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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Oct 01. 2015

어쩌다보니 문화'생활'

잃어버린 내 본연의 말투를 찾아서. 


아, 재미없다. 재미없어. 


무슨 일을 해도 재미가 없고, 사람들을 만나도 외로움이 가시지 않을 때가 있다. 지금이야 학생이라 쓰고 백수라고 읽는 고결한 신분이지만,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만원 지하철을 타고 회사-집을 무한반복하는 수많은 직딩 중 한 명으로 끝없이 반복되는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하는 일이 재미있는 사람도 있지 않냐고 되묻는다면야 할 말이 없지만 내가 아는 한 직장이 재미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우리 인생에서 재미가 굳이 '밥' 빌어 먹는 행위에 좌우된다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밥' 빌어 먹는 행위만큼이나 삶을 지속시키는 것도, 그 삶을 정형화시켜 지루하게 만들어버리는 것도 없을 것이다. 한동안 난 밥 빌어먹는 행위에 지쳐 인생이 참 재미가 없었다. 얼마나 재미가 없었으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몸뚱이가 픽 쓰러져버렸을까.

 이미지 출처 http://marcguberti.com/

학부 시절, 너무 좋아서 졸졸 따라다녔던 할아버지 교수님이 계셨다. 흰머리가 성성한 교수님은 연극을 탐닉하셨고 발레를 사랑하셨다. 학점도 안 주고, 빡세기로 유명한 할아버지 교수님은 수업 첫 시간 이런 말을 하셨다.

"인생이 재미없다고 생각할 때, 창의적인 일을 하세요." 아니, 이게 무슨 개가 풀을 뜯어먹는 소리인가. 인생이 재미없는데 어떻게 창의성이 발현된단 말인가. 처음엔 창작을 업 삼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 졸음을 견뎌내고 있는 학생들에게 적절한 조언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강을 포기할까도 했지만 학교에서의 마지막 강의라고 하시길래 괜히 짠한 마음에 수강신청 변경을  하지않고 수업에 나갔다. 황당했던 첫 인상과 달리 그 수업은 학부 때 들었던 베스트 수업이 되었고, 나는 여전히 할아버지 교수님이 소개한 연극, 오페라, 발레 작품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다. 물론 '창의적인 일'의 의미도 꽤 넓게 확장되었다. 

이미지 출처 : photo.net (by. Nicolas Pin)

벅찬 맘을 가득안고 할아버지 교수님의 퇴임식에 할아버지 교수님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건넸던 시절은 휘리릭 지나버리고 돈 받은대로 글을 쓰는 생계형 페이작가로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직장을 다니며 학교에서 배운대로 정형화된 기획들을 만들며 학자금을 충당하는 기계적인간으로 변모되는데 걸린 시간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난 나의 언어를 잊어버렸다. 어쩌면 잃은 것일지도. '슬프다'라는 식상한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게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지속해 온 나의 '창작(이라고 쓰고, 생계라 읽는)' 기간은 결국 식상한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있을만큼 단순화되어 버렸다.  

난 열심히 살아왔는데, 결국 나의 언어를 잃었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난 다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근데 대체 뭘로?! 에라이 모르겠다. 할아버지 교수님이 말한 '창의적인 일'들로 다시 수다를 떨기로 마음 먹었다. 돌이켜보니 전공 때문인지, 이전 직업들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 때문인지, 취향 때문인지 어쩌다보니 나는 문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잡다한 문화 '생활'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나 자신조차 막막하지만 누구라도 읽고 각박한 삶을 달랠 수 있는 소소한 재미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혹은 내가 뱉어내는 언어에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앞으로 난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쓸 것이다. 내 언어를 찾기 위한 과정이므로 양해해주길 바란다. 내가 언급할 전시, 공연, 책, 영화, 게임, 문화현상 등에 대한 모든 것은 당연스럽게도 굉장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서술될 것이다. 소개할 작가나 창작자에 대해서도 물론 주관적이고 편파적으로 이야기 할 것이다. 나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나의 사생활을 아낌없이 구겨넣을 것이고, 엉터리 소설을 쓰던 지난 날을 생각하며 가끔(어쩌면 종종) 새침하게 거짓된 상황들을 연출하기도 할 것이다. 몇몇 에피소드에 대한 진실은 믿거나 말거나. 읽는 이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hildegardcenter.org/

나는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어쩌다보니 문화 '생활'하는 나의 이야기. 당신도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수다를 떨길 바란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문화 '생활'에 스며들길...


어쨌거나 할아버지 교수님의 말처럼 문화는 각박한 삶을 쾌활하고 따듯하게 바꿔줄 윤활유가 될테니깐. 나도 당신도 손해 볼 일은 아니다. 아, 그렇다고 뭐 강요하는 건 아니다. 원래 그냥 내 말투가 이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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