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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냥깜냥 May 07. 2020

파란 꿈

written by 장미



숨을 참으니 별천지였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사라진지 오래였고, 오히려 하늘은 내 발 밑에서 유유히 구름을 몰았다. 마치 세상이 뒤집힌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수오는 점점 막혀오는 숨을 꿀떡꿀떡 넘기며, 떠지지 않는 눈을 뜨기 위해 노력했다. 짠물이 눈을 적시고, 흐릿하게 자리 잡은 시야는 파랗게만 보일 뿐,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다. 수오가 곧장 느낀 것은 속절없이 밀려오는 공포였다. 점점 사라지는 숨이 아득해져오는 정신을 밀어낸다. 파도에 따라 밀리고, 또, 밀리고, 밀리다 보면 죽음을 마주할 것처럼.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침몰하면 새파랗던 바다는 까맣게 물들어 나를 삼키리라. 더 이상의 삶은 이어지지 못하고 그렇게 추락하고 말리라. 짧은 삶은 이렇게 가벼운 것이었을까. 한숨에 쉬이 앗아갈 만큼 신은 그리 너그럽지 못할까.

수오는 꼭 잡고 있던, 함께 바다에 빠져들었던 자신의 연인의 손을 놓았다. 만약 바다가 원하는 것이 삶이라면, 제 목숨 하나로 만족하기를 바라면서. 이 삶으로 당신 하나는 구했으면 해서. 두둥실 공기 방울과 함께 떠오르는 사람의 형체가 수오를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만들었다. 점점 아래로 가라앉으며 웃을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계속, 계속 가라앉았다. 끝도 없이.  



** 



“사람이다.” 


눈을 감아버린 수오를 깨운 것은 이곳에서 들릴 수 없는 작은 목소리였다. 마치 구슬과 같은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연인과 같은 색의 목소리는 이곳이 천국이라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죽은 걸까? 내가 손을 놓은 연인도 결국 바다에 의해 삶을 빼앗겼나? 슬그머니 눈을 떠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지만, 정말 둘 모두의 삶을 빼앗긴 것일까 두려워 수오는 눈을 뜨지 못했다. 살아있어? 괜찮아? 따스한 손이 제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든다. 수오는 계속해서 귀를 간질이는 목소리에 더 이상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눈을 떴다. 


“……?” 


파랗다. 마주하는 눈도, 파란 물결에 하늘하늘 날리는 머리칼도 모두 푸르고, 파랬다. 그 시원한 느낌의 모든 이목구비가 자신의 연인과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낯설게 만들었다. 수오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얼굴도, 손에 닿는 느낌도, 전해져오는 온기도 모두 제 연인의 것과 닮아있었지만, 색, 그것 하나만 연인과는 아주 다른 존재였다. 파란 그 이는 수오가 하는 것을 가만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당신은 누구야? 작게 웅얼거렸다.  


“나는 인어야. 이름은 없고, 모두가 서로를 인어라고 불러.” 


너는 인어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어?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수오의 눈에 살랑거리는 물고기의 꼬리가 보였다. 꼭 어릴 적에 읽던 동화에서 본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상체는 사람이지만, 하체는 물고기의 것을 가지고 있는 존재,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물거품으로 변해버린, 안타까운 사랑의 주인공과 같은 모습이었다. 수오는 이제 정말 천국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실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존재가 지금 바로 제 앞에 서 있다니…. 이게 현실이라 믿을 바엔 차라리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여기는 어디예요? 저는 지금 왜 여기에 있죠?”

“여기는 바닷속이지. 너는 저 위에서 흔들흔들하면서 내려왔어.”

“네?”

“말미잘이 흔들흔들, 흔들흔들하는 것처럼 말이야.” 


너는 뭐하는 사람이야? 어떻게 죽지 않았지? 이렇게 깊은 곳까지 내려올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고 들었는데, 너는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인어는 수오도 알지 못 하는 질문을 했다. 수오도 이 깊은 곳까지 가라앉을 수 있을 거라 생각도 못 했다. 저가 이렇게 살아있는 게 맞다는 것도 믿을 수 없고, 아직 죽지 않았음에도 상상 속의 존재를 보고 있다는 것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보드라운 뺨에 손이 닿아있고, 손에 따스한 온기가 잡혀도 허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있는지. 지금 당신이라는 존재도 잘 믿기지 않는데 제가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를 알겠어요. 나는 살아있는 거예요? 수오는 그 말을 하면서 인어의 뺨 위에 있던 제 손을 거두어 제 뺨을 꼬집어보았다. 꼬집자마자 알싸한 고통이 뺨에서부터 퍼져나갔다. 고통을 느끼고 나서야 이게 꿈이 아니란 것을 믿을 수 있었다. 인어는 저가 죽은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죽은 것도 아니고, 꿈도 아닌데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수오는 현실이란 것을 자각하자마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바다에 빠진 순간, 죽음을 예상했고, 죽음을 예상했기에 제 사랑하는 연인을 물 위로 밀어 보냈다. 그 사람이라도 살아남기를 바라서. 그런데 저는 죽지 않았고, 이상한 곳까지 가라앉았고, 자신이 인어라 말하는 존재를 만났다. 믿어야만 하지만 믿지 못할 현실에 머리가 다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인어는 머리를 감싸 안고 고통스러워하는 수오를 가만 바라보다 수오의 손을 잡고 끌었다. 이렇게 고민하지 말고 여기 구경이나 하자. 고민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가벼운 말이었다. 꼭 제 연인이 길을 잃은 날 하얗게 웃으며 제 손을 끌었을 때 했던 말처럼 한없이 가볍고, 따뜻한 말이었다. 그 전까지는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던 그 말이 제 연인이 했던 그 순간 따스한 말이 되었던 것은 수오가 불안함을 이기지 못할 때, 간단히 구렁텅이를 벗어나게 해준 말이었기에 그랬다. 고민하지 말자. 그냥 잊어버려. 수오가 가장 싫어했던 말은 그 사람의 입을 통해 나왔다는 이유로 따스한 말이 되고, 고마운 말이 되었다. 인어는 그랬던 그 말들을 연인의 얼굴을 하고 말을 한다. 수오가 절대 이길 수 없게 말이다. 인어의 손에 이끌려 바다를 헤엄치는데도 이제 불안하지 않다. 어쩐지 이렇게 따라가면 뭐든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오는 어쩐지 웃음이 났다. 


“인어님, 인어님은 제가 아는 사람을 닮았네요.”

“그래? 너도 내가 아는 이를 닮았어.” 


그나저나 인간이 여기에 온 것은 처음이라 어떤 것부터 구경시켜줘야 할지 모르겠네. 너는 어떤 것을 좋아해? 발갛게 달아오른 산호? 한들한들 흔들리는 말미잘이랑 그 속에서 조용히 숨어있는 흰동가리? 그것도 아니면 가시를 세운 복어라던가, 파도에 몸을 싣고 다른 것들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는 해파리, 바다를 자유로이 나는 가오리도 있어. 바닷속에는 네가 상상하는 모든 게 다 있을 거야.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봐. 나는 네가 원하는 그곳에 갈 수 있도록 해줄게. 


“어때? 신나겠지?” 


네가 원하는 것을 이곳에선 할 수 있을 거야. 네가 언제 돌아갈지 모르겠지만 그 전까지는 재미있게 놀다 갔으면 좋겠어. 이곳은 나도 엄청 마음에 든 곳이거든. 인어는 계속 수오의 손을 이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설명을 해주었다. 파란 물결이 마치 바람처럼 볼을 간질이고,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바다생물들은 여기 홀로 걷고 있는 인간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호기심이 많은 거북은 아주 조용하고 느릿하게 다가와 툭, 툭 어깨를 건드려본다. 그런 모습이 꼭 사람이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서 수오는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어릴 적, 수오가 읽은 책에는 바다가 깊고, 깊고, 깊어질수록 어두워진다고 나와 있었다. 바다는 아주 넓고, 깊어서 해님이 다 보지 못한 곳이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캄캄한 어둠이 있어서 그곳에서 사는 친구들은 자기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더 크고 나서는 그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바다는 깊을수록 캄캄하다는 것은 수오의 상식에 딱딱하게 박혀있는 존재가 되었었다. 이렇게 직접 바다에서 숨쉬기 전까지는 말이다.

분명 위를 바라보면 하늘도, 밖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곳인데 인간인 저도 숨을 쉬고 있고, 바다는 하나도 캄캄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푸르러서 손으로 잡으면 새파란 사파이어가 대신 잡힐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언젠가 연인과 함께 보러간 해수욕장의 그 바다는 에메랄드 빛이었는데 이곳은 새파란 사파이어 빛이었다. 그리고 인어는 그런 에메랄드 빛도, 사파이어 빛도 모두 품은 존재였다. 옥색의 투명한 머리카락은 새파란 바다 사이에서 흔들리고, 가끔 수오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뒤돌아보는 눈은 바다와 같은 색으로 일렁였다. 제 옆에서 흔들리는 물고기 꼬리는 여러 푸른빛을 다 비늘로 만들어 모아 붙인 것만 같았다. 새삼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바다에 빠졌음에도 죽지 않고, 깊숙한 곳에서 숨을 쉴 수 있고, 전설과 동화에서만 나왔던 인어라는 존재와 함께 하고 있다니……. 바라지 않았음에도 황송하다 느낄 만큼 다시 못할 경험이었다. 


“저는 어떻게 이곳에서 숨을 쉴 수 있는 것일까요?”

“특별한 존재라서 그런가봐.”

“어…, 제가요?”

“응. 당연하지.”

“저 같은 인간이 특별한 인간이라니, 말도 안 돼요.” 


수오의 말에 바삐 꼬리를 놀리던 인어가 움직임을 멈추고 수오를 가만 바라봤다. 새파란 동공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네가 날 좋아한다는 걸 잘 못 믿겠어. 언젠가 수오가 제 연인에게 고백했던 날, 연인이 수오를 가만 바라본 것과 같은 눈이었다. 네가 세상에서 제일 특별해. 너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우울함에 빠져 잠 못 이루는 까만 밤, 수오를 끌어안은 연인이 조곤조곤 속삭여주던 말들. 이제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말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예쁜 대답을 해볼걸. 세상에서 내가 가장 특별하다고 말하는 너에게 네가 조금 더 기뻐할 수 있는 대답을 할 걸. 수오는 파란 눈을 가만 바라보며 언젠가의 까만 밤을 떠올렸다. 그 때, 조금 더 기쁜 대답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바다에 오지 않았을까. 아니라면 이 인어에게 이런 바보 같은 말은 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연인이 저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자랑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연인을 구했어요. 제 연인은 저를 잃은 괴로움으로 힘들어하겠지만, 저는 너무 행복해요, 제 연인을 구할 수 있어서. 그렇게 얘기했으면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너는 특별한 사람이야.”

“…….”

“이거 봐. 나랑 이야기할 수 있는 인간은 너 하나뿐인 걸.” 


이 바다에서 숨을 쉬고, 바다생물들과 교감할 수 있는 인간도 너 하나뿐이야. 너는 특별한 존재야. 수오의 두 손을 꼭 잡고 말을 하는 인어의 얼굴은 어쩐지 슬퍼 보여서 수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작게 얼굴을 끄덕였다. 그제야 파란 눈이 반짝 빛이 났다. 저가 뭐라고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걸까. 왜 특별한 존재라고 이야기해주는 걸까. 또 연인이 속상할 생각을 잔뜩 했지만, 이번에는 굳이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연인의 것과 닮은 파란 눈동자가 조금이나마 빛을 띠는 것을 굳이 걷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수오의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어준 후 인어는 다시 꼬리에 힘을 주었다. 살랑살랑, 가볍게 움직이지만 힘찬 몸짓이었다. 수오는 인어를 따라 발을 내디뎠다.  



** 



한참을 그렇게 바닷속에서 헤엄치며 놀았다. 인어를 따라 바다생물들을 구경만 하던 수오는 금방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저가 먼저 걸음을 내딛고, 바다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인어가 말한 것처럼 발갛게 물든 산호도 만져보고, 말미잘에서 놀고 있는 흰동가리도 구경했다. 아주 오래 산 거북은 수오가 타도 될 만큼 커다래서 잠깐 엉덩이를 붙여보기도 했고, 가오리들은 수오를 위해 재주를 부려주기도 했다. 깊은 바다까지 올 수 없는 돌고래들도 나타나서 수오에게 짧게 인사를 하고 가곤 했다. 그리고 수오의 심금을 가장 울렸던 것은 어렸을 적 수족관에 놀러가서 봤던 고래들보다 훨씬 크고 거대한 고래였다. 흰수염고래였던가, 세상에서 가장 큰 고래라고 불리던 게. 아마도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았다. 그 고래가 이 정도로 클까? 수오는 깊은 울음을 들으며 생각했다. 움직이고, 움직여도 끝이 없다. 꼬리를 보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린 건지 알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압도당할 만큼 고래는 크고 아름다워서 수오는 꽤나 오랜 시간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어야만 했다. 인어는 그렇게 서서 커다란 고래를 느끼고 있는 수오를 가만히 기다려줬다.  


“고래가 네가 너무 반갑대.”

“네?”

“이렇게라도 너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나봐.”

“이렇게요?”

“응. 오늘이 아니면 저 고래는 평생 너를 못 만났을 테니까.” 


평생 네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살아야 했을 거야. 너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어는 수오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할 말을 했다. 사랑이라니, 오늘 처음 보는 저 고래가 어떻게 저를 알고 사랑하고 있었을까. 인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그게 꼭 진심인 것 같아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언젠가 책에서 봤던, 가장 크다고 말한 고래보다 훨씬 크고, 나를 사랑한다는 고래. 이 고래는 어디에서 나를 만났을까. 수오는 이미 고래가 떠나버린 쪽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고래도 나왔으니, 이제 정말 갈 때가 다 되었나봐.”

“어디를요?”

“집. 집으로 돌아가야지.” 


인간이 계속해서 이 바다에서 살 순 없잖아, 안 그래? 인어는 개구지게 웃으며 수오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 놀랄 겨를도 없이 손목이 잡힌 수오는 곧 엄청난 속도로 위를 향해 헤엄치는 인어를 막지 못하고,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뜨려고 노력했다. 아주, 아주, 아주, 아주 깊은 바다라고 생각했는데, 인어가 헤엄치니 밖은 금방이었다. 점점 바닷물 너머로 달이 보였다. 까만 밤하늘을 밝게 비추고, 반짝이는 별들과 오늘도 잠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 따스한 빛이 수오를 반기고 있었다. 반짝반짝, 인어는 저 밤을 본 적 있을까. 저가 여기에 나타나기 전까지 저 까마득한 바닷속에서 바다생물들과 헤엄치기만 했을까. 바다 위에 하늘이 있는 것은 알까. 저것이 뭔지 알고 나를 위로 끌어올리는 걸까. 이상한 생각들. 멍해지는 정신, 깜박깜박 반복되는 암흑과 빛. 이것들 모두 빠른 속도로 인해 정신없이 요동치는 시야인지, 환상에서 깨어나 죽음으로 향하는 길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저 꽉 잡힌 손목 너머로 바삐 움직이는 인어의 등만 가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당신은 뒷모습도 제가 아는 그 사람을 닮았네요.’ 


바다에 가자고 했던 날, 단호하게 거절하며 보여주던 연인의 뒷모습이다. 그 날 제 표정이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 혹시 다른 마음을 먹었을까봐 겁이 나서 박하게 굴던 그 뒷모습이다. 수오는 인어에게 잡히지 않은 팔로 인어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 때, 네 말을 들을걸. 네가 가지 말자고 했을 때, 조금만 기다려야 했어. 왜, 왜 나를 보내려고 해. 내가 잘못했어. 이제 그만 떠나보내지 마. 저가 내뱉는 말이면서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르고 수오는 웅얼웅얼 말을 이어나갔다. 인어는 위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한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수오의 얼굴을 봐주지 않았다. 그저 세차게 헤엄만 칠 뿐이었다. 다시 바닷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저를 돌아보아줬으면 좋겠다. 잘 따라오고 있는지, 혹시나 힘들어하지는 않는지 봐줬으면 좋겠다. 점점 정신이 멀어졌다. 흑백으로 반복된 시야는 이제 까만 밤만 담긴다. 별도, 달도 없는.  



**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하얀 모래사장이었다. 수오는 바다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한 모습이었다. 짠물에 흠뻑 젖어 찝찝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바람만 잔뜩 맞은 것처럼 뽀송하다. 그것조차 너무 기묘해서 저를 지켜보고 있는 인어만 아니었다면 모두 꿈이라고 믿었을 것 같다. 걱정이 가득 묻은 얼굴이 늘 보던 얼굴이라 수오는 인어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웃었다. 


“올라오실 땐 보지도 않으시더니 걱정하나 봐요.”

“네가 눈을 뜨지 않을 줄은 몰랐어.”

“이제 이별이에요?” 


저는 당신을 기억할 수 있어요? 수오의 질문에 인어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수오는 대답을 듣지 않고도, 인어의 대답을 알 수 있었다. 손가락부터 점점 투명하게 변하는 몸이 물거품이 되어갔다. 유명한 동화에서 비극을 맞이하고 결국 떠나버린 인어공주처럼. 수오는 그 물거품이라도 잡아보려 손을 휘적거렸다.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물거품은 절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왜, 왜 그래요. 왜 바다로 안 돌아가요. 왜 그렇게 변해요.” 


바다로 돌아가야 하잖아요. 거기 있는 산호도, 해파리도, 말미잘도, 가오리도, 거북이도, 그 큰 고래도, 새파란 바다도 당신을 기다릴 거잖아요. 왜 가려고 해요. 눈물이 났다. 아니, 이제야 몸 깊숙이 스며들었던 바닷물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짤 수 없으니까. 너무 짜서 고통스러운 기분이었다. 새파란 것이 반짝이며 거품으로 변해간다. 무지갯빛을 품은 물거품은 너무 많은 빛을 가지고 있어서 새파란 그의 비늘보다 아름답지 못했다. 그러니까 인어가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수오는 생각했다. 그냥 파랗게 남아주세요. 더 많은 색을 품으려 하지 마요. 그러지 말아요.

수오는 간절히 바랐지만 인어는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지는 못했다.      


“기적이에요, 이건 정말 기적이에요!” 


그 날 이후로, 수오에게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 지독히도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난 당신은 기적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수오는 말을 잃었지만, 바다에서 살아난 목숨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쯤은 사람들에게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 모양이었다. 수오는 눈을 뜨자마자 제 시야를 가득 채운 고래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에 제 방 천장을 한 가득 채우며 그렸던 고래, 제 방의 천장을 다 채우고도 크기가 모자라서 연인의 집 천장에 그려 넣었던 게 한 달 전의 일이었다. 그 고래가 바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 눈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눈을 아직 뜨지 못했음에도 집으로 돌아온 게 엊그제의 일이라고 했었던가. 눈을 뜨자마자 고래를 보고나서야 수오는 깨달았다. 한순간 꾸었던 달큰하고 짧은 꿈은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주마등이었구나. 연인을 살리고 숭고한 죽음을 맞이하고자 했던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었구나. 삶을 포기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나는 당신의 삶을 내다 버렸구나. 그 무엇보다 푸르렀던 그 인어는 내 세상에서 나를 기다렸던 당신이었구나.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수오는 한참을 울었다. 짠 바닷물이 마치 인어처럼 수오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____ 장미 therosenove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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