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퍽퍽하고 적당히 기름진 보쌈과 입맛 돋우는 보쌈김치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급하게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었지만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가벼운 안부를 주고받다가 침묵이 이어진다. 수화기 저 편에서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울면서도 가슴에 진 응어리를 말로 풀어내는 그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다.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이 한 마디밖에 할 수 없어 미안한 나지만, 그 한 마디가 고맙다고 하는 그녀다. 그녀는 벌써 6년째 수험생활을 하고 있다. 학부에 들어가자마자 행정고시를 준비했고 졸업을 하고 나선 지금까지 7급 행정직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서러움이 폭발하는 날이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다음 날 공부까지 망친다고 감정을 억누르는 그녀가 전화를 할 땐 바쁘더라도 그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싶었다.
시험을 끝내고 마침 서울에 올 일이 있다길래 '일단 만나자'라고 했다. 그녀가 돌아가기 쉽게 영등포역 근처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만나자마자 먹자골목에 들어가 가장 먼저 보이는 보쌈집에서 보쌈을 시켰다. 아삭한 배추에 적당히 퍽퍽하고 적당히 기름진 보쌈을 올리고 마약 같은 매력의 보쌈김치를 얹어 잔뜩 지쳐있을 그녀에게 건넸다. 너무 커서 잘 안 들어간다면서도 한입 가득 보쌈을 넣는 그녀를 보니 마음이 뿌듯해진다.
뭐든 '적당히'가 중요하다. 적당한 크기로 썰린 적당히 밋밋한 보쌈에 아삭하고 시원한 보쌈김치가 어우러져 그 맛을 더하는 것처럼 우리네 삶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 균형이 깨지면 불안해진다. 내가 그렇고 그녀가 그렇다. 시답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보쌈 한 접시를 싹 비웠다. 먼저 나가 계산하자 그녀는 내내 얻어먹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말한다.
고마우면 아이스크림이나 사라고 편의점에 들어가 아이스크림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계산을 하는 그녀를 보니 6년 전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재수 시절, 6월 모의고사를 마친 날 찾아와 갈비탕을 사주며 조금 더 힘을 내라고 응원해주던 그녀의 모습. 후줄근한 티셔츠에 펑퍼짐한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있던 나와 달리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귀여운 샌들을 신은 그녀가 난 참 좋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지친 이를 위한 식탁이었다. 그녀가 하루빨리 삶의 균형을 찾아 그토록 원하던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날이 오길 기도하는 식탁이었다. 퇴사를 하고 대전에 갔을 때 잠시 쉬고 있다는 그녀를 만났다. 이래저래 지쳐있을텐데 연분홍 꽃이 예뻐 샀다며 꽃다발을 건네며 웃는 그녀가 난 여전히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