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끈하게 넘어가는 메밀면에 시원한 육수가 어우러진 판메밀
하루 종일 높은 구두를 신고 서 있었더니 온 몸이 매로 맞은 것처럼 아프다. 지난 1년 간 가까운 사람들이 무려 세 명이나 결혼을 했다. 지난해 1월엔 친언니가 10월엔 17년 지기 친구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어제 그녀가 결혼을 했다. 세 명의 결혼식에 난 기쁜 맘으로 가방순이를 자처했다. 덕분에 오늘 어깨, 허리, 무릎, 발 쑤시지 않는 곳이 없지만 그렇게라도 그녀들의 세리머니에 동참할 수 있어 참 좋다.
그녀와 난 자매다. 친자매는 아니지만 자매가 되기로 결정했다. 나에게 날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과 사회에서 날 성장시킨 부모님이 계시듯 나와 함께 투닥거리며 자란 남매가 있고 사회에서 만난 부모님 밑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자매가 있다. 그녀와 난 스터디를 하면서 친해졌다.
좋은 강의가 있으면 함께 들으러 다녔고, 선생님들의 뒤를 잊겠다며 어려운 책을 붙들고 앉아 둘이 한참을 낑낑대기도 했다. 서로 논문을 피드백하며 석사와 박사를 마쳤고 앞으로 평생 공부를 하자며 결의를 다졌다. 물론 우리 둘이 연락하면 서로의 '힘듦'과 '멍청함'을 가장 많이 이야기한다는 함정이 있긴 하다.
불투명한 미래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은 긴 터널 속에서 우린 '농담'이란 돌파구를 찾곤 했다. 그리고 유독 후루룩 시원하게 식도를 넘어가는 평양냉면을 좋아해 자주 먹으러 다녔다. 반차를 내고 논문 피드백을 받으러 다녀온다는 그녀를 회사 근처로 불러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미지근한 피드백을 받았다는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음식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소 툭툭 끊기는 감이 없지 않지만 매끈한 촉감의 메밀면과 김, 파, 무를 취향껏 넣을 수 있는 시원한 육수가 어우러진 판메밀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메시지를 통해 주고받은 그 답답한 상황들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소화를 돕는다는 무를 걸쭉하게 넣고 개운하게 파를 얹는다. 답답한 일들을 휘휘 저어 넣고 마지막엔 감칠맛을 더해 줄 김과 힘이 빠질 정도로 웃긴 농담을 듬성듬성 썰어 넣는다. 처음에 무슨 이야기로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농담은 농담으로 이어진다. 후루룩 후루룩. 두 판이나 있는데 면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진다.
이렇게 웃음으로 힘을 쭈욱 빼고 나니 다시 들어가 도전할 힘이 생긴다. 힘들 때일수록 시원시원 웃을 수 있는 농담이 필요하다. 어제는 진지하게 결혼식에서 찍은 예쁜 사진들만 보내주었는데, 오늘은 엽기적인 사진들을 골라 동영상을 만들어 보내야겠다. (흐흐) 이건 절대 심술이 아니다. 형부와 함께 시원하게 웃으며 결혼식의 피로를 풀었으면 하는 맘이다. 언니가 신행에서 돌아오면 판메밀이 생각날 만큼 따듯한 봄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