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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냥깜냥 May 07. 2020

아주 작은 즐거움

written by 범쥬



매일매일 참 여유 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시험을 간신히 끝냈더니 과제가 있고, 과제가 끝나면 또 시험이 있고. 알바도 피곤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피곤하다! 사람들은 그래도 지금이 좋은 거라며, 사회 나오면 더 힘들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런 이야길 들을 때면, 내가 너무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자기가 힘든 것이 가장 큰 것처럼 느껴지니까.

요즘엔 이런 시기를 ‘인생 노잼 시기’ 라고 부른다고 한다. 무엇을 해야 의미 있을지 고민은 하지만, 딱히 결론은 나지 않는 그런 시간. 뭘 해도 재미없게 느껴지는 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나의 ‘인생 노잼 시기’는 작년 가을이었다. 그때 무얼 했나, 되돌아보면 뭘 했는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사람도 잘 만나지 않고, 매일 학교와 집만 쳇바퀴 돌 듯 왔다갔다 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원래 뛰어난 집순이 기질과 귀차니즘이 있지만, 작년 가을엔 좀… 심하긴 했다.

작년 늦가을, 11월 중순도 한참 지나서 시험을 준비할 무렵, SNS에서 만나 오프라인 모임까지 함께하는 친구가 늦은 생일 선물이라며 내게 택배를 하나 보냈다. 책과 조그만 꽃다발이 들어 있었다. 책과 꽃을 함께 선물할 수 있는 기능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예쁜 꽃다발은 사실, 5일도 살아남지 못했다. 선인장도 저 세상으로 보내 버리는 아주 특별하고도 비참한 능력을 지닌 나는 고군분투했으나 꽃들을 살리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선물은 할 일은 많고 새로움은 없는, 다소 막막하고 팍팍한 ‘인생 노잼 시기’ 속 약간의 즐거움이 되었다. 멀쩡하게 잘 있는지, 매일매일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 생긴 것이다. 비록 이미 죽은 꽃이지만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대충 꿰어 입다가도 ‘멀쩡하군.’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집에 돌아와서 ‘아직 쌩쌩하군.’ 하며 웃을 수 있는 잠깐의 여유가 생긴 것 같기도 했다. 또, 그 순간을 남기고 싶어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꽃다발 사진도 찍고, 그 꽃을 배경으로 다른 사진들을 연출해 보기도 했다. 매일 들여다보는 노트북이나 핸드폰, 혹은 종이 프린트물 속 세상이 아니라, 잠깐의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곳으로 세상이 변한 것 같았다. 복잡하고 어려운 생각이 아니라 순수하게 ‘예쁘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잠깐의 여유가 있는 세상으로.  



*



나는 원래 꽃을 잘 사는 편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올 겨울까지만 해도, 선물용을 제외하고, 나를 위해서 꽃을 사본 적이 없었다. 사실 그 친구에게서 조그만 꽃다발 선물을 받기 전까지는 꽃 선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꽃을 사느니 차라리 다른 것을 사겠다고 생각했었다. 꽃값이 상당히 비싸기도 하고, 관리를 제대로 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물 받은 꽃다발을 보면서 사람들이 왜 꽃을 사거나 기르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비록 5일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꽃다발이든, 화분에 담긴 것이든, 그걸 들여다보고 그것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한다는 것 자체가 하루 일과 중 약간의 여유를 불러오는 것 같다.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던 것에서 살짝 벗어나 다른 생각을 하게 하거나, 옆으로 새서 기지개 한 번 켤 수 있게 하는 정도의 여유. 예전엔 꽃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꽃이 ‘인생 노잼 시기’의 아주아주 작은 즐거움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슬슬 그 시기가 오고 있는 것 같은데, 집 앞에 꽃 트럭이 오면 꽃 한 다발 사 봐야겠다.  



____ 범쥬 its.me.bom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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