언가를 너무 사랑하면 자나 깨나 보고 싶은 법. 온갖 빈 곳에 멤버들 예명에, 본명에, 노래 가사를 적었다. 공책에도, 책상 위에도. 내 가수를 향한 끓어오르는 애정과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에 익숙해진 입시생의 시선이 합해져, 그 당시 발매됐던 노래 ‘Young Forever’를 문학 공부하듯 분석하기까지 별의별 짓을 다 했었다.


본격적인 덕질을 처음 해본 덕질 새내기인 나는 SNS로 쏟아지는 소식들을 줍기에 바빴다. 그러던 중 팬아트라는 것을 만나게 된다. 여러 ‘존잘님’들이 담아낸 멤버의 빛나는 순간들이 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한참을 보고 또 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문득 떠올렸다. ‘아, 내가 그림을 그렸었지, 집에 타블렛이라는 게 있었지!’ 그제야 생각해보니 그림이라는 건 노래를 듣고 무대를 보고 생각하는, 벅차올라서 흘러가는 것조차 아쉬운 매 순간을 기록해 놓기에 아주 적합한 소재였다.


잘 그리고 싶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좋아하는 가수의 모습을 그림에 온전히 담아내고 싶은 생각이 솟았다. 그동안 낙서조차 하지 않았던 손은 굳어서 그림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요행을 바랐고 이전에 느꼈던 막연함도 일상처럼 늘 함께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그림을 그려올 수 있던 원동력은 나도 조금 더 닮게, 좀 더 예쁘게 그려보고 싶다는 막연한 욕심에서 비롯됐다.


나는 내 욕심이 추한 것이라 생각했다. 누군가의 그림이 멋져 보이고 저렇게 그리고 싶은데 되지 않는 나를 보고 열등감이 많은 것이라, 또 과분한 생각이라 여겼다.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모를 이 어중간한 재능이 밉기도 했다. 그러나 삐뚤빼뚤 못난 낙서 그 ‘어중간한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내 일상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욕심을 등에 업고 한 발짝 내디뎠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걸음들이 모여 뒤를 돌아보니 이미 멀리 와서 지도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상상하고, 그림이라는 도구로 그것을 기록한다. 모 방송에서 김영하 작가가 언급했던 ‘작가는 말을 수집하는 사람’이라는 말처럼, 나는 그림으로 담기 위한 순간과 장면들을 수집한다. 시시각각 바뀌는 자연의 빛을 눈여겨보게 되었고, 노을빛을 받은 담벼락은 어떤 색을 띠는지 관찰하게 되었다. 어린아이가 웃을 때의 쾌활함과 중년이 인자한 웃음을 띠었을 때의 표정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 생각을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사진첩에 글, 그림, 사진들로 채우게 되었다.


그림이나 글이 아니어도 좋고 그 실력이 처음부터 뛰어날 필요도 없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공예품이 예뻐서, 의미 없이 흥얼거렸던 멜로디가 은근히 좋아서’ 따위의 정말 소소하다 못해 하찮은 계기와 즐기고 싶고 잘하고 싶은 욕심만 마음에 품어라. 그리고 딱 한 번만 움직여보라. 당신이 세상을 느끼는 감각이 달라질 것이고 그것은 삶의 여백을 채울 것이며, 일상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때로는 내가 무슨 취미를 가지냐며 쓸데없는 시도를 하는 것 같다 의심이 들 때도 있겠지만 첫발 정도는 그저 떼어보면 어떨까? 이면지의 남는 여백에 끄적이는 낙서처럼.



____ 강세화 glorysehw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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