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 고소한 참치 카나페와 매콤한 궁중떡볶이 (feat. 샴페인)
그녀는 우리 집에서 3분 거리에 위치한 카페의 주인이었고, 난 그 카페의 단골이었다. 비싼 등록금에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 그리고 지속해야 하는 학업 때문에 경제적으로 무척 불안한 시기였다. 집에서 공부는 안 되고, 논문은 써야겠고 염치 불고하고 집 근처 카페에서 음료 한 잔을 시켜놓고 반나절씩 시간을 보내곤 했다.
눈치는커녕 언제나 맛있는 디저트를 서비스로 주는 그녀가 고마워서 취미로 만든 소이캔들을 예쁘게 포장해 그녀에게 선물했다. 그때 처음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 우리는 동갑내기였다. 괜히 더 정이 가서 오며 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가볍기도 하고 심각하기도 한 여러 이야기.
가끔 카페 밖에서 만나 술을 마시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외로운 시간에 그녀의 카페를 지나기만 해도 마음이 따듯해졌다. 일 때문에 어떤 약속도 쉽게 잡지 못했던 나를 가장 잘 챙겨준 이 또한 그녀였다.
한 해의 마지막 날, 그녀의 카페에서 우리만의 송년회를 가졌다. 샴페인을 마시면서 그녀가 말했다.
난 네가 좀 더 솔직하면 좋겠어.
그녀 앞에서 난 늘 솔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목조목 감정 표현에 서툰 나를 지적하는 그녀의 말에 솔직하지 못한 나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것이 분명히 있으면서 타인의 시선 때문에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고, 힘든 감정도 추상적으로 빙 둘러말하는 내가 그녀는 답답했다고 했다. 가면을 쓴 나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고 한다. '나' 자신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깨닫게 해주었다.
그녀는 요란스럽지 않게 담백하고 고소한 참치 카나페처럼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그 말을 들은 내 마음은 청양고추의 알싸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궁중 떡볶이처럼 화끈거렸다. 샴페인을 연거푸 마셔서인지 그녀의 말에 마음이 움직여서인지 그날 밤 나는 속으로 눌러둔 많은 이야기를 모두 꺼내 놓았다.
솔직하지 못한 나를 위한 식탁이었다. 그녀의 카페를 오가는 동안 난 취업을 했고, 졸업을 했다. 조금 더 솔직해졌고, 추상적인 단어로 면피하기보다 구체적인 단어로 감정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신촌을 떠나 보금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카페에 자주 가진 못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밖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가슴이 답답해 누군가에게 아무 말이라도 하고 싶지만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을 때 그녀와의 식탁이 떠오른다. 샴페인 잔을 부딪히며 더욱더 솔직해지자고, 용기를 내자고 다짐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용기가 난다. 그녀가 보고 싶다. 벚꽃이 피기 전에 만나 이야기 꽃을 피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