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고 싶은 이를 위한 식탁

호로록 미끄러지는 면발과 고기 고명 두둑한 쌀국수

by 노크노크
호로록 미끄러지는 면발과 든든한 고기 고명 @copyright by 노크노크


유독 혼자이고 싶은 날이 있다.


집에 언제 오니?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는 나는 엄마의 연락이 잦아지면 어쩔 수없이 대전에 있는 부모님 집에 갈 계획을 세운다. 대학에 입학 하면서부터 부모님과 따로 살기 시작한 나는 언제나 가족이 그립지만 막상 가족들 곁으로 갈 생각을 하면 왠지 모를 부담감이 든다.


퇴사를 앞두고 있을 때 명절이 다가왔다. 이미 회사에는 사표를 제출한 뒤였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어쩐지 회사를 그만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명절이 다가오자 집에 언제 오냐는 엄마의 연락이 잦아졌다. 마음도 복잡한데 좋은 '딸', 든든한 '누나', 착한 '손녀', 괜찮은 '조카' 등 한꺼번에 많은 역할을 짊어질 생각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어쩐지 이번 명절은 '혼자'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려가지 않을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기차표를 구하지 못했다는 가장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혼자 서울에 남았다. 느지막이 일어나 백수라는 이유로 서울에 혼자 남겨진 친구와 그의 반려견 해태를 데리고 연남동에 가서 산책을 하고 커피 한잔을 마셨다. 산책을 마치고 그냥 집에 돌아가기가 아쉬워 혼자 한참을 걸었다.


걷다 보니 배가 고파져 평소에는 줄이 길어 들어가지 못했던 쌀국수집 앞 자판기에서 쌀국수를 주문했다. 떠들면 주인장에게 쿠사리를 먹는다는 그 집에 혼자 들어가 조용히 쌀국수를 받아 들었다. 호로록호로록 미끄러지는 면발에 거짓말로 부모님을 속인 죄책감과 왠지 모를 껄끄러움을 담아 꿀꺽 삼켜버렸다. 면발에 이어 시원한 국물이 들어가자 괜한 답답함에 응어리졌던 내 마음이 풀어지는 것도 같았다.


늘 복작이던 명절에 '혼자' 있다는 이유만으로 느껴지던 허기는 든든한 고기 고명 덕분에 가득 채워졌다. 매콤한 칠리소스와 달콤한 바비큐 소스를 얹어 살뜰하게 먹고 나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고 혼자 보내는 명절도 그럭저럭 지나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조차 버겁게 느껴져 스스로 혼자이고 싶을 때, 그렇지만 혼자가 익숙하지 않을 때면 명절 연휴 혼자 서울에 남아 먹었던 쌀국수가 생각난다. 오직 '나'에게만 집중해도 좋다고, 다른 누군가의 시간에 굳이 맞춰 살지 않아도 좋다는 든든한 응원이 담긴 쌀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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