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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냥깜냥 May 07. 2020

BLUE ; 세화의 삶에 묻은, 말로 꺼내기에는 사소한

written by 강 세화


어릴 때부터 가장 좋아하던 색깔. 미술학원을 다니던 나는 어느날 수채화 물감 중 ‘셀로리안 블루’라는 이름의 물감을 발견한다. 그날을 기점으로 그 요상하고 멋져보이는 이름에 꽂혀서 “무슨 색이 좋아?”라고 물으면 “셀로리안 블루요!” 하고 아는 체하기를 좋아했다. “그게 뭐야…”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반응에도 꿋꿋이 그 이름을 외쳤었는데, 이제와서는 왜 그랬나 싶다. 근 몇개월간은 너무 긴 시간동안 파랑을 좋아했다는 이유로 다른 색에 눈을 돌렸었으나, 여름을 맞이해서 다시 스멀스멀 파랑색이 좋다는 내면의 소리가 올라오는 중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학교 생활할 때의 내 침구류는 대부분 파란색. 집에서 쓰는 이불도 학교 기숙사에서 쓰는 이불도 다 파란색이다. 완전 새파란 색은 아니고 다 하늘색. BT21 캐릭터 시리즈의 코야도, 미니소에서 샀던 펭귄 인형도 죄다 파란색. “학교 가면 에어컨 잘 틀어줘서 두꺼운 이불 들고가는 게 나아요.” 라고 하셨던 침구가게 사장님의 말에 속아 학기 중에는 그 날씨가 얼마나 덥든 상관없이 극세사 재질의 파란 이불을 덮고 자야 했다. 이불의 색깔 덕에 눈은 시원하지만 원체 열이 많은 내 몸은 그러지를 못해서 자기 직전에 항상 찬물로 몸을 식히고 자야 했다. 

더위로 깨지 않고 시원한 푸른 잠을 자길 바라며 드는 잠자리. 꿈만은 시원하길. 


가을에서 봄까지의 미세먼지로 가득 찬 회색 하늘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장마 끝에 온 파란 하늘에 마음 깊이 감동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쪄 죽을 것 같은 더위가 살을 찌르지만 하루에 열댓 번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요즘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넓은 창이 있는 시원한 카페에서 파란 캔버스에 흰 물감을 뭉개놓은 것 같은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그렇게 잘 갈 수 없다. 또, 수플레 케잌처럼 몽글몽글 무리지어 있는 구름도 예쁘고. 아버지 차를 얻어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면서 “이게 우리나라 하늘이지!” 하고 호탕하게 터트리는 아버지의 웃음 따라 보는 하늘도, 정말 그렇다며 맞장구 치며 웃는 어머니의 즐거움 따라 보는 하늘도 참 좋다. 카페만큼 시원하지도 않지만 나무 장판으로 되어 찹찹한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보는 하늘도 좋다. 울지 않는 매미가 방충망에 앉아있고 저 멀리서 다른 매미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자면 ‘아…여름방학 같다’라며 늘어지게 된다. 한가한 여름날의 표본.  


가끔 내 기분이나 내면, 생각, 혹은 감정을 바다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평화롭고 큰 파도가 치지 않는 넓디 넓은 바다. 나는 그 위에서 파란 하늘을 보며 동동 떠다니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가끔 출렁이면서 코로 물을 먹거나, 한껏 신나서 힘차게 헤엄치다 지쳐서 잠깐 늘어지는 일은 있어도 대부분은 맑고 푸른 수면 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바다의 푸름은 하늘의 색을 반사해서 생기는 색채인지라, 갑자기 구름 가득한 하늘을 맞이하면 검은 바다에 빠진 나를 만나게 된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뀐 하늘은 언제 다시 푸른 하늘로 돌아올지 기약이 없어서 더 이상 한가하게 떠다닐 수 없게 된다. 그 불안 끝에 다시 날이 맑아지면 다행인 일이지만, 바람이 불고 큰 파도가 나를 집어 삼키게 되면 그때는 저 깊이 가라앉는 것이다. 가만히 힘을 빼고 기다리면 충분히 다시 올라갈 수 있는데 무서워서 발버둥 치면 저 깊이 심해에 빠져 버리기도 한다. 이미 폭풍이 지난 바깥에서는 수면 아래까지 빛을 보내는데 그걸 알면서도 더 깊이, 더 깊이 내려가 결국 바닥에 도달한 나는 다시 올라가기가 두려워지기도 한다. 힘겹게 올라가도 언젠가는 지금처럼 또 다시 가라앉을 걸 알기 때문에. 이렇게 내 감정을 바다에 빗대어 스스로 진단하면서도, 딱 한번 발을 구르면 다시 맑고 푸른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는 걸 아는데도 그 한 발자국이 참 힘들다. 검푸른 바다속에 빠지더라도 다시 힘내어 올라갈 수 있는, 물살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카페 ‘이디야’에 여름맞이 신메뉴가 나왔다. 지중해의 바다 색처럼 맑고 시원한 파란색인데, 맛은 청사과와 레몬그라스. 사실 시킬 때 엄청 고민을 많이 했다. 커피는 먹기 싫고 더워서 시원한 걸  먹고 싶은 날에는 보통 아이스티나 에이드를 시키는데, 대부분의 에이드는 계속 끝맛이 남고 입이 너무 달아져서 금방 물리기 때문에 나중에는 후회를 하기 일쑤다. 근데 오션펀치는 그런 것 없이 굉장히 깔끔하고 상큼하게 잘 마실 수 있었다. 강력 추천한다! 함께 나온 다른 신제품도 맛있을 것 같아 곧 하나씩 맛보려고 계획 중이다. 

휴학 중 체력 강화를 위해 수영을 약 3개월 동안 다니다가 최근 일정 상의 문제로 그만두게 되었다. 물에 들어가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나라서 나름 즐겁게 운동할 수가 있었는데, 사실 그 어떤 이유보다 눈이 굉장히 즐거웠다. 모든 수영장들이 그러하듯 내가 다니던 스포츠 센터의 수영장도 하늘색 타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반투명한 수영장 창 너머로 햇빛이 들어와 물을 비추면 물을 가르는 손에 닿아 일렁거리는 것이 참 좋았다. 빛을 받아 유난히 더 푸른 물에서 헤엄치는 듯한 그 기분은 생각보다 더 청량하고 시원하다. 언젠가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레인이나 사람들의 진로에 구애받지 않고, 나와 물과 빛만 함께 유영하는 푸르른 휴가를 보내고 싶다.    

당신의 일상에는 어떤 파랑이 묻어있나요?  



____ 강세화 glorysehw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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