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이동이 잦은 엄마를 둔 덕분에
초등학교를 3번이나 옮기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각각 다른 동네에서 다녀야 했던 큰아이가 19살이 되었다.
주민센터에 신분증을 만들러 오라는
안내장을 받은 날
큰아이는 마치 오늘부터 어른이 된 것처럼 한껏 들떠있었다.
두 살 터울인 동생 앞에서 한껏 뽐내며 안내장을 흔들어 보였다.
넌 이런 거 없지?
난 이제 너 같은 미성년자랑은 달라~
난 엄마랑 같은 어른이야
동생이 입을 삐죽거릴수록
훈장이라도 달아놓은 듯
큰 아이의 어깨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랐다.
주민등록증을 만드는 과정을 이리저리 검색해보며 급기야 신분증 사진을 찍을 때 입을 '의상'을 사겠다는 결론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그 공들여 찍은 증명사진에는
새로 산 옷은 나오지 않고
얼굴과 목만 나왔다는 슬픈 결론도 있었다.
신분증에 몇십 년은 새겨져 있을 사진을 찍기 위해 아이는 나름의 다이어트를 반복했다.
사진이 잘 나와야 한다며 살을 빼겠다고 적게 먹은 다음날은 배고픔을 못 이기고 신나게 먹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두어 달 다이어트 선언문만 낭독하던 아이는
주민센터의 두 번째 독촉 문자를 받은 후에야
다이어트가 덜 된 얼굴(?)로 증명사진을 찍으러 갔다.
평소에 잘하지 않던
(할 줄도 모르는 ㅎㅎ)
어설픈 화장을 하고서 말이다.
그렇게 아이의 대한민국 신분증은 탄생을 했고, 고3 딸아이는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활기찬 얼굴로 교복을 입은 그대로 하굣길에 주민센터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플라스틱 냄새가 가시지도 않은 신분증을
경건하게 식탁에 올려둔 채
자신이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팥쥐 엄마 같은
독한(?) 엄마 밑에서
19년을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뿌듯한 표정으로 일장연설을 했다.
누가 보면 독립 직전이라 하겠다...
초등학생일 때부터 쓰던
귀여운 찍찍이 손지갑에
이제 막 발급된 학생증 하나와
교통카드 한 장 들어있는 동생은
언니의 호들갑을 익숙한 듯 흘려듣고 있었다.
그래...
이제 큰아이는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간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두 살 차이 나는 둘째 아이도 곧 맞이할 시간들이었다.
25살에
귀여운 요 녀석의 서투른 엄마가 되었던 나는
아이의 생일 케이크 초만큼
세월을 입었다.
볼 빨간 어린 두 딸
백열전구처럼
너무 얇고 불안하게 투명해서
만지면 스크레치가 날까
힘주어 안으면 깨져버릴까
내 등 뒤로 숨기고
앞서 바람맞으며 걷던 세월과
이리저리 낯선 동네로 이사를 하고
전학을 시키고
그렇게 서투른
적응의 시간을 마주하고
엄마가 정규직이 되었다고
치킨에 콜라로
축배를 들고
같이 울다가 웃으며 살아온 시간들이
이제는 정말로 멀찍한 과거가 되어
어제처럼 선명하던 나의 기억 속에서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하루하루 살아내느라 바빠
겨우 내 허리춤까지 오던 어린 딸들이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머지않아 주민등록증이 나오는 나이가 되는 것을
상상하긴 힘들었다.
내게는 오지 않을
먼 미래 같았다.
매일 아침,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깨우고
필통에 빨간색 색연필이 들어있는지 확인을 하고
늦게 내놓은 물통을 잔소리하면서 씻어놓고 나면
곧바로
그날 저녁에 먹일 반찬과
학부모 상담일정과
교문 앞 녹색어머니 일정을 어떻게 할 건지
고민해야 했다.
뒤돌면 또 쌓여가는 빨랫감과
혼자서 몇 번은 더 후비적거려야 들고나갈 수 있는
재활용 쓰레기들에 한숨을 쉴 겨를도 없이
야근 없이 정시에 퇴근해서 밥하려면
오늘 얼마나 치열하게 잔업을 끝내고 와야 할까
가늠하느라 바빴다.
마냥 꼬꼬마였던 아이의
첫 재롱잔치를 보던 날과
초등학교 취학통지서를 받던 날
그리고
중학생이 된 아이의 교복을 맞추며
불쑥 커버린 아이와 거울 앞에 섰을 때
그 코끝 찡하던 느낌과는
또 다른 먹먹함이 명치를 눌렀다.
둘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언니보다 키가 커졌다.
한참 먹을 시기이긴 했지만
유난히 음식에 집착하는 듯해 마음을 졸였었는데
열심히 먹었던 것이 키로 가려고 그랬는지
최근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175cm을 찍고 있었다.
첫째 아이는 고3이니 이제 1년도 안되어 학교를 졸업할 것이지만 둘째는 고등학생의 시간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엄마. 학교 근처로 이사 가면 안돼?
너무 멀어.
이걸 3년이나 해야 되는 거야?
중학생일 땐 학교가 집 근처였는데
고등학교는
이 집에서 3년 동안 통학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했다.
그리고
힘들게 내 집 마련을 하였지만
담보대출을 받아 살고 있는 우리 집이
사실은 큰 부채덩어리라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하던 참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나 역시
우리 집은 내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자가용도 내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집값이 오르면 자산도 오르는 것이고
자가용도 팔 때 중고가라도 건질 수 있으니 자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읽은 대부분의 경제, 재테크 서적에서 자산에 대한 정의는 달랐다.
내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면 그것은 부채, 내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면 자산이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실감은 하고 있었다.
등기필증엔 엄연히 내 이름의 집이었지만 집값의 70%가 넘는 돈을 은행에서 빌려 쓰고 있었다.
그 이유만으로 나는 매달 100만 원에 달하는 원금과 이자를 꼬박꼬박 은행에 갖다주고 있었다.
거기에다 관리비까지 하면
나는 매달 120만 원의 월세를 내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우리 집'이라는 안정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아이들과 나는 인테리어 해서 들어온 우리 집구석 구석까지 깨끗하게 사용하며 정을 붙였다.
평생을 살 수도 있는 우리 집이었다.
'담보대출을 다 갚을 수는 없고,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대출이자와 원금을 내며 살아야 할까?'
내 집이라는 안락함이 주는 장점과
월급의 상당 부분을 은행에 꼬박꼬박 내야 하는 현실,
이 두 가지를 놓고 고민을 했다.
지금 행복하지만...
이 집에서 대출을 갚으며
오래 사는 것이 정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