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창낭창한 면발과 시원한 국물 (feat. 참이슬)
복작거리던 신촌 언저리에 살다가 지금의 동네로 이사를 왔다. 무관심이 매너이던 동네에 살다가 추운 날 옷이 너무 가볍다며 '따듯하게 입고 다니라'라고 툭 말을 건네는 동네 할머니들이 생겨 괜히 든든한 마음이 들었고, 야채와 과일을 싸게 살 수 있는 시장이 있어 즐거웠다.
밥을 먹고 1시간은 너끈히 산책할 수 있는 코스가 있어 삶의 질이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고, 함께 산책할 동네 친구가 생겨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일찍 퇴근을 하는 날이면 동네 친구에게 산책을 하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8시 즈음 만나 수다를 떨며 산책로를 걸으면 금세 시간은 9시가 넘어 있었다.
출출하지?
애써 칼로리를 소모한 동네 친구와 나는 결국 '출출하지' 이 네 글자에 의기투합하여 허름한 포장마차 앞에 줄을 섰다. 저녁 9시가 넘어야 문을 여는 이 곳은 매일 문을 열지도 않거니와 오픈 시간도 들쭉날쭉해서 허탕을 치는 날이 많았다. 설령 운이 좋아 문이 열려 있더라도 손님이 많아 한참 줄을 서야 한다.
허탕을 치는 날은 '다이어트'를 했다고 위안했고, 운이 좋아 들어가는 날은 어쩐지 별미를 먹을 기회를 얻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래저래 기분 좋게 산책을 마무리하기엔 이 집이 적당하다. 두 번 허탕을 치고 들어간 포장마차의 낡은 테이블에 앉아 우동국수 두 그릇에 닭똥집 볶음을 주문한다. 오랜만이란 핑계로 소주도 한 병!
동네 친구와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어 정말 좋다. 눈 앞에 보이는 풍경에 대해, 바로 앞에서 독특한 운동을 하는 누군가에 대해 그리고 잠시도 젓가락질을 쉴 수 없게 만드는 우동국수에 대해 격렬하게 이야기하게 된다. 국수가 나왔다. 낭창낭창한 면발을 입 안에 풀어놓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면발이 움직여 식도를 향해 간다. 꼴깍 삼키기가 무섭게 젓가락을 쥔 손이 움직인다.
묘한 매력의 국물에 낭창한 면발은 정말 매력적이다. 배우 조인성도 와서 줄을 서 먹었다는 소문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맛이다. 짭짤하고 고소한 닭똥집 볶음은 천천히 국수를 음미하기 위한 쉼표 같은 음식이다. 씹을수록 맛있는 닭똥집 볶음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면 정말 기분이 좋다. 다시 호로록 국수면을 삼키면 출출함이 싹 가신다.
이 소소한 행복을 함께 나눌 익숙한 사람이 있다는 건 마음까지 든든한 일이다. 가장 편한 옷에 감지 않은 머리를 질끈 묶고 나가지만 함께 걷는 것만으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하하호호 떠들며 출출한 배를 채울 수 있는 동네 친구야말로 내가 이 동네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입지조건이 아닐까. 날이 풀렸으니 동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야겠다. 산책을 하자고, 출출한 배를 채우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